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_1029
뉴욕 전시 리뷰는 개인 아카이브를 위해 작성하는 지극히 개인적 취향이 담긴 단상이다. 스쳐 지나가게 되는 수많은 전시들 중, 기록하고 싶은 작가나 전시를 한 달 단위로 메모하려고 한다.
1. Cinga Samson: Iyabanda Intsimbi / The metal is cold
@ Flag Art Foundation, October 16 - January 15, 2022
다른 일 때문에 들렸다가, 삼손의 개인전에 마음을 뺏겨버렸다. 최근 들어 더욱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업들을 여러 갤러리들과 미술관들에서 앞다투듯 선보이고 있는데, 삼손의 회화는 최근에 본 아프리칸 작가들 중 압도적으로 자신의 색이 분명히 드러나는 작업이었다. “폭력의 본질을 탐구한다”는 작가의 말처럼, 신작으로 구성된 26점의 유화 속 여러 초상들은 미묘하고 기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의 회화 속 모든 인물들은 눈동자가 없이 뚫리고 찢어진 공막으로만 표현되는데, 어두운 배경 안에서 도드라지는 인물들의 흰 눈은 더욱 기괴하고 환각적인 감각마저 불러일으킨다. 플래그 아트 파운데이션의 설립자이자 저명한 아트 컬렉터인, Glenn Fuhrman의 후원을 받아 여러 미술관에 그의 작품들이 소장되었고, 2023년에는 그의 개인전이 개최될 예정이라고 한다. 패로탱에서 작업을 선보였던 그는, 최근 화이트 큐브와 독점 계약을 했다. 이번 프리즈 위크 기간에 열렸던 소더비 경매에서는 블랭크 프로젝트(Blank Projects)에서 $15,000에 팔렸던 <Lift off>(2017)가 $439,000에 입찰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1986년 생인 그가 앞으로 그려낼 작업들이 어떻게 진행될지 기대된다.
2. BRUCE CONNER & JAY DEFEO (“we are not what we seem”)
@Paula Cooper, September 9 – October 23, 2021
폴라 쿠퍼는 개인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딜러고, 그의 취향을 사랑한다. 이제는 할머니가 되어 10 에비뉴를 힘들게 걸어 다니는 모습에, 조금은 가슴 찡하기도 하지만, 작가와 작업을 보는 눈빛만은 누구보다 날카롭고 또한 빛난다. 이번 전시는 오랜 친구였던 예술가, 브루스 코너와 제이 드페오의 작업을 한 자리에 선보인 자리였다. 1958년부터 1966년까지 진행된 드페오의 기념비적 작업 <Rose>를 그의 2층 작업실에서 옮겨야 했을 때, 코너는 드페오의 작업이 옮겨지는 장면을 7분 30초의 영상, <The White Rose>(1967)로 담아냈다. 전시장 안쪽으로 <The White Rose>에서 흘러나오는 사운드가 전시장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잡아주면서 두 예술가가 평생 동안 서로의 작업에 대해 영향을 주고받으며 예술적 관계를 쌓아 온 궤적을 아름답고 시적인 공간으로 연출였다. 최근에 본 전시 중 가장 가슴 벅차게 아름다웠다.
3. Louise Lawler: LIGHTS OFF, AFTER HOURS, IN THE DARK
@Metro Pictures, September 9 – October 23, 2021
1980년에 세워진 메트로 픽쳐스 갤러리는 지난 3월, 2021년 12월을 마지막으로 폐관한다는 발표를 전했다. 흥미로운 작가들을 새로운 전시 방식으로 선보여왔던 갤러리였기에, 이 소식이 무척이나 속상하고 안타깝다. 지나간 전시들을 곱씹으며, 얼마 남지 않은 전시 하나하나에서 미술계를 향해 던지는 메시지가 더욱 강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루이스 롤러의 최근 작업을 선보인 "LIGHTS OFF, AFTER HOURS, IN THE DARK" 전시는 2020년 뉴욕 모마에서 열린 도널드 저드의 회고전을 미술관이 문 닫은 이틀 밤 동안 출구 표지판이나 복도에서 나오는 빛만을 가지고 장 노출해 찍은 사진들이다. 전시장의 모든 표면은 검고 매끈한 가운데 저드의 미니멀한 선들을 희미하게 살펴볼 수 있다. 롤러는 미술관이나 갤러리, 아트페어, 경매장, 개인 주택 등에 놓여있는 작품들을 촬영해 대상의 삶과 작품이 보여지는 맥락과 상황을 조명하여 자본주의 체제와 미술품이 유통되는 구조, 그리고 성적 불평등의 비판적 태도를 사진을 매체로 발표해 왔다.
