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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진 Oct 30. 2020

호러몽

잠이 공포가 되버렸다

잠은 발바닥에서 시작한다머리까지 도착하려면 아주 긴 여정을 견뎌야 한다그렇게 힘들게 머리까지 

도착해도 뇌가 잠을 받아주지 않으면 기다려야 한다기다리고 또 기다린다해가 떠오른다.


나는 졸리면 발바닥이 간질간질하다가려워서 긁고 싶은 느낌이 아니라따스한 봄 햇살에 살랑살랑 일렁이는 아지랑이처럼 마치 발바닥부터 잠이 피어오르는 것처럼 간지럽다남이 운전하는 자동차의 조수석에 앉아 엉따’(엉덩이를 따듯하게 하는 장치)를 켜고 창문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가는 장거리 여정이면어김없이 노곤한 졸림이 간질거리며 찾아온다눈꺼풀이 무거워지면서말이 느려지고하품이 찢어지게 나온다그리고 잠시 후면 졸림이 나를 잠의 세계로 이끈다그렇게 잠이 들면 잠깐을 자더라도 꽃 잠이다 

그런 잠이 공포가 되었다꿈을 꾸는 것이 두려움이 되었다

잠들기가 무섭다졸리면 싫다그래서 졸리 지도 않게 된다겨우 잠이 들라치면 꿈을 꾼다투명인간이 되어 내가 보이지 않는다거나홍수와 태풍에 휩쓸리거나초현실적 공간에서 불안정한 책상을 계속 다시 조립하거나피와 살이 난무하는 살육 등... 극도의 공포를 느끼는 꿈들이 대부분이다그 느낌이 너무 싫어 꿈에서 계속 깨어나지만 계속 꿈이다그래서 정말 깨어났을 땐진짜 깨어난 것인지 아직도 꿈속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상황이 된다내가 꿈을 꾼 것인지꿈이 나를 꾼 것인지.. 

호접몽은 이렇게 태어났겠지만내 것은 ‘호러 horror몽’이다.


그래서 강력한 수면제와 안정제 처방을 받는다이제 더 이상 꿈도잠의 공포도 느끼지 않지만졸림과는 작별해야 했다수면제를 복용하면 졸림을 느낄 새 없이 다른 느낌으로 잠이 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제 수면제 없는 잠들기는 불가능해졌다그래서 수면제가 떨어지는 게 두려움이 됐다수면제는 3주 치가 최고로 받을 수 있는 양이다내일로 3주가 된다수면제가 한 봉지 남았다실로 두려운 날이다하지만 이런 생활은 이미 3년째 이어지고 있다.

 

이런 나의 ’ 사정을 들은 이들은 잠을 잘 못 자서 어떡하냐고 걱정이다

"커피를 마시지 마라.", "격한 운동을 해라.", "수면 센터를 가봐라.", "침대를 바꿔라."

여러 가지 방법들을 제안한다내가 시도해보지 않은 신선한 방법을 알려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언제나 같은 말들..., 지겹다에라 모르겠다


"그래서 약 먹고 있어요. 수면제." 

그 한마디에 걱정의 댐은 최고 방류를 시작한다. 모두 다 걱정 학원이라도 다니는 듯이 막 쏟아진다

"약으로 잠이 드는 게 제일 나쁘다.", "약으로 잠들 거면 아예 잠을 자지를 마라." 

"그러다가는 나중엔 약을 먹어도 잠이 안 온다.", "벌써부터 그러면 몽유병에 걸린다." 

"약 먹고 술 먹지 마라." 등...


. 쩌. 것이냐잠을 못 자는 게 힘든 것이지잠을 잘 잔다는데.. 왜 더 난리냐!

잠을 자야 내일이 온다내일이 오는 것이 나는 좋다그러니.

"이제 내 걱정은 그만해이제 난 아주 잘 자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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