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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인 Jul 03. 2021

엄마는 어디까지 낮아지는가(2)

#7. 이것이 마지막 관문인가? 아뇨, 그럴리가요.



EP1. 초록 장화와 흰 바지 썰(이어서)


초록 장화는 각각 8주씩 신게 되었다.


동하는 졸지에 양다리 깁스를 하고 메르스 휴원이 풀린 어린이집에도 한 동안 갈 수 없게 되었다.


때가 무더운 여름이었던지라 다리가 불편하지 않도록 짧은 바지를 입혀야 했다.

그러다 보니 동하의 초록 장화는 멀리서도 눈에 띄었고 유모차를 태워도, 힙시트로 안아도 거리의 시선은 동하의 두 다리에 모였다.

얇은 이불을 다리에 덮어도 보았지만 녀석은 즉시로 걷어차버렸다.


건널목 신호를 기다릴 때면 다가와 어쩌다 이랬는지 물어보는 사람이 거의 매번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다리 깁스는 흔하지만 양다리 깁스는 나도 동하 이후로 본 적이 없을 정도이니......

혹여 아동학대를 의심하진 않을까 싶어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한마디가 넘어가도록 성실히 하고 있는 상황이 아주 번거로웠다.


같은 대답을 반복적으로 하다 남편에게 짜증 반, 농담 반으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우리 종이에 써서 붙여야겠어. '책 밟고 미끄러져서 한쪽, 그 다리로 일어나다 또 한쪽' 이렇게......" 


지나가던 할머니께 "엄마가 잘못했네~ 엄마가 애를 잘 지켜봐야지, 나 이런 건 또 처음 보네."하고 애정 어린 잔소리를 듣기도 했다.

당연히 처음 보는 분이었다.






주일이면 늘 우리는 아침 일찍 교회로 향하고, 남편이 목자 모임에 가는 한 시간 남짓의 시간 동안 나와 동하는 교회 앞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먼저 한 깁스를 풀기 2주쯤 전이었을까?

여느 주일처럼 카페에서 동하를 데리고 커피 한잔을 즐기고 있었고 동하는 의자 등받이를 잡고 일어서 있었다.


순간 불길하게도 축축하고 끈적한 액체 괴물이 내는 듯한 소리가 동하 바지 속에서 들려왔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홱 돌려 동하 쪽을 바라보았을 땐 이미 많이 늦어버렸다.


아... 순백의 바지를 입은 동하야.


'배가 아프면 말이라도 해주지 그랬니' 하는 원망이 두 돌도 안된 아이에게 다 무슨 소용인가.


설사가 기저귀를 이탈하고 흰 바지를 떠나 줄줄 깁스 속으로 새어 들어가고 있었다.



(그때의 내 표정은 정말 이렇지 않았을까?)



'정신을 차리자, 호랑이 굴에 잡혀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아니!! 차라리 호랑이 굴이 정신 차리기엔 더 좋겠어!'

평소에 욕을 하지 않지만 흔히 쓰는 "X 됐다."라는 험한 말이 속에서 저절로 떠올랐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혼자 있었으면 입 밖으로 나왔을지도 모른다.


누가 보기 전에 동하를 화장실로 데려가야 하는 것이 가장 급했다.

똥을 바닥에 흘리지 않으면서...


내 옷에 묻을까 동하를 옆구리에 끼고 후다닥 자리를 벗어나던 내 시야에 한 명의 구원자가 들어왔다.

바로 같은 교회를 다니는 자매이자 내 남동생의 전 여친이었다.


현 여친도 아니고 전 여친.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00아, 진짜 정말 정말 미안한데 나 한 번만 도와주라. 여기 아는 사람이 너 밖에 없어서......"


세상에... 결혼도 안 한 어린 자매가 이런 지저분한 사태를 목격해야 한다니......

그것도 전 남친의 누나의 아들이 똥칠갑을 하고 있는 광경이라니! 


그러나 이 착하고 고마운 자매의 도움으로 응가 처리를 하고 기저귀만 갈아입힌 채 약국으로 달려가 탈지면에 소독 알코올을 구입했다.

나무젓가락에 탈지면을 둘둘 말고 알코올을 묻혀 깁스 안쪽을 영원히라도 닦을 기세로 반복했다.


탈지면과 소독 알코올이 모두 없어질 때까지.




그 자매와는 이때 일을 계기로 개인적으로 더 친해져서 지금도 종종 연락하고 만나고 있다. 만날 때마다 거의 이 에피소드는 빠지지 않는다.


"너는 내 은인이야. 앞으로 만날 때마다 내가 계속 밥 사줄 거야. 평생 갚을게." 

- 2021년 봄, 식사 자리에서 -



아무것도 모르고 목자 모임을 평안하게 마치고 돌아온 남편은 나의 이야기를 듣고 고생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미안해하며 웃었다.


그 사태를 나 홀로 감당하게 한 것이 미안한 것이 아니라 쿠크다스처럼 부서진 멘탈을 간신히 부여잡고 있는 내 앞에서 웃어서 미안한 것이었다.




2015년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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