4. Anthony Cudahy: Carol Room
@HALES, September 10 – October 30, 2021
퀴어를 주제로 인물을 그리는 작가들은 참 많다. 하지만 쿠다히가 그리는 인물들은 보는 이를 화면 안으로 끌고 들어가게 하는 힘이 있다. 그건 아마도 작가가 병적일 정도로 퀴어와 관련된 사진들이나 자료들을 모아 또 다른 친밀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재능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그의 시그니처가 된 화면 위에 칠해진 밝은 채도는 화면 속 인물들 내면에 랜턴을 켜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1969 갤러리와 댈리 갤러리에서 보았던 작업들보다 화면 구성이 전체적으로 더 안정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유화가 아닌 색연필화는 이번 전시에서 처음 보게 되었는데, 시각적 요소보다 촉각적 느낌이 더 와닿을 정도로 독특했다.
5. Ron Nagle: Necessary Obstacles
@Matthew Marks, September 10 – October 23, 2021
몇몇 애정하는 갤러리들이 있는데, 매튜막스도 그중에 하나다. 론 네이글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작가이고, 공예전문 큐레이터에게 물어보니 도예작가로 워낙에 유명한 작가였다. 분야를 떠나서, 일단 작업들이 굉장히 오밀조밀 자연스러운 손맛이 있는 듯하면서도, 강박적인 완벽주의적 면모까지 느껴져 소장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작품들이었다. 전시 방식도 내부와 외부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입체적으로 구성한 점도 재밌었고, 한쪽 벽면에 걸린 그의 드로잉들은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를 그려놓은 듯 징그러우면서도 사랑스러워 보였달까. 네이글에 대해 의외였던 점 두 가지는, 생각보다 나이가 많은(1939년생) 작가였다는 것, 그리고 앨범을 낸 작곡가이기도 하다는 것. 이런 반전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오긴 한다.
6. Alice Neel: The Early Years
More Life
@David Zwirner, September 9 – October 16, 2021
최근 몇 년간 메가 갤러리들(개고시안, 페이스, 하우져앤워스)은 미술관급 전시를 선보여왔다. 그중에서도 데이비드 즈워너가 선보이는 작가들과 전시들은 동시대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이슈들을 적극적으로 가져와 관람객들과 긴밀하게 소통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즈워너에 소속된 작가들의 목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들리게 되고, 이슈화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들의 탄탄한 전시 기획력은 기관의 여러 큐레이터들과의 협업을 통해 이루어질 뿐 아니라, 꾸준한 팟캐스트를 통해 여러 분야의 아티스트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자신들의 출판사를 견고히 함으로써 소속 작가들의 히스토리를 만들어 낸다는데 있을 것이다. 컬렉터의 취향에 맞춰 작가의 전시가 이뤄지는 것이 아닌, 그들을 교육시킴으로써 양질의 작업과 작가들을 소개한다고 생각한다. 즈워너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열린 전시들 중, 엘리스 닐의 초창기 종이 작업을 볼 수 있었던 전시도 흥미로웠지만, "More Life"라는 제목 하에 에이즈를 주제로 다루는 여러 작가들의 개인전 또한 무척이나 관심 있게 봤다. 미국 질병통제센터(Centers for Disease Control)에서 에이즈 질병에 대해 발표한 지 40주년을 맞이한 프로젝트성 전시다. 포함된 작가로는, Ching Ho Cheng, Derek Jarman, Frank Moore, Mark Morrisroe, Jesse Murry, Marlon Riggs, Silence=Death collective, Hugh Steers로, 8명의 개인전이 차례로 진행되고 있다.
