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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연 Dec 01. 2021

11월 뉴욕 전시 리뷰

2021_1130

뉴욕 전시 리뷰는 개인 아카이브를 위해 작성하는 지극히 개인적 취향이 담긴 단상이다.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전시들 중, 기록하고 싶은 작가나 전시를 한 달 단위로 메모하려고 한다.


1. César: Sacred Anarchy

@Salon94, 09.14 ~ 10.30, 2021 09.14–10.30.2021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살롱 94의 새 해드쿼터가 어퍼 이스트에 지난 3월 오픈했다. 건축가, 라파엘 비뇰리가 레노베이션을 맡았고, 꽤나 공들여 단장한 흔적을 맨션의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이 해드쿼터는 내년이면 살롱 94의 Jeanne Greenberg Rohatyn와 3명의 딜러(Amalia Dayan, Dominique Lévy, Brett Gorvy)가 합병을 하는 LGDR의 새 보금자리로 쓰일 예정이다. 몸집을 계속해서 키우고 있는 페이스나 개고시안, 즈워너, 하우져앤워스를 상대하기 위해 중소 갤러리들은 합병을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전시 마지막 날에 갔었던 살롱 94는 3개의 개인전이 층마다 아름답게 전시되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엄지 손가락 조각으로 알려져 있는 프랑스 조각가 세자르의 1960-70년대 작업이 르네상스 양식의 타운하우스에 이전부터 있었던 듯, 융화되어 자리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2. Meredith Bergmann: Women's Rights Pioneers Monument

@Central Park, 08.26, 2020 ~ Present

어퍼 이스트에서 센트럴 파크를 가로질러 서쪽으로 향하는 중에 이전에 보지 못했던 조각품이 있어 사진에 담았다. 찾아보니 2020년 8월 26일, 여성 평등의 날에 세워진 조각품이었고, 센트럴파크에 처음으로 여성을 기리는 동상 <여성 인권 선구자>이 세워진 거라고 한다. 메러디스 버그만이 제작한 이 동상은 흑인 해방운동가인 소저너 트루스와 노예제 폐지 운동가이자 미국 최초의 여성 참정권자인 수잔 비 앤서니, 여성인권운동가인 엘리자베스 스탠턴 등 모두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한 인물을 본떠 만든 동상이다. 수많은 여성 학자들은 "역사는 남성에 의해 쓰였고, 그것이 동상과 기념비들이다."라고 이야기해왔으며, 이러한 목소리는 비영리 단체인 'Monumental Women'으로 세워지게 됐다. 여성인권 동상을 세우기 위한 운동은 현재까지도 진행 중이다. 어린아이들이 여성 인권을 위해 애썼던 인물들을 가리키며 궁금해하고, 그 앞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에 왠지 마음이 뭉클했다.


3. Kandis Williams: A Line

@52 Walker, 10.28, 2021 ~ 01.08, 2022

슛 더 랍스터에서 성공적 딜러로 이름이 오르내렸던 헤인스는 즈워너의 새로운 트라이베카 갤러리, 50 Walker의 프로그램을 맡아 첫 전시를 여는 작가로 캔디스 윌리엄스를 선택했다. 기대가 컸던 탓일까? 보도자료의 내용은 방대했지만 보여지는 작업에서 보도자료의 내용에 대해 생각하고 느낄 수 없었다. LA에서 활동하는 윌리엄스는 이번 전시를 위해 뉴욕에서 작업한 23 점의 신작(콜라주, 페인팅, 조각, 비디오)을 선보이며 무용을 렌즈로 삼아 무용의 역사와 오늘날 대중문화가 그리고 있는 흑인의 몸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전시를 보면서 내내 생각했던 것은, 왜 윌리엄스는 '무용'이라는 장르를 가져와 흑인의 역사와 몸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만 했을까? 이번 전시에도 또 다시 보이는 식물은, 왜? 더 이상 전시에서 보태니컬적인, 작가가 말하려는 의도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닌 이상 이제는 식상하다. 식물의 잎에 가려져 있는 검은색 핀이 작품인지 그저 데코레이션인지 묻는 관람객에게 헤인스는 "I can't decide it"라고 짧게 대답했다.


4. Ella Kruglyanskaya: Keep Walking

@Bortolami, 10.29 ~ 12.18, 2021

LA에서 활동하는 라트비아 작가, 크루글리안스카야(b.1978~)는 여성의 형태를 다소 과장하는 가운데 동시대 여성상을 위트 있게 유화로 그려내고 있다. 드로잉과 페인팅의 경계가 허물어진 듯 속도감이 느껴지는 붓질과 일러스트적인 경쾌한 느낌이 먼저 다가오긴 하지만, 작업을 천천히 보고 있으면 꽤나 시니컬한 내용을 읽을 수 있다. 앞으로 선보일 작업들도 계속해서 지켜보고 싶은 작가다.


