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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연 Feb 01. 2022

1월 뉴욕 전시 리뷰

2022_0131

뉴욕 전시 리뷰는 개인 아카이브를 위해 작성하는 지극히 개인적 취향이 담긴 단상이다.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전시들 중, 기록하고 싶은 작가나 전시를 한 달 단위로 메모하려고 한다.


1. Lucy Puls: Oppline Perception

@Nicelle Beauchene, December 9, 2021 — January 22, 2022

니셀 보쉬네가 선보이는 작가들을 늘 관심 있게 지켜본다. 2022년을 여는 작가로 루시 펄스(b.1955)를 선택했고, 작은 전시였지만 펄스가 앞으로 선보일 미술관급 전시가 머릿속에 상상될 만큼 작업의 내용과 형식이 흥미로웠다. 자본주의가 인간(영혼)에게 미치는 영향에 관심을 두고 지난 30여 년간 작업해온: <Geometria Concretus>(2011-2015), <Accumulatus Verissime>(2016-ongoing), 그리고 <Delapsus> (2017-ongoing)을 처음 뉴욕에 선보였다. '집'에 대한 펄스의 관심은 버려지고 남겨진 물건을 중심으로 시작되는데 1980년대 초반부터 길가에 버려진 장난감이나 가전제품, 백과사전, 가구 등을 수집하기 시작한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벌어진 후 캘리포니아 베이 지역의 텅 빈 주택(은행 소유)의 내부를 사진 찍어 작업에 적극적으로 가지고 들어오게 된다. 펄스의 작업이 흥미로운 이유는 미디엄과 주제가 단번에 보이는 것이 아닌 작업을 진행해 온 시간이 켜켜이 쌓여 형용할 수 없는 형태로 나오기 때문인 것 같다. 작업이 보이는 구성 자체가 펄스만의 절제된 언어로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계속해서 들여다보게 되고, 그 시간 속에서 작가의 이야기를 수수께끼 풀 듯 바라보게 된다. 특히나, <Geometria Concretus 12-39> 작업은 소장욕구가 들 정도로 조각과 사진의 압축적인 미의 형태를 보여준다.


2. 8 Americans

@Chart, November 12, 2021 — January 22, 2022

어딜 가든 아프리칸 아메리칸 작가들의 작업들이 넘쳐나는 가운데 차트 갤러리에서 열리는 8명의 아시안 아메리칸 작가들의 전시 소식은 반갑고 반가워 일부러 그 어떤 기사도 읽어 보지 않은 채 갤러리를 찾았다. 애정하고 응원하는 작가들이 있었기에 기대가 더욱 컸던 걸까. 전시장에 보석 같은 작업들이 걸려 있는데도 전시장이 휑했다. 보도자료에 적힌 흥미로운 내용을 전시의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기획의도에는 8명의 아시안 아메리칸 작가를 선정한 이유에 대해 나와있다. 8이라는 숫자가 아시아에서 갖는 길조라는 의미와 상반되게, 2021년 3월 애틀랜타에서는 8명의 아시아인이 총격사건으로 사망했다. 그들 8명을 기리며 아시안 혐오 범죄가 벌어지고 있는 현시대를 반추하기 위해 이번 전시가 기획됐으며, 기획의 형식은 크리스토퍼 케이 호(작가)와 데이지 남(큐레이터)의 서신 모음집,『Best! Letters from Asian American in the Arts』를 따른다. 갤러리 측은 8명의 아시안 아메리칸 참여 예술가들에게 자신의 개인적 경험에 대한 편지를 제출해달라고 요청하고 주변 지인들 또한 초대해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해 달라고 요청한다. 편지의 내용은 차트 웹사이트에 롤링 베이스로 업데이트된다. 웹사이트에 올라온 작가들의 편지가 전시보다 더 흥미로우면 어쩌란 말인가.


3. Rosalind Nashaschibi: Darkness and Rest

@GRIMM, December 10, 2021 — January 15, 2022

갤러리를 들어서는 순간 숨이 크게 쉬어지며 오랜 시간 머물게 되는 전시가 있다. 그건 갤러리 공간이 크고 작고의 문제가 아니라 전시가 기획 의도에 맞게 잘 꾸려졌을 때 내쉬어지는 숨과 시간이다. 그런 면에서 그림 갤러리는 늘 나에게 만족스러운 공간이었다. 그림에서 3번째로 열리는 로잘린드 나샤시비 (b.1973)의 개인전 또한 오랜 시간 발길을 뗄 수 없었는데, 16mm 필름을 주로 다루는 나샤시비가 회화까지도 이렇게 아름답게 토해낼 줄 몰랐다.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나샤시비는 팔레스타인계 영국인 예술가로, 이번 개인전은 2020년 런던 내셔널 갤러리 레지던시에서 1여 년간 회화 작업에만 전념한 작업을 한 자리에 선보였다. 화폭에는 가족과 친구들의 초상화, 문학에서의 인물, 미술사의 모티브 등이 등장하며 일상생활의 리듬과 패턴을 엿볼 수 있는데, 이들은 거울이나 물에 비쳐 보이는 듯한 대상과 쌍을 이루며 그려져(비쳐져)있다. 그 대상은 또 다른 나 혹은 대상자로 보이기도 하며, 현실이나 상상, 꿈속에서 벌어지는 모호하고 모순적인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는 듯 보인다. 작업의 내용은 인간의 깊은 내면을 그리고 있으나, 무겁지 않고 긍정적으로까지 느껴지는 이유는 화면에서 쓰이는 따뜻한 색감이 비춰 보이는 이유도 있을 것 같다. 작품 하나하나 그리고 공간을 이루는 덩어리로서의 작업들을 보는 기쁨이 나뿐만 아니라 많은 관람객들의 마음을 훔쳤으리라 생각한다.