7. Robin F. Williams: Out Lookers
@P.P.O.W, October 15 – November 13, 2021
Wendy Olsoff와 Penny Pilkington 두 여성 딜러의 이니셜을 따서 1983년에 세워진 PPOW갤러리는 2021년 첼시에서 트라이베카로 이전했다. 현재 많은 갤러리들이 트라이베카로 이전한 상태긴 하지만, PPOW가 이전 후 선보이고 있는 여성 작가들의 힘 있는 전시가 첼시에 있었을 때보다 더욱 눈에 들어온다. 공간이 가지고 있는 힘이 있는 것 같다. 현재 전시하고 있는 윌리엄스의 회화는 또래 작가들(1980년생들)이 선보이고 있는 여성의 몸을 비현실적 상황과 결합해 그려낸다는 점에서 비슷한 연결고리를 갖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회화의 표면을 오랜 시간 연구해 오일과 아크릴, 색연필, 파스텔, 에어브러시, 거친 벽토와 같은 여러 성질의 재료들을 배경과 내용에 맞게 레이어 함으로써 그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는 듯 보인다. 2020년도 작업에서는 웃는 얼굴 작가로 유명한 웨엔민쥔의 작업이 떠올려지기도 했지만, 최근 작업에서는 본인의 작업 내용과 스타일을 찾은 것 같아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현재 개고시안 프린트에서도 전시가 진행 중이다.
8. Michael Dean: A Thestory of Luneliness for Fuck Sake
@Andrew Kreps September 10 – November 6, 2021
마이클 딘은 2016년 터너상 최종 후보에 올랐던 작가다. 뉴욕에서는 좀처럼 유럽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작업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각보다 많지 않기 때문에, 딘의 작업을 실제로 볼 수 있었던 이번 전시가 무척이나 반가웠다. 언어 그리고 자신이 쓴 글을 물리적 형태로 번역하는 것으로 작업을 시작하는 딘은 값싼 재료, 시멘트나 철근, 공사장에서 쓰이는 테이프 등을 사용해 조각물을 만든다. 그의 작업을 처음 맞닥드렸을 때 느껴지는 위트는, 작업을 찬찬히 들여다볼수록 시니컬하고 복잡한 기분이 든다. 이번 해에 한국에서 열렸던 개인전은 "Garden of Delete"란 제목으로, 뉴욕에서의 전시 제목은 "A Thestory of Luneliness for Fuck Sake"로 정한 것을 생각해 보면서, 전략적인 건지 아니면 솔직한 건지 가늠하기 힘들지만 폭풍우 같은 감정을 자신의 온몸을 써서 작업에 쏟고 있는 것만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9. Clay Pop
@Deitch Project, September 10 – October 30, 2021
제프리 다이치의 행보는 매번 미술계에서 다양한 뉴스거리였다. 뉴욕에서 잘 나가는 딜러였던 다이치가 자신의 갤러리, 다이치 프로젝트를 뒤로하고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LAMOCA)의 관장으로 임명된 것은 미술계에 꾀나 커다란 여파였다. 물론 다이치의 여러 배경(하버드대학의 MBA 출신 및 시티은행 미술품 투자전문가)이 경영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LAMOCA에게 구원투수로 여겨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겠지만. 그리 길지 않은 3년의 임기를 마치고 뉴욕으로 다시 돌아온 다이치는 2016년부터 화제성을 불러일으키는 전시를 매번 만들어내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전시가 현재 뉴욕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른 전시에 비해 급진적인 전시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라고 단호하게 얘기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미 몇 년 전부터 순수미술을 다루는 로우어 이스트 쪽 갤러리들이 공예나 디자인을 다루는 작가들의 작업을 꾸준히 선보여 왔고, 살롱 94 같은 갤러리는 디자인계열의 공예품만 선보이는 갤러리를 따로 낼 정도로 디자인/공예 분야의 예술과 순수미술의 경계가 허물어진 지 오래됐기 때문이다. 그만큼 동시대적인 공예와 디자인 작품을 원하는 컬렉터의 수요가 많아졌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번 전시가 흥미로웠던 점은, LA를 기반으로 도자를 재료로 하여 활동하는 젊은 작가들의 작업을 한 자리에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동시대 도자의 흐름을 다시 한번 맛볼 수 있었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