5. Jasper Johns: Mind/Mirror

@Whitney, 09.29, 2021 ~ 02.13, 2022

하반기에 진행되는 위트니 전시가 무척이나 흥미로운데, 제니퍼 패커의 개인전은 올해의 베스트 전시로 꼽고 싶고, 함께 전시되고 있는 제스퍼 존스 회고전 또한 큐레이팅과 전시디자인이 잘 된, 그리고 제목을 무척이나 잘 뽑은 전시라는 생각이 든다. 1954년부터 현재까지의 작업을 총망라한 이번 회고전은 "MInd/Mirror"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존스가 현재까지 구축해온 세계관의 키워드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다. 따라서, 미러링 되고 이중 구조화된 그의 세계관을 전시디자인에서 뿐 아니라, 존스가 오랜 시간 관계를 맺어온 위트니와 필라델피아 미술관 두 곳에서 동시에 전시를 진행하여 이들 두 전시가 서로를 반영하는 구조적 형태를 띠고 있다. 존스의 작업을 살펴보고 있으면 그 어떤 작가들보다도 직접적으로 그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나온 느낌이 드는데, 작업 하나하나가 하나의 완성된 작품이라기보다는, 끊임없는 질문에서 나오는 실험적 과정으로 느껴지기 때문이 아닐까..


6. Nature by Design: Botanical Expressions

@Cooper Hewitt, ~ 04.10, 2022

애드워드 맥나이트 카우퍼 전시 때문에 갔다가 1898년 독일에서 만들어진 이 모형의 생김새가 추상적이면서도 견고하여 오랜 시간 보게 되었다. 수세기에 걸쳐 디자이너들이 어떻게 자연에 영향을 받아 패턴과 형태를 모방하고 추상화했는지를 쿠퍼휴잇의 215,000개의 방대한 컬렉션: 직물과 보석, 가구, 식기류 등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중에서도 위의 사진 속 조각품들은 독일의 R.Brendel & Co. 에서 만들어진 모형으로 과학 교육 카탈로그로 사용되기 위해 만들어진 300종 중 하나라고 한다. 교육용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식물의 세부사항을 볼 수 있도록 실제보다 크게 만들어졌으며, 유럽과 미국의 박물관과 교육 기관에서 구매가 시작되어 전 세계적으로 판매되었다고 한다. 교육용으로 만들어진 모델이라고 하지만, 미적으로 단상이나 꽃의 비율과 형태와 재료를 무척이나 공들여 만든 작품으로 현대적이고 아름다웠다.


7. Tobias Spichtig: GOOD OK GREAT FANTASTIC PERFECT GRAND THANK YOU

@Swiss Institute, 09.09, 2021 ~ 01.09, 2022

폐쇄된 상점에 버려져있는 듯한 페인팅과 휴머노이드 옷들이 거울로 둘러싸인 전시 공간을 연출한 작가는 베를린과 취리히에서 활동하는 토비아스 스핏티그(b.1982~)다. 이 전시를 어떻게 봐야 할까? 미국에서의 첫 개인전에 대해 스핏티그는 독일의 철학자이자 신학자이기도 한 니콜라우스 쿠자누스의 이론에 영향을 받아 이 전시를 기획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전시장 가득히 느껴지는 껍데기로만 이뤄진 공허함 속에 보는 행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전시 제목 또한 전화 통화를 마무리할 때 말하는 공허한 메아리로 들린다.  


8. Edmund de Waal

@Gagosian, 980 Madison Aenue

에드문드 드 왈의 잘 알려진, 선반에 놓인 미니멀한 도자 작업을 여러 곳에서 많이도 봤지만 그렇게까지 와닿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최근 쥬이시 미술관에서 그가 쓴 저서, <The Hare With Amber Eyes>를 차용한 전시를 보고 난 후, 개고시안에서 보게 된 왈의 전시는 무척이나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가 다루는 재료들과 재료들로 만들어지는 작업들, 그것이 놓이는 장소에 대해 무척이나 섬세하게 다루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동일한 사물을 끊임없이 재해석해 바라보는 일을 무척이나 즐기는 사람이라는 것 또한 알 수 있었다. 비교적 작은 공간이었지만 그 어떤 공간보다 그의 작업을 이해하기에 잘 프리젠테이션된 전시였다.


9. Anthony Lacono

@International Studio & Curatorial Program

P.P.O.W에서의 라코노 전시를 기억하고 있다. 현재 ISCP에서 레지던시 작가로 있으며 그의 작업은 주로 채색한 종이를 오려 콜라주를 하는 방식이고, 영화 포스터나 본인의 내밀한 이야기를 소재로 작업해 나간다. 작업 과정이 무척이나 흥미로우며, 팬대믹 기간 동안 작업한 본인의 수염을 재료로 삼은 작품들 또한 이상하리만치 계속 생각난다.


10. Dustin Hodges: Francine

@15 Orient, 10.22 ~12.18, 2021

미셸 공드리의 아들인 폴 공드리와 그의 친구 셸비 젝슨이 운영하는 갤러리다. 미셸 공드리가 소유하고 있는 브루클린의 타운하우스를 전시장으로 꾸며 사용하고 있다. 전시가 진행 중인 더스틴 허지(b.1984~)의 페인팅들은 애니메이션 필름을 잘라 붙인 듯한 인상을 풍기고 있는데, 여러 상황으로 작업을 좀 더 찬찬히 보지 못하고 나와 아쉽다. 15 오리엔트는 미국에서 선보인 적이 없는 작가들 중 필름과 연관되거나 몽환적인 느낌이 나는 작업들을 지속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들의 한결같은 테이스트가 나로서는 늘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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