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심한 째까니 Oct 03. 2024

춤을 춰야 할 때

음주가무(飮酒歌舞)를 즐기나요? 음, 술로 고생하다 가신 어른이 많은 집안에서 자라 음주는 좀 한다. 가무는 유전인자를 받지 못한 데다 후천적으로 익히는 것에 한계를 느끼고 일찌감치 포기하고 살았다. 노래는 강압적으로 마이크를 잡아야 하던 시절을 겪으며 조금 나아졌지만 춤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이트 클럽이 점점 사라져 20대 때 두어 번 가고 끝났다. 그 후로 내 몸은 정확히 직립보행에 맞춰 발달해 왔다. 기지개를 켜는 일 외에는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릴 일도 없이.  

   

몇 년 전 겨울, 그런 내 근육을 일제히 깨운 일이 있었다. 자면서 몸을 살짝 돌렸는데 갑자기 숨이 턱 막혔다. 등에 담이 온 것이다. 매년 겪는 일인데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늘 무방비 상태로 풀어져 있던 근육이 단단히 뭉쳐 버렸다. 작은아이 두 살 무렵 어정쩡하게 앉은 자세로 아이를 번쩍 들어 올리는 순간 훅 치고 들어 온 담은 겨울에 잔뜩 움츠러들면 어김없이 찾아왔다. 추운 걸 싫어해 동면하는 동물처럼 거의 움직이지 않으니 운동으로 생명력이 생기는 근육들이 아우성칠 만도 했다. 집 앞 둘레길을 걸으며 간간이 목을 돌려 뭉친 근육을 풀어 보려 했지만 아프기만 했다. 상체에 몰려 있는 통증을 하체 운동으로 해결하고자 한 얄팍한 꼼수는 피곤만 더해 주었다. 핫팩으로 찜질하고 마사지를 받아도 좀체 풀리지 않았다.     

 

또 병원에 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친구가 요가를 해 보자고 했다. 예전에도 몇 번 권유 받았으나 운동을 워낙 싫어해 거절했다. 그러나 숨 쉬는 것만으로도 거뜬했던 몸은 숨을 쉬려면 운동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었고, 난 이 통증을 해결하고 싶었다. 요가 학원에 등록했다. 모든 운동처럼 요가도 장비가 필요했다. 먼저 몸에 착 달라붙는 요가복과 땀에도 밀리지 않는 매트를 샀다. 인도 요가 수련자의 펄럭이는 옷이 아닌 레깅스를 사는 게 다소 의아했다.

     

그 궁금증은 요가 학원에 간 첫날 풀렸다. 접수를 마치고 들어간 강의실 안엔 스무 명 안팎의 여자들이 각양각색의 레깅스와 꽉 낀 상의를 입고 매트에 앉아 있었다. 간단한 인사를 마친 원장이 무어라고 구령하자 모두 엎드려뻗쳐 자세로 엉덩이를 지나치게 치켜들었다. 나도 눈치껏 그들의 동작을 따라 했다. 원장의 구령과 음악이 달라질 때마다 수강생들의 동작도 일제히 바뀌었다. 구령만큼이나 동작도 낯설었다. 바위 위에 고고히 앉아 조용히 자세를 비틀어 대는 요가 수련자를 상상하고 간 나는 당혹스러웠다. 몇 동작만으로 왜 그토록 몸에 착 달라붙는 옷을 입어야 하는지 알게 됐다.  

    

처음 며칠은 ‘3+1’이라는 행사에 혹한 내가 미웠다. 친구까지 원망스러웠다. 그런 민망하고 힘든 동작을 4개월이나 할 자신이 없었다. 쓰지 않던 근육을 써 대자 아프지 않던 곳까지 쑤시기 시작했다. 수업이 끝나고 계단을 내려갈 땐 ‘아이고’ 하고 신음이 터져 나왔다. 배운 동작을 가르쳐 달라는 작은아이의 말에 짜증을 확 냈다. 아이가 토라져 들어가 버리자,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안 가는 날이 더 많았지만 3개월이 지나니 몸에 변화가 생겼다. 작은 뒤척거림에도 꽁꽁 뭉치던 근육은 봄이 올 때까지 평온했다. 살 만했다. 요가 예찬론자지만 실은 그 후로 다시 등록하지는 않았다. 내게 요가는 운동보다 무(舞)에 가까웠다. 춤은 꼭 필요할 때만 추는 걸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