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 어머니의 수호성녀
나는 유년시절 성당 내 있는 유치원에 다녔었다.
당시 원장선생이 졸업 무렵에 엄마에게 말하기를, 선하는 재원 2년 동안 발전적이어서 이제껏 가장 보람을 느꼈다는 원생이었다고 했다. 어린 나이에도 엄마한테 전해 들은 그 말이 퍽 인상 깊었는지 이후 내 평생 마음속 한 구석에 두고두고 자리 잡은 모토가 된다.
발전성. 한 사람의 발전은 거저 이뤄질 수 없다. 스스로의 자발적인 의지와 노력, 그리고 타인의 도움으로 일굴 수 있다.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마을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의 격언처럼.
여하튼, 그 원장선생의 세례명은 모니카(Monica)였다.
몇 년 뒤 초등학생이 된 나는 모 영어학원에 등록하면서 담임선생이 각 학생들마다 영어명을 짓는데, 내 얼굴을 보더니 “How about ‘Monica?’”라고 묻는 것이다.
그 영어학원과 유치원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음에도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온 이름, 모니카. 나는 고작 아홉 살에 운명처럼 느껴졌다.
이후 인생 전반에 결코 빠질 수 없는 내 또 다른 이름이 된다.
중학생 때였나. 호기심에 위키백과에 검색해 보니 성녀 모니카는 난폭했던 남편과 시모의 음주벽으로 고통받는 가운데 설득과 헌신으로 남편을 기독교로 개종시키고, 역시 방탕했던 아들 아우구스티누스(훗날 서방 교회의 4대 교회학자 중 한 명이 된다.)가 비로소 개종할 때까지 온 평생 헌신한, 여성과 어머니의 수호성녀라고 한다.
성녀 모니카의 가호(?)를 받았는지 나는 사 남매의 홀어머니가 됐다. 이름이 운명을 결정짓는지 운명이 이름을 따르는지, 이름과 운명의 결이 비슷해진달까. 그렇다면 나는 내 손으로 운명을 선택한 셈이 되겠다.
아, 그러고 보니 내 조상 중에는 문인이자 화가이면서, 성리학자 겸 정치가인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 현모양처의 상징인 신사임당도 있다. 세상에. 이건 내 선택과 의지 밖이다. 어쩌면 정해진 운명이었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