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한민국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에서 생일 알림 설정을 꺼놨다. 인생에서 인맥이 가장 넓고 얇았던 시절번호가 있는 모든 사람들의 생일이 궁금하지 않았을뿐더러, 가깝지 않은 이들에게까지내 생일을 노출하는 게 불편해지면서다. 업무차 만나는 사람들과 교류도 잦았고, 원래 알던 친구들과도 자주 어울리던 때에카카오톡 선물하기 기능 덕분에, 친밀한 사이가 아님에도 선물을 잔뜩 받았다. 생일 당일이었던가, 다음날이었던가 집에 도착했을 때 현관 앞에 택배가 문고리 높이까지 쌓여있었다. 당연히 기분이 좋았다. 누군가 나를 생각해서 선물을 준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니까. 그러다 문득, 내년 생일에선물을 이것보다 적게 받으면 어쩐지 조금 서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7살 때 받은 케익
그 무렵 계정 정지와 되살리기를 여러 번 반복한 끝에 완전히 탈퇴한 페이스북에 일 때문에 가짜 계정을 하나 만들었다. 페이스북은 가입할 때 따로 인증 절차가 없어서 생년월일을 아무렇게 기입했다. 1900년생에 몇 월 며칠이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어느 날 페이스북이 나에게 생일을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는데, 이때 누군가의 생일을 축하한다는 것이 이렇게 기계적인 반응일 수 있구나 싶어 허무했다. 카카오톡 생일 알림을 보고 축하한다고 보내는 메시지의 무게가 이정도로 가벼웁구나. 너무 냉소적인가? 그냥 안부 인사인데 예민한 거 아니야?라고 묻는다면 글쎄 할 말이 없다.
아이슬란드 여행 중 맞은 33살 생일
이런저런 계기로 모든 온라인 공간에서 생일 알람 설정을 지우면서 더는 선물을 못 받지만 얻은 소득이 하나 있다. 따로 알림이 없어도 내 생일을 기억하고 연락 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중학교 때 친하게 지냈다가 삶이 바쁘다는 이유로 반기에 한 번 얼굴을 볼까 말까 하는 친구부터, 헤어졌어도 생일만큼은 챙겨줬었던 옛사랑까지생일날에연락을 줬다. 이들이 보낸 메시지의 무게는 묵직했다. 나는 생일날 카카오톡에 쌓이는 수많은 가벼운 축하 메시지보다는 한 손으로 꼽을지언정 애정과 관심이 있어야만 가능한 연락을 받고 싶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