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 일상 in Porto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으로 요거트와 어제 사둔 나타 하나를 챙겨 먹은 나는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오늘은 조금 일찍 서둘렀는데 비가 와서 충분히 둘러보지 못한 어제의 일정 때문에 마음이 급해졌기 때문이다. 여유가 필요해서 이고세 왔지만 그래도 포르투를 충분히 즐길 만한 시간은 가져야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아. 준비한다고 복도를 왔다 갔다 거렸는데 그때마다 Gil도 내 뒤꽁무니를 쫓아 따라다녔다. 마음 같아서는 바닥에 주저앉아 Gil을 만져주고 싶었지만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 그저 말대꾸만 해주었는데 준비를 다 하고 신발을 신으려고 하니 바로 옆 의자에 앉아 마중을 나왔다. 잘 다녀올게 Gil, 집 잘 지키고 있어 :-)
비가 내려서 그런지 대부분의 시간이 어두컴컴했었는데 오늘은 너무나도 화창하다. 유럽에서 4개월밖에 안 살았지만 그동안 이곳에 살면서 나도 몰랐던 나의 특징을 알 수 있었다. 바로 하루의 기분이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 이렇게나 날씨가 오락가락한 유럽에서 해만 뜨면 사람들이 다들 길거리나 풀밭으로 가 햇빛을 쬐는 이유를 알았다. 언제 다시 어두컴컴해질지 모르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햇빛을 오롯이 다 흡수하기 위해서 이다. 언덕 위에 위치한 숙소라 저녁에 돌아올 때는 조금 버겁지만 반대로 하루를 시작할 때는 내리막길이 되어 발걸음에 속도가 붙는데 괜히 씩씩하게 걷게 된다. 그늘과 햇살을 받는 길을 계속해서 걷다 보니 보라보라 한 나무도 만났다. 눈이 호강하는 아침이다.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어제와 달리 사람들도 많이 보이고 옷차림도 알록달록하고 가벼운 게 여름이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오늘 아침 겸 점심은 혼자 먹으려고 했다. 하지만 집을 나서기 직전 우연히 들어가 본 유랑 카페에서 함께 밥을 먹을 사람을 구한다는 글을 발견했다. 혼자보다는 둘이 낫겠지라는 생각에 곧장 레스토랑으로 향했고 제일 먼저 도착해 동행을 기다렸다. Voltaria. 처음 보는 여자 세 명이서 식사를 하다니, 한국이었으면 상상도 못 했을 것 같은데 유럽이니까 정말 자연스럽게 서로 인사하고 메뉴를 들여다보고 음료를 주문했다. 처음 만났지만 생각보다 말이 잘 통했는데 문득 동행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MBTI에서 E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들 낯을 안 가릴 수가 없다. 호탕한 주인아주머니가 주문을 받아주셨는데 나까지도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도 나는 역시나 샹그리아를 주문했는데 지금껏 마셔본 샹그리아 중 가장 맛있었다. 음료를 마시고 있으니 주문한 메뉴가 하나씩 나와 테이블을 가득 채웠다. 가장 먼저 나온 메뉴는 대구살로 만든 크로켓 같은 음식이었는데 동행 중 한 명이 이 메뉴가 맛있다고 해서 애피타이저로 주문했다. 그런데 크로켓의 핵심인 따뜻함과 바삭함이 없어 실망했다. 그래도 이곳에서 맛본 첫 음식이기에 다 먹었다.
얼른 다음 메뉴가 나오기를 기다렸고, 곧장 문어 샐러드가 나왔다. 한번 문어를 맛보고 나니 이제는 포르투에서 빠트리면 섭섭할 정도로 무조건 주문해야 하는 메뉴가 되었다. 그리고 함께 나온 오늘의 하이라이트 음식! 바로 포르투갈의 전통음식 중 하나인 '프란세지냐' 원래는 에어비앤비에 있는 액티비티(활동) 만들기 체험을 해보려고 했다. 왜냐하면 에어비앤비 포르투갈에서 제공되는 액티비티 중 유일하게 한국인이 진행하는 체험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암스테르담에서 의도치 않게 아주 비싼 우버를 타게 되어 주머니 사정이 궁핍해져 어쩔 수 없이 포기했다. 맛있다고 유명한 레스토랑에서 파는 음식으로 달래려고 했는데 한 입 먹어보니 직접 가서 만들어 먹었으면 조금 실망했을 것 같은 맛이었다. 역시 음식은 남이 만들어주는 게 제일 맛있는 거 같다.
밥을 다 먹은 후 나는 동행 한 명과 함께 포르투에 오면 한 번쯤 찍어줘야 한다는 유명한 포토스팟을 찾아 걸었다. 한 5분 정도 걸었을까, 멀리서 봐도 눈에 띌 정도로 광장 한복판에 파란색으로 Porto라는 글자가 세워져 있었다. 사람들이 별로 없었던 덕분에 동행과 나는 서로의 인증사진을 돌아가며 찍어주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여행객들이 우리들 뒤로 줄을 섰다. 그래서 결국 나는 한 무더기의 외국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얼굴에 철판을 깔고 행복한(척)을 하고 포즈를 취했다. 하하 나는 행복하다.
점심을 거하게 먹어 이제는 아무것도 못 먹겠다고 손사래를 치고 나왔다. 그리고 한 5분쯤 걸었을까? 내 앞에는 나타를 파는 가게가 나타났고 자연스럽게 안으로 들어가 나타 하나를 주문해 가지고 나왔다. 디저트 먹을 배는 있는 것 같다고 동행과 서로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며 한입 베어 물었는데 역시 나타는 나오자마자 따뜻할 때 먹는 게 최고인 것 같다. 나타 위에 시나몬 가루까지 뿌려 먹으면 맛있는 거에 맛있는 거를 더해 더욱더 맛있는 맛을 느낄 수 있다. (거기에 에스프레소 한 잔이면 천국이 따로 없다) 당분이 폭발하는 디저트까지 먹어주니 이제 정말 잘 걸어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출발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