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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lla Oct 13. 2020

꼭 잘할 필요는 없어.

사회 초년생의 회사 적응기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하루하루가 자괴감의 연속이었다.

일에 대해서 이론적인 교육 두 어시간 만을 받고 바로 실무에 투입되었는데 하루하루가 정말 가시밭길이었다.

일이 내려올 때마다 누군가에게 묻지 않고서는 일을 처리할 수 없었는데 모두가 바쁜 시기에는 상사나 선배에게 질문할 타이밍을 하루 종일 눈치 보는 게 일상이었다.

행여 그들이 바쁠 때나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되돌아오는 냉담한 반응은 가시가 돼서 가슴에 콕 박히기도 했다.


그들이 업무와 관련된 용어로 대화를 하면 나는 종종 그게 '외계어'(외국어도 아닌 외계어)로 느껴졌는데 나만 바보가 된 것 같았고 그들에겐 너무나도 당연한 업무가 나에게는 하나도 당연하지 않아서 나는 종종 자괴감에 빠졌다.


회사는 학교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나도 알고, 누군가가 꼭 나에게 선생님처럼 일을 가르쳐주길 바란 것까진 아니었다.

 다만, 나에게 일을 가르쳐주는 게 번거롭고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참여하기로 했던 업무에서 배제시키고 사무실에서 전화나 받고 있으라고 상사가 이야기할 땐, 나에게 일을 배울 최소한의 기회조차 주지 않는 회사생활이 서럽고 또 서러웠다.


일을 모르는 건 확실한데 어떤 부분을 어떻게 모르는지 조차도 몰라서 질문을 못할 때도 많았다.

처음 알았다. 정말 모르는 건 질문조차 못한다.

질문도 어느 정도 아는 게 있어야 할 수 있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이리저리 굴러가며 겨우겨우 산의 정상에 올랐는데 그 산은 언덕에 불과했고 넘어야 할 더 큰 산봉우리들이 계속해서 눈 앞에 펼쳐지는 것 같은 암담함과 막막함...

입사 1년 차 내내 느꼈던 내 심정이었다.


퇴근하고도 나는 사무실에서 종종 로그아웃하지 못하곤 했는데, 아직 못 끝낸 일들이 자기 전 베개맡에서까지 나의 마음을 묵직하게 눌러댔고 쉬는 날에도 월요일에 출근해서 해야 할 일만 생각하면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일을 잘해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그렇지 못하는 현실의 간극은 매일 밤 눈물을 쏟게 만들었다.

마음의 여유가 없다 보니 사소한 실수에도

'내가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나. 내가 이것도 못하는 사람이었나'

나 자신을 몰아붙였다.


분명, 입사 직전의 나는 자신감으로 반짝반짝 빛났던 것 같은데.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어렵게 얻게 된 사무실 내 책상, 내 명함만으로도 그간의 노고가 보상받는 느낌이었는데, 그런 노력을 한 나 자신이 아주 뿌듯하고 기특했는데.


그런 마음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내가 아주 한없이 초라하고 무능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입사 첫 해를 보내고 내가 내린 결론은  '당연함을 인정하자.'였다.

"모르는 게 당연해. 못 하는 것도 당연해."


내가 일을 모르는 것,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모든 일엔 처음이 있다. 모든 사람에게도 처음이 있다.

누구도 처음이 쉽지 않다.

그래서 나도 지금이 쉽지 않다.


인정하고 나니, 그 쉽지 않은 과정을 그래도 매일 극복해보려고 노력하는 내가 꽤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아직 많이 서툴지만 그래도 회사에서 내 몫의 일 인분은 하려고 고군분투하고 있지 않은가.


막연하게 모든 일을 잘하고 싶다는 강박이 오히려 내 자존감을 갉아먹었고, 사기를 저하시켰다.

"꼭 잘할 필요는 없어. 그래도 내 몫은 해보도록 노력하자."라고

마음을 바꿔 먹으니 더 이상 자괴감에 몸서리치지 않게 됐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사회생활이므로 나만큼은 나에게 때때로 관대해야 한다.

일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이나 험난한 사회생활 속에서 내 스스로의 자존감을 지키고 다독이며 위로할 줄 아는 방법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다.


어디까지나 '일=나'가 아니라 내가 행복하게 살기 위한 수단으로써 일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이 내 생활의 큰 부분을 차지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일이 곧 나일 수는 없다.


꼭 잘할 필요도, 완벽할 필요도 없다.

내 몫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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