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정한 우주에서 내 집 찾기
내 집이 있는 삶은 어떤 걸까. 원룸과 오피스텔을 전전하던 이십 대는 불안정한 공간 속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고는 옵션으로 지급된 침대에 누워 남은 계약 기간을 되짚었다. 집과 회사 모두 일 년 남짓. 그 뒤의 일은…잘 그려지지 않았다.
여수에서 태어나 전주에서 대학을 다닌 나는 졸업과 동시에 디자인이 배우고 싶다며 서울에 상경했다. 한창 치기와 꿈으로 가슴이 부푼 20대 중반의 일이다. 동경의 대상이던 강남 고층건물이 차가운 회색 콘크리트로 보이기까지 1년이 걸렸다. 디자이너는 내 적성이 아니란 사실을 깨닫게 된 시기와 일치했다. 하고 싶은 건 많은데 되고 싶은 건 없었다. 그런데도 오기로 똘똘 뭉친 이십 대의 나는 돌아가기 싫다고 어떻게든 버텼다. 전공을 살려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포토샵을 다룰 줄 안다고 했더니 디자인을 맡겼다. 그다음 직장에서는 디자인을 해봤다고 했더니 대뜸 마케팅을 맡겼다. 그렇게 살다 보니 브랜딩을 하게 되었는데 이 일이 참 좋았다. 인생은 참 신기하다.
지금 만으로 서른의 나는 세 번째 룸메이트와 함께 30년 된 아파트를 리모델링해 살고 있다. 운 좋게 애정하는 일을 업으로 삼게 되면서 5점, 이전보다는 안정적인 보금자리가 생기면서 15점, 5년 동안 총 20포인트의 안정을 얻었다. 집과 직장으로 얻을 수 있는 건 그 정도였고 불안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다. 아직 나는 사회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고 좋아하는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와중에 노후자금은 왜 이리 많이 필요한지 돈 좀 불려보려고 주식에 도전했는데 거기서나 여기서나 개미일 뿐이었다. 결국 과거의 나 지금의 나 모두 불안한 건 매한가지였다.
돌이켜보면 그렇지 않은 적이 없었다. 나는 30년 정도를 살았고 기억이 없는 초기 몇 년을 제외하면 내내 불안했다. 지금 팔지 않은 주식이 마이너스가 될까 봐, 건강검진 결과가 좋지 않을까 봐, 지망하는 대학에 떨어질까 봐, 좋아하는 마음을 들킬까 봐, 친척 동생에게 내 인형을 뺏길까 봐 불안했다. 그렇게 다양하고 꾸준히 불안해 본 끝에 울며 겨자 먹기로 인정했다. 인생은 불안하다. 열심히 살아도 불안하고 대충 살아도 불안하다.
신기하게도 그러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불안이 꼭 나쁜 것도 아니었고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불안해서 더 열심히 공부하고 돈을 모았다.
여전히 불안하지만 그로 인해 바들바들 떠는 사람이 아니라 불안과 함께 나아가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그러다가 운이 좋으면 좋아하는 일을 평생 하게 될 수도 있고 노후를 대비하고도 남을 만큼의 부를 가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실은 어쩔 수 없이 불안을 안고 나아갈 작정이다. 가끔 5년 전을 떠올린다. 뭐가 되어야 할지 몰라 어쩔 줄 모르던 과거의 나. 혹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 만나게 된다면 뭐가 되든 좋다고 말해주고 싶다. 꼭 직업이랑 연관이 있거나 대단한 성취가 아니어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