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엔 저마다의 바다가
사람들은 섬에서 나고 자란 바다사람이라면 응당 물과 친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나는 어릴 적 목욕탕 물에 빠진 적이 있어 물을 무서워한다. 하물며 끝이 안보일만큼 널따란 바다는 어린 나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렇지만 텐트를 치고 야영이 가능했던 시절의 해수욕장 풍경은 아직도 그립다. 동틀 녘 잠에서 깨자마자 텐트 바깥으로 보이는, 해가 떠오르기 직전의 고요한 수평선. 바닷가의 서늘한 온도와 미지근하고 습한 공기와 모래의 버석거림, 그것이 가장 오래된 바다에서 좋았던 기억이다.
열일곱, 하교하면서 갑자기 바다로 가 교복을 입은 채로 얕은 물에서 발장구를 치며 놀던 기억. 열아홉에는 미술학원에서 다같이 바다로 놀러 가 물에 흠뻑 빠져보기도 하고, 밀짚모자를 쓰고도 까맣게 타도록 바닷가에서 놀던 기억이 생생하다.
바다를 대하는 나의 시각이 또렷해진 것은 스무 살 무렵부터였다. 육지로 상경한 탓에 대다수의 대학이 그러하듯이 사방을 둘러봐도 산과 언덕, 커다란 건물로 시야가 가득 찼다. 가끔 학교를 벗어나도 빌딩숲과 고가도로 따위만 눈에 들어오자 숨이 턱 막혀왔다.
바다 없이도 잘 살 것 같았는데. 난 바다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넓은 물이 보고 싶어 지면 한강으로 갔다. 극락왕생이라는 만화에 ‘바다에서 태어난 사람은 아마 평생 가슴에 바다가 있을 것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몇 해를 거치고서야 내 대학생활 내내 마음이 왜 그렇게 혹독했는지를 깨달았다. 시선을 돌리면 탁 트인 푸름이 보이던 풍경이 없으니 분갈이를 잘못한 식물처럼 뿌리내리지 못하고 시들 거리는 현상이었다. 종래에는 결국 어디로 옮겨심기든 괜찮은 들풀처럼 튼튼해졌지만, 나는 다시 섬으로 돌아갈 것이다.
물에 닿지 않고도, 보는 것만으로 위안이 되는 바다를 이미 나는 잘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