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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기C쁠 Jul 17. 2024

마법의 단어 exceptionnellement

잘못을 호의로 둔갑하는 프랑스 행정의 뻔뻔함에 관하여

일하러 간 칸 숙소에서 바라본 전망. 아주 잠깐 일할 맛 났다!


La remise gracieuse de la majoration pour retard de paiement vous a été accordée exceptionnellement.
- SIP -

Tax d'habitation. 지금은 폐지됐지만 프랑스에 거주하는 사람은 거주세를 내야 하던 때가 있었다. 집주인이 내는 세금과 별개로 그 집에 는 세입자가 내야 하는 세금이다. 주변에 물어보면 누구는 한 번도 내본 적이 없다고 해 실체를 종잡기 어렵지만, 1년에 한 번 내고 1월 1일 기준으로 몇 구에 사느냐에 따라 금액은 상이한 것으로 추정된다. 8구에 살던 나의 경우 한 달 치 월세에 조금 못 미쳤는데, 꽤 높은 금액이라고 했다.


프랑스 살이가 반환점을 돌았을 즈음 집주인이 집을 팔고 싶다며 나가달라고 요구해 이사를 했는데,  옛날에 살던 집으로 거주세 고지서가 날아왔다고 한다. 기술적으로 나에게는 고지서가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첫 번째 집주인은 집이 팔리기 전까지 에어비앤비로 돌릴 예정이라고 한 걸로 미뤄봤을 때 그 집에 상주하는 사람이 없어서 편지가도착했어도 전달이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막연히 추정하고 있다.


새 집에 적응해갈 무렵 첫 번째 집주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프랑스 정부에서 너의 은행 계좌 정보와 새로운 집 주소를 알고 싶어 한다고. 그걸 물어보는 이유가 뭐냐고 물어봤어야 했는데, 아무런 궁금증을 품지 않은 채 정보를 넘겨줬다. 아니 물어봤는데 모른다고 했던가? 아무튼 로부터 몇 달 뒤 이사 간 집 앞으로 2021년과 2022년 거주세를 내라는 파세무서의 편지가 왔다, 10%의 벌금과 함께.


, 납득할 수 없었다. 나는 프랑스에 일시적으로  거주하는 외국인으로 프랑스 세금 제도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다. 더욱이 한국과 프랑스는 납세 협약을 맺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세금을 납부하는 이상 프랑스에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그탓에 프랑스인들이 받는 사회보장 혜택도 받지 못한다.) 더욱이 마크롱 정부가 거주세를 폐지했다던데, 나니?


2년 치 세금인 데다가 벌금까지 있으니 액수가 꽤 컸다. 놀란 마음에 다음날 바로 세무서로 향했다. Rendez-vous(약속)의 나라에서 예약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문전박대당하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돈이 걸려있는 문제라서 그런지 직원과 바로 이야기할 수 있었다. 유리창 건너편에 있는 직원에게 열심히 상황을 설명했더니 짧은 답변이 돌아왔다. 그 얘기 적어서 편지로 보내! 


프랑스에서는 정부에 항의할 때 편지를 써야 한다. 괜히 델프 쓰기 시험에서 편지를 쓰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다. 그만큼 자주 있는 일이다. 이렇게나 현실을 반영한 언어 시험이라니! 최대한 공손한 편지 양식을 찾은 뒤 나의 요구사항을 프랑스어로 써 내려갔다. 편지를 쇄한 뒤 우체국을 향했다. 추적이 가능한 등기 우편으로 보내야만 그 효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


걱정되는 마음에 세무서를 찾아가기 전에 이메일도 보냈다. 돌아온 답장에는 너의 편지와 메일을 받았다고 하면서 세금이 부과됐다는 걸 알고 내는 건 너의 의무지만 이번에만 예외적으로 벌금은 철회해 주겠단다. 아니 대사관이든 어디든 프랑스 나에게 세금제도를 안내해준 적이 없는데 내가 그걸 어떻게 ? 약간 불쾌했지만, 봐준다니까 merci! 하고 넘어갔다.

한여름의 앙티브
Ce montant correspond à l'application du tarif de votre carte Avantage Adulte. Cette décision est exceptionnelle, en effet, pour bénéficier du tarif carte Avantage Adulte, il est nécessaire de renseigner sa référence lors de l'achat de vos billets.
- SNCF -


얼마 뒤 프랑스 철도공사(SNCF) 잘못으로 벌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다. 나에게 대단한 호의를 베푸는냥 구는 것. SNCF가 보낸 메일과 파리세무서가 보낸 메일에서 공통으로 등장한 표현이 있으니 그게 바로 익셉시오넬르멍 exceptionnellement, 예외적으로였다. 원칙적으로 안 되지만 이번에만 해줄게, 라는건데. 아니 애초에 신이 문제만 일으키지 않았어도 내가 예외가 될 리가 없는데?


SNCF와의 문제는 주말에 기차표를 할인해 주는 프로그램이 애플리케이션 업데이트 이후 먹통이 되면서 발생했다. 이메일을 보냈더니 정상 기차표 값, 할인 기차표 값, 내가 지불한 내역을 캡처해 보내면 차액을 돌려주겠다. 이때 주는 건 다음 기차표 구매에 사용할 수 있는 포인트였다. 번거롭긴 했지만 처음 별 불만이 없었다. 그러다 귀임을 앞두고 포인트를 못쓸 듯 해 현금으로 차액을 달라고 다시 메일을 보냈다.


그랬더니 현금 지불은 원래 안되지만 예외적으로 해준다는 답장을 받았다. 열이 뻗쳤다. 내 기억이 맞다면 SNCF 앱에서 해당 기능은 최소 6개월 이상 사용하지 못했고, 이 때문에 나는 불편한 과정을 여러번 거쳐야 했다. 그 문제를 적시에 해결하지 못한 건 명백히 SNCF의 잘못이다. 내가 내지 않았어도 될 돈을 SNCF의 잘못으로 지급한거고, 그 돈을 돌려달라고 했는데 외적으로 인정해준다뇨.


이 글을 쓰다가 파리세무서와 SNCF가 사용한 정확한 워딩이 무엇이었는지 찾아보려고 메일함을 뒤적거다. 애용했던 쇼핑몰에서 택배 비용을 예외적으로 돌려주겠다, 벨리브 정거장 고장으로 자전거가 제대로 반납되지 않아 부과된 돈을 예외적으로 돌려주겠다고 한 메일들을 발견하고는 프랑스에서는 예외라는 단어의 뜻이 무색할만큼 관적으로 쓰는 표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 정착 초기에는 정신이 없어 비판적으로 사고할 여유가 없었던 탓인지 예외적이는 표현이 얼마나 흔히 쓰이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와! 나한테만 해주는거네? 생각하도록 가스라이팅을 당한 건가 싶다. 잘못을 저질러놓고 사과하지 않아도 되는 구멍을 만드는게지. 이런 수모를 당했어도 이따금씩 프랑스에서의 생활이 그리운 나는... 랑스에 제대로 코가 꿰였나 보다. 헷

에즈 너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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