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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덤보 Feb 11. 2022

문어에게 친구 신청이 왔다

넷플릭스 <나의 문어 선생님>을 보고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 큐레이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


문어에게 친구신청이 왔다


어느 날, 문어에게 친구 신청이 온다면? 여기 문어와 친구가 되기 위해 매일 바다에 뛰어드는 남자가 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은 영화감독인 남자와 남태평양 문어 사이의 우정을 다룬다. 아프리카에서 영화를 촬영하던 도중 삶에 회의감을 느낀 남자는 남태평양 바로 앞에 집을 짓고 매일 같이 바다로 뛰어든다. 그가 1년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다이빙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문어와 친구가 되는 것.


한발 다가서면 두 발 멀어지는 게 문어라고 했던가. 다리도 경계심도 많은 친구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초조함은 금물. 남자는 인내심을 가지고 문어가 먼저 다가오길 기다린다. 그렇게 숨죽인 시간들이 모여 둘 사이의 거리는 조금씩 가까워진다. 남자의 손 위에 빨판을 얹기도 하고 안 보이면 먼저 찾아오기도 한다. 그리고 결국 문어가 스스로 그의 손바닥 위에 폴짝 앉았을 때, 그러니까 문어가 친구 신청을 했을 때! 나도 화면 속 남자와 같이 기쁜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그렇게까지 해야 해? 의문이 생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자의 행동은 사실 우리가 친구를 만들기 위해 하는 여타 행동과 다를 바 없다. 기다리고 배려하고 마음을 기울이는 것. 차이가 있다면 장소가 땅에서 바다로, 대상이 사람에서 문어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그럼 이번엔 이런 질문이 나올 수도 있겠다. 인간과 문어가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어?!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까다로운 질문이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곤란한 질문이 있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너 A랑 친해?"



순간적으로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간다. 나랑 A가 어떤 사이였는지, 몇 번을 만났고 어떤 깊이의 대화를 나누었는지, 나는 친하다고 생각하는데 A도 그렇게 생각할지. 이런저런 고민만 하다가 대답할 타이밍을 놓쳐버리고 만다. 그렇다면 어느 선(Line)까지를 친구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같은 언어나 인종? 더 나아가 인간? 좀 더 나아가 친근하고 귀여운 개나 고양이? 그러면 이런 기준들에 부합하지 못하는 존재와는 친구가 될 수 없는 것일까.


이번엔 관점을 달리해보자. 어떠한 기준도 세우지 않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풍부해질 친구 목록을 상상해 보자. 물론 친구를 얻는 게 쉽지는 않다. 당연히 노력이 필요하다. 도움이 필요한 할머니에게 다정을 전하고 길가의 들꽃에게 이름을 지어주거나 하는 식이다. 그렇게 하나둘씩 무거운 기준들을 덜어내고 세상을 향해 손을 뻗으면 우리 주위에 있는 수많은 친구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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