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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진 May 18. 2023

나의 손때 묻은  바느질 도구들




바느질쟁이에게 바느질 도구란 당연한 것이라,

특별히 의미를 되짚어 글로 옮길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공방 선생님께 공예주간을 기념해

바느질 도구 전시를 기획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부랴부랴 내 바느질 함에 들어있는 것들을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가벼운 주머니 사정과  장비욕심이 크지 않은 탓에

나는 8년 전 다이소에서 산 플라스틱 상자를 바느질 함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 안에는 정리가 어려운 나답게 그간의 바느질 생활이

오래된 지층처럼 연도별로 뒤죽박죽 쌓여있다.


흠집 투성이인 플라스틱 상자 안으로

물건을 험하게 쓰는 나 치고는 상당히 좋은 컨디션의 바느질 도구들이 보인다.



아무도 궁금하지 않을 내 바느질 도구 투어를 시켜드리겠다.

(뻔뻔)










8년 전 볕 좋은 날,

재즈를 들으며 첫 바늘땀을 꿴 날이 기억난다.

내 바느질 도구 중 가장 오래된 바늘방석을 만들던 날이다.

땀이 촘촘하다는 칭찬에 고개만 푹 숙이고 속으로 무언가 시작했다는 설렘에 발을 굴렀던 기분이 생생하다.



선생님이 일본에서 사다 주신 예쁜 색실,

직접 풀칠한 배접지로 만든 명주 골무.


내 실수를 과감히 ctrl+z 해주는 조금 무뎌진 면도날과

손잡이가 멋진 송곳, 뾰죽한 끝이 휘어버린 핀셋 또한 손끝이 둔탁한 내게 꼭 필요한 오래된 바느질 도구이다.






와인색 가는 몇 해 전, 친구에게 생일선물로 받았다.

그리고 나는 작년에 그 친구에게 받은 이 가위로 재단해

예식용 한복을 지어주었다.


와인색 쪽가위는 가장 요긴한 도구 중 하나인데,

선생님께 선물 받은 도구인 데다가 학원에서 친해진 동생이 이름을 수놓아 장식해 주어서 애지중지하는 도구 중 하나이다.


막상 매일같이 쓰던 바느질 도구에 대해 쓰려고 하니

의식해 본 적이 없을 뿐, 모든 도구에서 제각각 한 장을 가득 채울만한 사연들이 떠올랐다.



그만큼이나 애정 어린 마음으로 바느질을 마주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매일 바늘 끝에 손을 뜯기면서도 완성된 바늘땀을 보며 뿌듯함을 느끼고, 바느질은 여전히 내게 설렘을 준다.




부디 나의 손때 묻은 도구들이

앞으로도 오랜 시간 함께 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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