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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하 Feb 19. 2022

무제

무명

    나는 어쩌면 혼자가 아니었다.


    '그것'의 모양은 동글동글하니 흡사 보름달인가 싶다가도, 손짓마다 또르르 유영하는 모양새는 마치 옥구슬이었다. 속도 없이 첫인상은 "예쁘다"였다. 꾸준하게 생과 사를 품는 두텁고 새까만 소우주를 바탕으로 허여멀겋던, 이름이 없는 '그것'은 흔히 집이라고 불렸으나 돌아갈 무언가는 없었다. 딱히 주인이랄 게 없으니까.


    관점에 따라서 '그것'은 경이롭거나 성가신 것에 불과했다. 어차피 마음 살을 앓다가 보면 몸살은 자연히 따라 올 부산물이었다.


    그래, '그것'은 고작 부산물에 불과했다. 그렇게 여기기로 했다. 그래야만 매정하게 놓아버릴 수 있을 테니까. 다르게 만났다면 어떤 운명이었을까, 따위의 가정은 이제 와서 하등 쓸모없었다.


    서늘한 재단 위로 떨떠름하게 누우니 사지가 칭칭 묶였다. 어차피 돌아갈 데 없는 처지인데 이렇게까지 과민하게 굴까, 불안한 속내를 애써 감추며 가만히 몸을 맡기자 스르르 눈이 감겼다. 설풋 잠이 들다가 채 제정신이기도 전에 몸이 먼저 퍼뜩 반응했다. 의식이 완전히 돌아왔을 땐 이미 한창 오열하는 중이었다.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섭리는 이토록 과민한 것임을. 사지가 풀리니 오한으로 몸이 덜덜 떨렸다. 한 풀 꺾이기까지 이번엔 얼굴이 칭칭 감겼다.


    그렇게 나는 다시 혼자가 됐다. 미친 듯이 울부짖었으나 딱히 구원받을 수도 없다.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테지. 무대 위에서 영문도 모른  마구 발악하다가, 등장과 마찬가지로 퇴장 역시 느닷없을 어리석 광대처럼. 우연과 행운의 장난질로 빚어진 생이란 점에서 '그것' 나는 별다를  없었는데,  까짓게 뭐라고, 감히 뭐라고. 허나 상실의 설움조차 기만이자 사치였다. 낯선 친절에 기대어 간신히 추슬렀다. 그래야만 했다. 나는 철면피니까.


    나는 결국 혼자가 되었다. 아니, 되기로 한 것이다. 눈 속에 담은 건 보름달인지 구슬인지 모를 형상의 실체였는데, 환청인지 현실인지 모를 실체 없는 울음이 귓속에서 매섭게 맴돌았다. 뭐가 됐든 현실은 비참했다.


    지친 몸뚱어리를 이끌고 하릴없이 집이라 불리는 곳으로 돌아가는 동안의 풍경은 청승맞기 그지없다. 산산이 부서진 달빛은 물결 따라 유유히 흘러 흘러 모이고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스산한 곡소리를 토하는 바람에 나부끼며 구슬피 춤을 추는, 허여멀건 눈보라는 차가운 땅 위로 소복소복 이불처럼 덮였다. 생자필멸 회자정리라고는 하나 만남이라기도 뭐할 정도로 짧은 스침이었다. 그럼에도 뇌리 속에 단단히 들어박혔는지 어딜 가서 무얼 보고 듣든 끊임없이 연상되는 것이다. 지각없는 오열처럼, '그것'과 닮은 것을 자꾸만 찾아 헤맴은 결코 내 의지와 무관했다.


    어쩌면 한겨울 밤의 꿈이었다. 동그란 집 속에서 나를 반겨주는 서른 개의 초가 꽂힌 딸기 생크림 케이크와 니트 두 벌. 달콤 쌉싸름하니 부드럽고 따뜻했으며 그토록 간절했기에, 스치듯 짧았던 꿈이 마냥 아쉬웠다. 하얀 눈처럼 남 모르게 찾아와서는 나 모르게 흔적도 없이 녹아 사라질 꿈이 대체 뭐라고 미련을 놓지 못해 지지부진 끌고 끌다가, 결국은 산산이 부서진 종지부를 찍고야 만다.


    내가 돌아갈 수 있는 집이란 더 이상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줄곧 혼자였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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