4. Oh, I Love Brazilian Womem!

@apexart, January 15 — March 12, 2022

아펙스 아트는 로우어 맨해튼에 위치한 비영리 예술공간으로, 예술이 기획되고 전시되는 과정을 민주화하는데 앞장서는 기관이다. 모든 전시를 오픈콜로 열어, 이름, 포트폴리오, 학력, 경력도 보지 않은 채 오직 큐레이토리얼 아이디어를 쓴 글로만 받는다. 심사 또한 모든 사람들이 지원해서 참여할 수 있으며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표를 받은 글이 전시로 열리게 된다. <<Oh, I Love Brazilian Womem!>> 또한 오픈콜 우승자의 전시로, 브라질 여성이 식민지 시대부터 20세기 관광산업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성 착취의 대상이었다는 것을 사회, 정치, 경제적 상호작용으로 환기시키고 있다. 12명의 작가들의 목소리가 빡빡하게 구성되어 있어 작품 하나하나를 들여다보기는 무리가 있었지만, 기획 의도가 큰 따옴표로 들리는 경험을 했다. 이 전시를 보고 난 후, 계속해서 생각하게 되는 건, 단체전일 경우 기획자의 의도가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아우리는 게 좋은 기획인 것일까 아님 작가들 한 명 한 명의 목소리가 기획자의 의도를 넘어 또 다른 지평을 열어주는 전시였을 때 좋은 기획일까. 어떤 전시든 마침표보다는 물음표를 던질 수 있는 전시가 좋은 전시라고 생각되지만..


5. Byron Kim: Drawn to Water

@James Cohen, January 7  — February 19, 2022

다양한 피부색을 담아 정체성의 정치를 은유적으로 보여준 초상화, <Synecdoche>로 알려진 바이런 킴(b.1961)은 국제갤러리에서도 여러 번 소개가 됐기에 우리나라에서도 인지도기 높은 작가다. 그의 스토리, 코리안 아메리칸이자 예일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스코히건을 나온 동양인 남성이 그리는 개념적이고 추상적인 작업은 어떤 이들에겐 팬심을 불러일으키고, 또 어떤 이들에겐 편치 않다. 개인적으로 나에게 바이런 킴은 그리는 사람보다는 생각하는 사람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업은 명상으로 더 친밀하게 다가온다. 제임스 코헨에서 선보이는 그의 신작 시리즈, <B.Q.O.>역시 새해에 명상을 하기 더없이 좋은 작업으로 느껴졌지만, 그의 문학적 감수성과 미학적 시간성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Sunday Painting>과, 위트가 돋보이는 <Belly Painting>이 보고 싶어진 건 왜였을까. 정성스러운 요리를 대접받고 있으면서, 그가 과거에 만들어준 친밀한 음식을 그리워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6. Ways of Seeing: Three Takes on the Jack Sheer Drawing Collection

@Drawing Center, January 15  — February 20, 2022

소호에 볼 일이 있을 때마다 잊지 않고 들리는 곳이 드로잉센터고, 소호에 몇 안 남은 비영리 예술기관이다. 존 보거의  책, 『본다는 것의 의미』를  전시 제목으로 가져온 이번 전시는 엘스워스 켈리의 파트너로, 사진가로, 그리고 컬렉터로도 알려진 잭 시어의 드로잉 컬렉션을 3부로 나누어 기획된 전시다. 이번 전시는 마지막 챕터인 3번째 전시로, 비평가이자 큐레이터인 자렛 어니스트가 기획을 맡았고, 시인이자 페인터이기도 한 앙리 마쇼의 드로잉부터 개인적으로 가장 애정 하는 작가인 비야 셀민스까지 그의 컬렉션이 무척이나 방대하고 주옥같았다. 누군가의 컬렉션을 본다는 일은 컬렉터의 취향 또한 엿볼 수 있는 일이기에, 시어의 가십과는 상반되는 컬렉션에서 이 전시가 더 흥미롭게 다가왔다.


