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공포가 되버렸다
잠은 발바닥에서 시작한다. 머리까지 도착하려면 아주 긴 여정을 견뎌야 한다. 그렇게 힘들게 머리까지
도착해도 뇌가 잠을 받아주지 않으면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해가 떠오른다.
나는 졸리면 발바닥이 간질간질하다. 가려워서 긁고 싶은 느낌이 아니라, 따스한 봄 햇살에 살랑살랑 일렁이는 아지랑이처럼 마치 발바닥부터 잠이 피어오르는 것처럼 간지럽다. 남이 운전하는 자동차의 조수석에 앉아 ‘엉따’(엉덩이를 따듯하게 하는 장치)를 켜고 창문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가는 장거리 여정이면, 어김없이 노곤한 졸림이 간질거리며 찾아온다. 눈꺼풀이 무거워지면서, 말이 느려지고, 하품이 찢어지게 나온다. 그리고 잠시 후면 졸림이 나를 잠의 세계로 이끈다. 그렇게 잠이 들면 잠깐을 자더라도 꽃 잠이다.
그런 잠이 공포가 되었다. 꿈을 꾸는 것이 두려움이 되었다.
잠들기가 무섭다. 졸리면 싫다. 그래서 졸리 지도 않게 된다. 겨우 잠이 들라치면 꿈을 꾼다. 투명인간이 되어 내가 보이지 않는다거나, 홍수와 태풍에 휩쓸리거나, 초현실적 공간에서 불안정한 책상을 계속 다시 조립하거나, 피와 살이 난무하는 살육 등... 극도의 공포를 느끼는 꿈들이 대부분이다. 그 느낌이 너무 싫어 꿈에서 계속 깨어나지만 계속 꿈이다. 그래서 정말 깨어났을 땐, 진짜 깨어난 것인지 아직도 꿈속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상황이 된다. 내가 꿈을 꾼 것인지, 꿈이 나를 꾼 것인지..
‘호접몽’은 이렇게 태어났겠지만, 내 것은 ‘호러 horror몽’이다.
그래서 강력한 수면제와 안정제 처방을 받는다. 이제 더 이상 꿈도, 잠의 공포도 느끼지 않지만, 졸림과는 작별해야 했다. 수면제를 복용하면 졸림을 느낄 새 없이 다른 느낌으로 잠이 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제 수면제 없는 잠들기는 불가능해졌다. 그래서 수면제가 떨어지는 게 두려움이 됐다. 수면제는 3주 치가 최고로 받을 수 있는 양이다. 내일로 3주가 된다. 수면제가 한 봉지 남았다. 실로 두려운 날이다. 하지만 이런 생활은 이미 3년째 이어지고 있다.
이런 나의 ‘잠’ 사정을 들은 이들은 잠을 잘 못 자서 어떡하냐고 걱정이다.
"커피를 마시지 마라.", "격한 운동을 해라.", "수면 센터를 가봐라.", "침대를 바꿔라."
여러 가지 방법들을 제안한다. 내가 시도해보지 않은 신선한 방법을 알려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언제나 같은 말들..., 지겹다. 에라 모르겠다.
"그래서 약 먹고 있어요. 수면제."
그 한마디에 걱정의 댐은 최고 방류를 시작한다. 모두 다 걱정 학원이라도 다니는 듯이 막 쏟아진다.
"약으로 잠이 드는 게 제일 나쁘다.", "약으로 잠들 거면 아예 잠을 자지를 마라."
"그러다가는 나중엔 약을 먹어도 잠이 안 온다.", "벌써부터 그러면 몽유병에 걸린다."
"약 먹고 술 먹지 마라." 등...
어. 쩌. 라. 는. 것이냐! 잠을 못 자는 게 힘든 것이지, 잠을 잘 잔다는데.. 왜 더 난리냐!
잠을 자야 내일이 온다. 내일이 오는 것이 나는 좋다. 그러니.
"이제 내 걱정은 그만해. 이제 난 아주 잘 자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