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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진혁 Oct 19. 2021

빨강, 건축 그리고 나

더현대서울 그리고 개인의 과거 회상

나는 빨강이어서 행복하다!
나는 뜨겁고 강하다.
나는 눈에 띈다.
그리고 당신들은 나를 거부하지 못한다.
나는 나 자신을 밖으로 드러낸다.
나는 다른 색깔이나 그림자, 붐빔 혹은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가 칠해진 곳에서는 눈이 반짝이고, 열정이 타오르고,
새들이 날아오르고,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산다는 것은 곧 보는 것이다. 나는 사방에 있다.
삶은 내게서 시작되고 모든 것은 내게로 돌아온다. 나를 믿어라!

                                                                                          - 오르한 파묵, 『내 이름은 빨강』에서.




빨간색은 본능적이다. 흔히 빨간색은 정열, 사랑 등 주로 에너지가 넘치는 무언가로서 형용된다. 또한 사람의 경우는 아니지만, 투우사가 빨간색을 쓰는 이유도 투우의 전투적 본능을 자극하여 돌진을 하게 만드는 것이지 않은가.


더현대서울(The Hyundai Seoul)을 포함한 파크원(Parc 1)은 빨간색으로 강력한 포인트를 주는 옷을 입은 채 유리처럼 차가운 주변에 뜨거운 에너지를 내뿜는다. 거대한 철골기둥과 트러스 구조가 건물을 받들고 있다. 이는 자칫 진부할 수 있는 사무 지대 속 복합단지를 특별하고 개성 있게 만든다. 특히 케이블과 함께 구축된 8개의 크레인 구조는 백화점 공간인 더현대서울의 주된 공간인 자연채광이 드는 기둥 없는 공간을 구성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한다. 너무나도 고전적인 인물이긴 하지만, 건축학도라면 한번 즈음은 들어봤을 이름 "비트루비우스(Vitruvius)"는 건축의 3요소로서 "기능, 구조 그리고 미"를 이야기했다. 빨간색의 구조는 그 요소를 빠짐없이 관통하며 독보적인 아우라를 획득한다.


파크원(더현대서울)을 위에서 바라본 모습. 건물 곳곳에 묻어있는 붉은색은 이 건물의 개성을 불어넣는 주요한 역할을 한다.


파리를 여행해보았다면 거의 대부분 퐁피두 센터(Centre Pompidou)를 가보았을 것이다. 그 퐁피두 센터를 설계한 사람 중 한 명인 리처드 로저스(Richard Rogers)가 파크원을 설계했다. 건물 밖으로 구조가 노출되면서 주는 투박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을 잘 사용하는 사람이다. 퐁피두 센터가 파리에 지어졌을 당시의 센세이션(물론 나도 그때 당시 파리에 살았던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지금 감정은 그저 간접경험을 기반으로 한다)만큼은 아니지만 충분히 감동을 주는 건물인 것 같다.


2016년 1월의 퐁피두 센터. 이때에는 여행이 참 자유로웠다.


작년 여의도에서 근무할 때는 한창 공사 중이었어서, 이 건물을 제대로 접할 기회가 없었다. 그저 통일교 부지에 거대한 성당 같은 느낌의 무언가가 지어져서 특이하고 오묘하네, 정도만 생각했다. 저저번 주 평일에 운이 좋게 시간이 나서 건물을 다녀와봤는데, 오랜만에 그저 건물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건물이었다. 개인적으로 구조가 입면에 드러나고, 구조 자체의 특성에 의해 공간이 결정되는 방식을 좋아하는데, 이 건물이 그러한 방식을 취하고 있어 더 재미있게 본 것 같다. 요즘 잘 나간다고 하는 것들은 다 모아서 입점시킨 더현대서울의 가게들도 큰 한몫을 한다.


더현대서울의 가장 주요한 내부 공간. 내부임에도 외부 같은 느낌을 준다. 특히나 천장이 어느정도 막혔음에도 불구하고 외부의 느낌을 주는 것이 인상적이다.


건축도 안 하면서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오랜만에 했는데, 건축학도였을 때 꽤나 진지하게 임했던지라 어쩔 수 없이 그 망령이 자꾸 나올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냥 마치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 같은 것 같다. 사실 이 건물을 돌아다니면서 기분이 좋은 동시에 화가 났다. 건축을 그저 이렇게 저렇게 상상하며 부수고 만드는 재미난 놀이처럼 여기던 건축학도 시절, 나도 이런 건물이 지어지는 데에 일조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라는 아쉬움과 함께. 못다 한 꿈을 실현하더라도 설계자로서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써 하게 되지 싶다. 앞으로 건축 설계를 직접 할 확률은 낮겠지만, 건물과 도시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앞으로도 큰 틀에서 보았을 때 나 스스로를 건축가라고 생각할 것이고 항상 건축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여러모로 오랜만에 많은 생각이 나게 되는 건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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