7. Blue Monday

@47 Canal, Janyary 15 — February 19, 2022

47 캐널은 신디 셔먼 스튜디오에서 매니저로 일하며, 작가로도 활동한 마가렛 리와 알렉산더 앤 보닌 갤러리에서 일했던 그의 남자 친구, 올리버 뉴턴이 로우어 이스트 사이드에 2011년 오픈한 갤러리다. 광적인 파티가 끊이지 않는 곳으로 유명했으며, 아니카 이가 무명인 시절부터 그의 작업을 꾸준히 소개해 온 곳이기도 하다. 47 캐널에서 선보이는 작가들 중 자비에 차나 엘 페레즈, 씨씨 우, 그리고 스튜어트 우의 작업을 관심 있게 보고 있는데, 이번 단체전에서는 스튜어트 우의 대표작인 사이보그 마네킹 대신 철 프레임에 실리콘과 머리카락이 돋아있는 그로테스크적인 조각이 소개가 되었다. 젠더와 섹슈얼리티, 정체성에 대한 그의 유머러스한 감각을 읽어볼 수 있었다.


8. Vanitas

@Kathalie Karg, December 14, 2021 — January 22, 2022

나탈리 카에서 선보인 단체전, 바니타스는 네덜란드 회화의 황금기(1570~1670년대)에 인기를 끌었던 하위 장르 정물화에서 가져온 말로, 공허함을 뜻하는 라틴어 형용사에서 유래한 단어다. 일반적인 바니타스화에는 죽음을 상기시키는 두개골이나 썩은 과일, 거품, 연기, 모래시계 등이 등장하는데, 삶의 덧없음에 대한 주제를 동시대 작가들의 작업으로 흥미롭게 푼 전시였다. 예를 들어, 꺼진 불꽃은 깜박이는 생일 케이크의 초로, 모래시계는 아이폰으로 그려짐으로써 현 세계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었고, 작품 셀렉션도 흥미로웠다. 관심 있게 봤던 작가로는: Ann Mccoy Nigredo, Ya Chin Chang, Cathleen Clarke, Mike Lee.


9. Colette Lumiere

Notes on Baroque Living: Colette and Her Living Environment, 1972–1983

@COMPANY, November 20, 2021 — January 2022

차이나타운의 조그만 2층 사무실 공간에서 출발한 컴퍼니는 노리타로 자리를 옮기면서 상업 갤러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전시로 미술계에 주목을 받고 있다. 그건 어찌 보면 미술관에서의 역할을 상업 갤러리에서 발 빠르게 기획함으로써 갤러리의 브랜드를 새롭게 구축하기도 하는데, 컴퍼니는 미술사에서 누락되었던 작가를 발굴해 그의 작업과 경력을 선보이고 보존하는 전시를 열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1970년대 예술의 황금기에 활동했지만 거의 알려지지 않은 튀니지 출신의 작가, 콜레트 루미에르의 개인전을 열어 그가 살았던 로우어 맨해튼 펄 가의 다락방을 일부 옮겨와 그의 예술 세계를 입체적인 설치 방식으로 재구성해 보여준다. 작업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 전시를 보고 나면 작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고, 그가 살았던 시대와 작가의 삶에 대해 상상하게 되니 잘 만든 전시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특히 지하에 설치된 작업이 전시의 하이라이트였다.


10. Sarah Moon, Andy Warhol, Cho Gi-Suk, Anders Petersen

@Fotografiska

사진 전시는 메트로폴리탄이나 ICP(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 아퍼쳐 파운데이션, 션 켈리, 요시 밀로를 주로 찾아간다. 최근, 뉴욕에 분점을 세운 스웨덴의 사진 전문 미술관인 포토그래피스카를 다녀오게 됐는데, 캐주얼한 분위기로 친구들이나 애인과 행아웃 하며 데이트하는 장소로 좀 더 초점이 맞춰진 장소로 느껴졌다. 홍보에 엄청난 돈을 쏟고 있는지 뉴욕의 길가와 지하철 그리고 프로모션 하는 앱 등, 오프라인과 온라인 모든 곳을 장악하고 있어 피곤함이 몰려왔지만, 한국 작가인 조기석에 관한 기사를 보게 되어 이곳을 찾았다. 전시는 개인적으로 실망스러웠고 안타까웠다. 전시를 보면서 작업의 한계가 느껴진다면, 그건 기획의 문제일 수도 있고 작가 개인의 역량일 수도 있겠다. 제리 샤츠버그의 전시장 외에 나머지 층의 전시장들은 같은 동선에, 층고도 너무 낮고 전시장에 비해 관람자 수도 컨트롤이 안되어 제대로 사진을 감상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프랑스 사진작가인 사라 문을 이곳의 전시를 통해 알게 되어 기뻤는데, 그의 모든 작업이 좋았던 것은 아니지만 사진 전반에 도드라지는 회화성과 흑백사진의 에지 부분에서 느껴지는 개성이 눈을 계속 머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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