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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온한 삶 Mar 27. 2021

직원과의 적절한 거리

“내일은 무슨 반찬을 해야 하나?”


학원이 작아서 피자 한판을 나누어서 먹을 수 있었던 시절, 그들의 고민 상담에 적절한 조언을 주는 게 삶의 중심이었던 시절, 난 직원들의 식사를 챙겼다.


사무실에 앉아서 내일 반찬에 대해 걱정을 하고 있었다.

급식 이모처럼 선생님이 좋아하는 반찬을 고민하면서. 그건 부담스러우면서도 즐거운 일이기도 했다. 선생님들이 든든하게 먹고 수업에 들어가면 그게 우리 아이들에게 다 갈 것이라고 생각하니 힘들어도 힘든지 몰랐다. 또한, 선생님들과 둘러앉아 밥을 먹는 재미는 솔솔 했다. 그들과 함께라는 든든함도 느껴지고, 함께하는 내가 소탈하고, 멋있어 보였으니까.


그러다 가끔은 반찬에 대한 걱정이 있었다.

소박하게 싼다 해도 반찬거리를 매일 사서 도시락을 싸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반찬을 신경 쓰지 않고 담아갈 때는 식사 중에 선생님의 표정을 살피기에 바빴다. 또한 잔반이 있었을 때도 역시나 신경이 쓰였다.


나의 일은 도시락을 싸는 일이 아닌데,  본래 내 일은 밀리고 있었고, 출근시간이 점점 늦어지고 있었다. 어느 날, 허겁지겁  도시락을 풀고 선생님과 둘러앉았다..


한 선생님이 반찬 그릇을 열더니

“ 난 비지 못 먹는데? 다들 비지 먹어요?”

하고 물어봤는데, 다들 먹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다.

오늘 반찬은 비지찌개였다.

악의는 없었다. 그냥 정말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다. 그럼에도 기분이 살짝 상했다.

“ 내가 어떻게 준비한 건데”

“ 얼마나 고민하다 싼 건데”

라는 말이 튀어 나올려했지만,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말했다가는 그 선생님도 상처를 받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로 난 고민에 빠졌다.

계속 도시락을 싸야 하는지에 대해서다. 그냥 계속하자니 자존심이 상했고, 갑자기 하지 말자니 그 직원은 눈치가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직원들과의 적절한 거리에 대해 새삼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난 호의로 도시락을 싸가며 그들을 챙겨주려 한 것이지만, 그들 입장에선 대표와 매일 저녁을 같이 먹는 게 불편했었을지도 모른다. 난 내가 힘들며 애쓴 것만 생각했지 미처 그들의 입장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잘해준다고 생각하며 뿌듯해했다니.


그 선생님을 불러 면담을 했다.

“ 선생님, 비지찌개를 못 먹는구나. 선생님은 그냥 말한 거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근데, 생각해보니, 나도 도시락 싸는 게 힘들고, 선생님이 그냥 한말에도 신경이 쓰인다면 그건 하면 안 되는 일 같아. 그래서 도시락 그만 싸려고.”

라고 말했다. 최대한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 원장님, 반찬 평가를 하는 그런 의도는 아니었어요”

“ 당연히 알지”

“ 오해하지 마세요. 그동안 진짜 잘 먹었어요. 선생님들끼리도 이런 학원이 어디 있냐 해요”

“오해는 안 해”

정말 오해한 건 없었다.

“ 근데요, 원장님”

“ 선생님도 한식을 안 먹고 싶을 때도 있잖아요. 원장님도 반찬 고르느라 힘드시고, 우리도 매일 도시락 받아먹기가 죄송하고 부담스러워서 잘하신 결정 같아요”


 멍했다. 우리는   부담스러웠구나. 그들이 부담스러울 꺼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이야말로 나의 오해였다. 선생님과 면담을 마치고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며칠 후, 결론을 내었다.

모든 게 내 책임임을 받아들였다. 내가 직원과의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지 못한 게 큰 잘못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후 도시락은 없어졌다. 도시락이 없어진 후에도 가끔은 빵을 사가며 그들을 챙겼다. 그냥 말한 그 선생님과도 잘 지냈다.


점점 초보 원장의 틀을 벗고 있었다.

차츰 성장하고 있었다. 적절한 거리를 찾는데 노력을 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려고 했다. 서로 너무 가까워 분란의 소지가 있는 거리일 때도 , 너무 멀어 직장에서의 재미가 덜해질 때도 노력을 많이 하게 되었다.


직원들과의 적절한 거리는 어느 정도 일까?

아직도 고민 중이고, 정확한 해답은 아직 나오진 않았다. 단지 내가 찾은 작은 해답은 무리해서 그들을 챙기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이 조언을 구하면 얼마든지 면담을 하지만, 내가 반찬 준비처럼 너무 애쓰면서 그들을 챙기는 일은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게 정답일지는 모르나  나만의 해답을 찾고 마음이 편해졌다.


비지찌개를 보면!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그들과의 관계를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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