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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Dec 28. 2020

[DAY112(3)] 지붕 위에 피어난 보라색 꽃

지수 일상 in Porto


공원에서 멍-때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던 나는 예상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벤치에 앉아있었다.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눈으로 확인하고서야 후다닥 일어나야 했으니 말이다. 오늘은 어제 비 때문에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던 동 루이스 다리를 꼭 건너가 보겠다는 생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구글 지도를 켜서 어플이 알려주는 대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낯선 곳이었는데 그래도 색색깔의 타일을 볼 수 있어서 심심하지 않게 집을 둘러보며 걸어갔다. 한국처럼 아파트 천국이었다면 과연 똑같은 반응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포르투에 도착한 3일째 되는 날이 되어 처음으로 다리와 그 건너편을 제대로 보는 것 같다. 동 루이스 다리, 포르투에 왔으면 무조건 보게 되는 다리인데 나는 왜 이렇게 만나기가 힘들었을까? 어제 괜히 건너편에 넘어가겠다고 지나갔다가 죽도 밥도 안는 것보다 깔끔하게 포기하고 오늘처럼 날씨가 좋을 때 와보게 되어 다행이었다. 분명 같은 곳인데도 불구하고 어제와는 다른 경관과 분위기에 꽤 색달랐다. 주황색 지붕만 가득했던 어제와 달리 오늘은 집의 색깔도 보이고 지붕 위에 피어난 꽃의 색깔도 구분할 수 있었다. 다리를 건너면 만나게 될 건너편 마을의 건물과 길의 모양도 보고 푸르른 강 색깔도 보다니.



포르투의 유일한 지하철이 이곳 동 루이스 다리도 지나다니는데 꽤 저속으로 움직이는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다리를 찾는 사람들이 오른쪽과 왼쪽을 오고 가는 걸 고려하면 꽤나 위험해 보이는 상태였다. 나도 걸어가다가 마주오는 사람을 피하려고 전철이 다니는 쪽으로 피했다가 뒤쪽에서 지하철이 온다는 알람을 듣고 깜짝 놀라며 바깥쪽으로 몸을 피했다. 조금 더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여름이 되면 안전을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의 체계가 필요해 보였다. 그래도 이곳까지 왔는데 다리의 오른쪽만 볼 수는 없다는 생각에 다른 관광객들처럼 나 또한 조심하며 지그재그로 왔다 갔다 하며 구경했다. 안전제일!



다리의 왼쪽으로 넘어오니 가장 먼저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바로 뻥 뚫린 흐르는 강, 그리고 더욱 붉게 느껴지는 주황색 지붕. 일반적으로 한국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대부분이 초록색 페인트가 칠해진 옥상이 제일 눈에 뜨일 것 같은데 이곳은 옥상도 없고 열에 아홉은 전부 지붕으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크로아티아에만 있는 줄 알았던 트램을 이곳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바로 오르막길에 있는 트램을 뜻하는 푸니쿨라!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 있는 것보다는 조금 더 긴 것 같아 알다가도 모를 안도감이 들었다.(휴)



동 루이스 다리에 올라와 포르투만이 가지고 있는 풍경을 오랜 시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참을 바라보고 있으니 왜 다들 포르투가 예쁘다고 하는지 알 것만 같았다. 포르투에 오기 전 자그레브에서 처음 알게 된 동생들이 있었는데 그 친구들이 정말 장난 없다는 말투로 꼭 포르투로 가라며 신신당부를 했다. 사실 그 친구들 말을 듣고 오게 된 것은 아니었지만 약간의 양념? 결정을 할 때 약간의 무게를 실어준 사람으로서 역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잊지 못할 이 시간, 그리고 이 장소에 나중에 또 한 번 와보고 싶다. 그때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와도 괜찮을 것 같다. 그리고 아무도 인정해주지는 않겠지만 나만의 힐링도시로 삼고 싶다. 힘들 때면 찾을 수 있는 약간의 도피처 같은?



Hi there?이라고 말해주는 듯한 그래피티 벽화도 만났다. 유럽에서 여행을 하거나 살게 된다면 그래피티는 정말 쉽게 만나는 것들 중 하나인데 내가 살던 크로아티아도 그래피티로는 빼놓을 수 없는 곳이었다.  조금 특이한 건 북유럽(덴마크)을 가보았던 시간들을 되살려 볼 때, 내 기억에는 남는 벽일지라도 그래피티가 있는 건 거의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이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그래피티가 도시 곳곳에 있었는데 경관을 너무 심하게 해치지 않는 선에서는 어느 정도 그래피티가 도시의 활기를 살려주는 것 같아 그것 또한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꽤나 인심 좋아 보이는 할아버지 그래피티를 지나 구글이 알려주는 한 골목으로 들어갔는데 조금은 으슥한 골목길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무조건 큰길로 돌아갔었을 길도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씩씩하게 가보기도 했다.



으슥했던 길을 지나면서도 내가 가고자 했던 곳,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이곳! 이것이 진정한 무작정 떠나는 뚜벅이 여행이던가? 한 번쯤 보고 싶었지만 언제가 될지는 몰랐는데 드디어 오늘 파두 공연을 보게 되었다. 전날 파두 공연을 한다는 곳을 알게 된 나는 오늘 점심을 함께한 동행에게 함께 가실래요? 라며 운을 띄었고 쿵작이 맞은 우리는 그 자리에서 곧바로 예약을 했다. 당일 예약이 가능해서 정말 정말 다행이었다. 따로따로 하루를 즐기다가 파두를 보기 위해 나와 동행은 공연시간에 맟춰 공연장 앞에서 만났다. 하지만 공연은 7시에 시작되었기에 우리는 난데없이 길에 서서 7시가 되기만을 기다려야 했다.(약 30분 정도 기다려야 했었다.)



그럴 때는 뭐다? 우리에게 주어진 풍경을 흠뻑 감상하는 것. 춥지 않은 바람도 불고, 사람들은 여유롭고, 새로 만난 사람들은 조금 낯설지만 안정된 이 느낌. 한참 동안 이야기도 하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어제 광장 가는 길에 만났던 청년을 또 마주쳤다. 오늘은 어제와 조금 다른 분위기의 감성 돋는 피아노 연주를 했는데 그의 뒷 풍경과 어우러지니 완벽했다. Perfect이요. 어떻게 보면 지루할 수 있는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이렇게까지 눈과 귀가 즐겁다니, 오늘은 아주 감성으로 하루가 가득 차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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