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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온한 삶 Apr 11. 2021

문득 사업에 대해 생각했던 날

1-5

“그니까 왜 일을 더 만들어요?”

“장선생님 때문에 일이 많잖아요”

“적당히 합시다”


난 아이디어를 내는 것을 좋아했다.

조직에 들어왔으면 무언가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이리저리 학원을 둘러보면 보완을 해야 할 것 투성이였다. 회의 때 사람들은 꿀을 먹은 것처럼 입을 닫은 반면에, 난 눈치 없이 이것저것 얘기하기 바빴다. 회의시간에 가끔 사람들이 눈치를 준 것을 알고 있었으나, 문제가 이리 심각해질지는 몰랐다.


철저히 나 혼자였었다.

교무실에서는 나에게 맹공격이 펼쳐졌다.. 불편한 상황이 여러 번 연출된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험악한 시선을 여러 명에게 받는 건 처음이었다.


“그니까, 왜 혼자 일을 다하는 것처럼 어필 하냐고요?”

“딴 사람은 놀고 있어요?”

나와 결이 맞지 않는 부원장은 옆에서 거들었다.

옆에 있는 책상을 탁 치며 말했다.


“장선생은 유별나요 유별나”


억울하고, 화가 치밀어 오르고 머리에서 김이 나고 있었지만, 가만히 있었다. 분란을 일으키기 싫었기 때문이다. 특히 부원장의 성격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내가 한마디를 보태면 열 마디를 답하기에 소음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어야만 했다.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이 상황을 모면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원장님의 호출이 있었다.

원장님은 내가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고 확신하신 듯했다.


“장선생은 왜 그렇게 사람들과 못 지내요?”


순식간에 성격이 안 좋은 여자가 되었다. 미묘한 분위기가 원장님과 나사이에 흘렀다.


그래도 다행히 시간이 지나 오해는 풀어졌다.

그 학원에서 부원장으로 승진을 해서 몇 년 동안 더 근무를 하였지만, 여태 기억나는 건 그 날 겪었던 ‘업’ 에 대한 생각이다. 강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유는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보장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조직 안에서 제안하고 성과를 만드는 일이 사람들에게 원성을 불러일으킬 일이라니 20대의 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당시 맞물려서 학원의 가시적인 성과도 안 좋아지고 있었는데, 그 이유가 나처럼 스스로 움직이는 사람이 없어서 라는 생각을 했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스스로 동기 부여하며 일하는 사람은 듣기 싫은 소리를 들어야 하는 현실이 서글펐다. 그 당시 난 어렸고, 열정에 불타오르고 있었다. 앞만 보고 가야만 하는 중압감에 현재 내가 땅에 발을 딛고 있다는 느낌도 받지 못했다.


내가 팔로워가 아니라 리더가 되어 조직을 이끈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 큰 조직은 아니라 하더라도 나와 같은 곳을 바라보고, 결이 같은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시너지가 날 것이라 확신했다.



사업자금도 부족한 데다가 준비도 안되어 있는 상태였다. 당장 실현할 수는 없으나 어렴풋한 그림을 머릿속에 반복적으로 그렸다. 그 당시에는 내가 사업을 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 와중에 개인적으로 갑작스러운 일이 생겼다,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6개월 교제 후 생각하지도 못했던 결정이었다. 인생은 언제나 뜻대로 흐르지 않는 법이다. 


결혼 후 자연스레 메가스터디 학원을 그만두게 되는 계기가 생겼다. 임신을 했기 때문이었다. 30세였는데, 출산 후에도 계속 일을 하고 싶은 마음에 친정집 아파트 단지로 이사를 갔다. 엄마는 내가 결혼 후에도 일을 하는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아이를 봐주기로 했다. 엄마는 내가 하는 일에 거의 반대하지 않았다. 항상 지지해주고 응원해주는 편이었는데, 그 에너지는 모험을 무릅쓰도록 하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엄마의 암묵적인 동의가 힘이 되었다.


엄마 집과 1분 거리로 이사 와서 공부방을 꿈꾸었다. 메가스터디 교무실에서 내가 느꼈던 당혹감과 똑같은 경험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난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싶었다. 오솔길이든 고속도로든 나의 능력의 한계치는 알 수 없으나 무조건 부딪치면서 하고 싶었다.


산후조리원에 3주 몸조리를 하고 바로 공부방 준비를 했다. 주위 공부방도 살펴보며 어떤 공부방을 세팅하면 아이들이 학습효과가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했고, 정돈된 공부방을 만들었다.


가장 작은 나의 첫 사업이었다. 작지만, 나의 전부인 방 한칸을 보며 목표를 세웠다. 현재는 나 혼자 하는 사업이지만, 2년 안에는 조직을 만들겠다는 결심이었다. 성공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나에게 펼쳐져 있었다.


깨끗이 정리 정돈된 방 한 칸 공부방에서의 하루 12시간 수업은  곧 시작될 것이다. 아이들은 줄 서서 기다릴 것이다. 그러면 미안한 표정을 하며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어머니와 학생들에게 용서를 구할 것이다. 상상이었으나 두근거리는 느낌. 심장이 뛰는 나의 세상. 공부방. 난 나의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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