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ihuahua, Mexico, 2014 >
멕시코 치와와 주의 어느 시골. 강한 햇살에 비친 황색 먼지가 비포장 도로에 가득하다. 시내의 몇 안 되는 식당 중에 '이 정도면 되겠다' 싶은 곳에 일행의 차가 섰다. 도난을 이미 경험한지라 고가의 카메라 장비를 한 껏 챙겨 식당 안으로 들어간다. 옷 속을 기분 좋게 파고드는 에어컨 바람. 기대 이상으로 쾌적하다.
주문을 하고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창밖에서 누군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조금 전 차를 세울 때 주변을 서성이던 아이들이다. 빨간 옷의 여자 아이 손에 있는 지폐 뭉치와 작은 물건이 눈에 띈다. 다른 한 손에 과일 같은 것을 쥐고 이따금 먹기를 반복한다. 들락날락 분주해 보이는 오빠(?)와 달리 같은 자세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여자 아이. 미동도 없다. 밥을 먹는 내내 몇 번이나 나와 눈이 마주친다.
시원한 바람 때문일까. 식사가 끝났지만 지친 몸이 좀체 움직이지 않는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도 자리를 떠나지 않는 아이. 한국에 있는 큰 딸과 비슷하거나 한 살 정도 많아 보인다. 앞머리가 다 빠져나왔지만 제법 단정하게 묶은 머리에서 이른 아침 엄마아빠의 다정한 손길을 떠올려본다. 출입문 유리를 경계로 서로 다른 온도와 상황들.
밖으로 나와 차에 짐을 싣는다. 시동 중인 차를 피해 한쪽 담장 아래로 물러나 있는 아이. 조심스레 다가간다. 작고 때 묻은 손에 쥐고 있는 건 알록달록 실로 만든 작은 팔찌들. 가지고 있는 작은 단위 지폐 한 장이면 팔찌 서너 개는 충분 살 수 있을 듯하다. 자세를 낮춰 앉아 가격을 물어본다. 서로의 말을 정확히 알아들을 수 없지만 차에 있는 코디네이터를 부를 일은 아닐 터.
주머니와 가방을 뒤져보니 꾸깃한 멕시코 지폐와 동전이 제법 있다. 정확히 세보진 않았지만 대략 사오만원 정도 되는 것 같다. 동전 하나 남김없이, 가방에 있는 작은 간식과 함께, 아이의 작은 손에 꼭 쥐어 주었다. 그리고 맘에 드는 색깔의 팔찌 두 개를 집어 들었다. 우리의 거래는 그렇게 이루어졌다. 수줍은 표정의 아이. 동그랗고 선한 눈이 반짝반짝하다.
덜컹거리는 차에 앉아 팔찌를 찼다. 제법 잘 어울린다. 촬영은 이후에도 며칠 동안 이어졌다. 산을 넘고 협곡을 뛰어다녔다. 땀이 묻고 마르기를 반복하니 금세 색이 바래고 실밥도 튀어나온다. 촬영 내내 두 팔찌를 번갈아 가며 팔목에 찼다. 어느 날, 협곡 경비행기 촬영중 하늘에서 엔진이 꺼지는 큰 문제가 발생했다. 정적이 이어지다 잠시후 기적처럼 엔진이 살아났다. 오랜시간이 지나 글을쓰며 생각보니, 그 때의 운은 때 묻고 해진 팔찌 덕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