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 이름이 뭐였더라? 어…, 진짜 기억이 안 나네. 말도 안 돼” 내가 지금 이름을 기억 못 하는 그분이 누구인가? 그는 화가다. 그는 내가 다녔던 화실 원장님의 대학 동기이자 화실과 같은 건물에 작업실을 두었던 터라 왕래가 잦은 탓에 회원인 우리들도 허물없이 지내던 분이다. 두 해 전쯤 부쩍 야위고 까만 얼굴로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노라고 나에게 말했다. 그리고 올해 초 오래간만에 열린 화실 단체전 오프닝에 참석한 나는 그분의 고별전 부스를 보았다. 충격을 받아 얼어버린 나는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었다. 그러니 지금 그분의 이름이 생각 안 난다는 것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이것은 손에 들린 핸드폰을 찾아다니거나 매일 주문하던 커피의 이름을 까먹는 그런 건망증이 아니다. 심각한 망각이다.
얼마 전 나의 기억력에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나마 최근에 알게 된 사실 몇 가지를 거론하자면,
- 작년 이맘때 아빠와 함께 G치과에서 스케일링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아빠는 나와 함께 G치과에 간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했다. 분명 같이 갔었는데 말이다.
- 작년 막내 여동생의 첫 수면마취 내시경 검사에 내가 보호자로 동행했었다고 한다. 동생 말로는 “생각보다 빨리 깨어났네?”라며 회복실 침대 옆에 앉아있던 내가 말했다고 한다. 그 말은 어렴풋이 기억나지만 언제 어디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 나머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 작년 여름에 눈에 난 다래끼 치료 차 ‘김OO 안과 병원’에 갔었다. 병원 내부에 약제실이 있어 그곳에서 처방약을 받았었는데, 몇 달 후 다시 찾은 그 병원 내부엔 약제실이 없었고 있었던 적도 없다고 했다. 1층에 있는 약국도 낯설었으니 참 이상했다.
정확지는 않으나 꿈에서 보았던 일, 같은 장소에서 보았던 다른 사람의 행동, 무의식적으로 상상했던 것들이 현실의 기억과 함께 저장되어 나의 기억이 된 듯하다. 또 불안해진다. 칸트는 ‘미치광이는 깨어있을 때 꿈을 꾸는 사람’이라고 말했는데, 그렇다면 나는 어떠한 것인가? 뇌가 꼬여버린 것인가? 장기 복용 중인 수면제 부작용인가? 쉽게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인가? 설마… 치매인가? 막냇동생은 나를 이미 단기기억상실증 환자쯤으로 취급한다. 기분이 몹시 나쁘지만 나도 내 기억을 믿을 수 없으니 마냥 우길 수 만도 없는 일이다. 그나마 소소한 기억들이 오류이니 얼마나 다행인가? 하지만, 한 가지 발견된 확실한 점은 잃어버린 기억의 대부분이 병원, 격리, 죽음, 질병 등과 관련된 기억들이라는 점이다. 이 이상한 공통점이 마음에 걸리는 이유가 있다. 그 공통점들은 엄마와 관련이 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5년이 지나고 있지만 S병원에서 엄마와 함께한 마지막 3년은 나에겐 절로 진저리 쳐지는 기억이다. 엄마의 처절했던 항암 투병을 보호자로서 지켜만 볼 수밖에 없던 무기력한 상황은 너무나 가혹하여 잊고 싶은 기억임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잊을 수가 없다. 병원의 소독제 냄새, 사계절 변함없던 온도와 습도, 응급 상황을 시끄럽게 알리던 긴급 호출 방송, 지난주까진 멀쩡히 살아있던 옆 침대 환자,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사의 말투, 엄마가 더 고통받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울먹이던 언니와 나…, 엄마가 묘에 뉘어지던 그날까지 하루하루, 순간순간이 아직도 붉고 진하게 남아 옅어질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러는 것인지, 그 이후로는 누가 아프다는 소리를 들으면 아는 척도 안 하고 싶다. 못 들은 척하고 싶다. 그러다가 누가 죽었다는 소리를 들으면 귀에서 ‘삐’ 소리가 들린다. 기억이 삭제되는 소리인가? 나의 뇌에 그런 기능이 추가됐다면 이는 놀라운 일 아닌가? 하지만 그것은 나의 귓속 종양이 신경을 긁어대는 소리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중대한 사건은 기억이 보존하기에 벅차다. 반대 의지는 중대한 사건을 망각하도록 하고 그 대신 하찮은 것을 기억하게 하는데 정신적으로 중요한 재료가 하찮은 재료로 대치되는 것을 프로이트는 전위(displacement)라 한다.- 꿈의 해석
프로이트 이론을 내 식으로 해석하자면, 이미 충격으로 벅찬 나의 기억이 방어기제를 발동해 계엄령을 선포한 것이다. 새로 생기는 기억들은 강화된 검열을 거치게 된다. 검열에 걸리지 않으려면 사실을 왜곡 시키거나 무의식의 강으로 도망쳐야 한다. 기억 저장소에는 더 이상 병원, 죽음, 질병에 관련된 남은 자리가 없다. 그것들은 이제 받아줄 수 없다. 그래서 선택적 기억력이 생긴 것이다.
기억이 제멋대로 다른 것으로 대체되어버리는 오류가 생긴 나는 앞으로 어떤 확신도 갖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신경 정신과 선생님의 조언을 구했다. 심각한 표정으로 질문하는 나와 달리 답하는 선생님의 눈빛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치매요? 하하. 전혀 아니에요. 기억 상실도 아니고, 병이 아니라 일종의 트라우마인데, 뭐 그럴 수도 있는 상황으로 보이네요. 그러다가 문득 기억이 돌아와요. 억압이 풀리면…, 그리니 걱정할 필요 전혀 없어요.”
병이 아닌 것에 약은 없다. 또 다른 고통스러운 기억이 내게 찾아올까 두려운 마음에 조금이라도 수상한 낌새가 보이면 빗장을 단단히 걸어버리고 온전한 기억을 난도질하는 것은 본능적 회피 성향이 짙은 나로서는 충분히 하고도 남을 일이다. 병이 아닌 이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이다. 숨 쉬듯 천천히…, 그것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그 사이 얼마나 많은 기억들이 검열 당할지 모르겠으나, 조급함을 버리고 여유를 찾는 것이 마음의 치유를 위한 첫째일 것이다. 기억들이 제자리를 찾으면 지금 이 순간을 되돌아보며 웃을 수 있겠지? 치유의 여정에서 진정 느끼고 반드시 기억해야 할 보물들을 찾는다면 더 좋을 것이다. 그리고 찾을 것이라는 확신도 든다. 그러니 지금 어떤 것이 기억이 안 난다고 걱정하거나 자책하지 말자. 기억이 안 난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천천히 기억을 들여다본다. 그분의 이름은 ‘김영신’이다. 아! 이름이 기억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곧 망각 속으로 또 숨어버릴 테지. 그래도 소주 한 잔과 친구들이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미소를 짓던, 짙은 눈썹과 깊게 패이던 보조개가 매력적이던 그분의 환한 얼굴은 선명히 기억한다. 앞으로도 그렇게 보석처럼 기억될 것이다. 애통한 젊은 화가의 죽음보다 행복했던 그를 기억하는 것이 나는 더 좋다. 그분도 그래 주기를 바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