뾰족한 취향
내 공간에 대한 열망의 시작은 국민학생 시절, 작은 집에서 네 식구가 복닥복닥하게 살던 때이다. 넉넉지 못한 형편이라 언니와 방을 나누어 썼는데 그때부터 나는 온전한 나만의 공간을 가지고 싶었다.
열망은 뾰족한 취향으로 바뀌었고, 눈에 담기는 모든 것들을 최대한 활용해 가능한 가장 구체적으로 꿈꾸게 되었다. 우리 집엔 커다란 장롱이 안방 벽을 한가득 메우고 있었는데, 장롱을 열어 이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나만의 장롱방을 꿈꿨다.
바야흐로 사회인이 되며 첫 자취를 시작하자 내 열망을 실현할 때가 되었다. 숫자에 약한 머리를 쥐어짜며 열심히 방 배치를 하고, 예산과 이상 사이를 열심히 저울질하며 집을 채워나갔다.
출근길부터 일하는 틈틈이, 퇴근 후. 일하는 시간 외에 쓸 수 있는 모든 시간을 집을 가꾸는 데에 쏟아부었다. 옥색 몰딩에 페인트칠을 하고, 화장실의 옛날 타일 사이에 줄눈을 채워 넣었다. 시트지를 기포 하나 없이 붙여내고, 손잡이들을 새것으로 바꿨다. 작업대와 식물을 사들였고 모든 집기를 새로 장만해 나갔다. 전에 없던 집중력과 설렘으로 한 계절동안 내 공간을 꾸려가는 것에 몰두했다.
결과적으로는 내 이상을 기준으로 하면 완전한 실패였고,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실패한 원인은 나의 취향이 어릴 적 장롱방을 꿈꿀 때처럼 뾰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어디선가 본 듯한 그럴싸한 이미지를 짜깁기 한 것은 튼튼한 결과물을 만들 수 없다. 그리고 공간활용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아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낳았다. 직접 생활하기 전까지는 깨닫지 못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었다.
지금은 이상적인 공간으로 꾸려놓았냐 하면 그도 아니다. 30대의 나는 20대의 나보다 훨씬 바쁜 삶을 살게 되었다. 적당한 타협을 거쳐 지극히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형태의 공간이다.
하지만 여전히 취향을 뾰족하게 갈고닦는다. 내게 필요한 소품들과 내 생활에 적당한 조도, 필요한 공백, 내 공간에 들이기 싫은 색감 등. 하나하나 모으다 보면 어느 때에는 이상과 맞닿은 공간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