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 일상 in Korea
2019년 2월 20일에 출국, 크로아티아 자그레브를 시작으로 10개국 19개 도시를 여행한 나는 2019년 6월 22일 비행기를 타고 23일 늦은 저녁에 한국에 도착했다. 남들이 교환학생으로서 해외에서 체류하는 일반적인 기간보다 훨씬 적은 시간을 보냈는데 계산해봤자 꽉 찬 4개월밖에 안 되었다. 딱 한 학기만 유럽에서 보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사실 더 오랜 기간 여행하고 체류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가기 약 한 달 전쯤부터 나의 머릿속은 복잡해져 왔고 몸은 유럽에 있었지만 마음은 벌써 한국의 시간으로 흐르고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해야 할 것, 제출해야 할 것, 만나야 할 사람, 들어야 할 강의 등 오히려 한국에서 있었다면 이 정도로 마음이 조급했을까 싶을 정도로 마음이 안달 나 있었다. 오죽했으면 여행을 하는 와중에도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부탁해 계절학기 강의를 대신 신청해달라고 연락을 했을까. 결국은 수강신청을 했고 수강신청을 실패한 수업도 교수님에게 가슴 절절한 메일을 보내 추가로 들어갔다. 대학에 들어와 계절학기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들은 적이 있었지만 그때도 최대 1과목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국에 도착한 다음날인 24일부터 수업을 들어야 했고 강의도 현장 강의 하나, 온라인 강의 하나로 총 2과목을 들어야 했다. 왜 이렇게까지 했었을까?
유럽으로 교환학생을 가기 전 그동안 내가 보지 못했던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목마름으로 나의 마음은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가득했다. 고모가 설날에 세뱃돈과 함께 주신 쪽지를 보고서 다시 한번 더 다짐했던 '가서 많이 배우고, 보고, 듣고, 즐기고 오자'라는 말, 나는 과연 지켰을까? 사실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 그 다짐에 대해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하루하루를 보냈다. 나름대로는 매일 밤, 너무 피곤해 쓰러지며 잠 들 정도로 바빴음에 만족하며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이라는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그래, 몸이 피곤한 거 보니 나 열심히 사는 것 같아'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점차 지나 계절학기는 끝을 보였고 남은 방학 동안 무엇을 해야 하나 생각을 하니 또다시 마음은 조급해져 왔다. 마치 스케줄러 속 빈칸이 보이면 무리해서라도 채워야 할 것 같은 강박처럼. 그래야만 이 세상 속의 나의 존재가 가치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 이런 강박에 대한 감정은 처음 느껴보는 게 아니라 교환학생을 떠나기 전 나의 모습과 똑같다. 교환학생을 위해 유럽으로 떠나면서 잊은 나의 모습일 뿐.
세상에 대해 폭넓게 보고 싶었고 나 스스로에게 너그러운, 여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어 유럽으로 떠났다. 그리고 유럽에서는 내가 상상만 했던 삶을 직접 살아보기도 하면서 변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사실 그런 매일에 나 스스로 도취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도 몰랐던 내 모습에 말이다. 하지만 한국으로 오지도 않았던 남은 한 달을 유럽에서 보내면서 조급한 나의 모습을 조금씩 발견했고 다시금 '역시'라는 마음이 들었다. 4학년이라는 그 타이틀을 가진 사람이라면 나 말고도 이럴 거라며 합리화를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 잣대 또한 나 스스로가 만든 것임을 깨닫게 되었고 동시에 2학기 수강신청 날이 밝았다. 전날까지만 하더라도 플랜 A와 플랜 B까지 짜 두었는데 당일이 되니 회의감이 몰려왔다. 비록 내가 4학년이지만 이렇게나 마음 급하게 모든 것을 밀린 숙제를 하듯이 후다닥 해치워야 할 필요가 있을까? 이러려고 내가 유럽까지 갔다 온 걸까? 찰나의 순간에 들었던 생각이었지만 한번 머릿속에 들여놓고 나니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듯이 나의 마음까지 헤집어 놓았다. 그리고 나는 수강신청을 깔끔히 포기한 후 곧바로 4학년 2학기에 휴학을 해 버렸다. 23년을 살면서 한 번도 쉼을 가져본 적 없던 나에게는 꽤나 충격적인 결정이었다.(부모님과 상의도 안 하고 말이다. 이래 봐도 집에서는 4 자매의 맏딸로서 어느 정도 성실한 딸로서 신임을 얻은 사람이다. 그렇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잘하는 게 뭐지? 내가 좋아하는 게 뭐지? 지금쯤이면 늦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