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마시는 데에 충실한 하루
해를 거듭할수록 실감이 안나는 1월 1일.
작년에 마무리 짓지 못한 바느질을 하며 TV로 새해 카운트 다운을 보고, 새벽에 겨우 잠시 눈을 붙이고 알람이 울리기 전에 일어났다.
근래 들어 신경 쓰이는 일이 있으면 식사를 할 수가 없었다. 입맛이 없는 걸 넘어서 목구멍에 문이 있다면 아예 '셔터'를 내린 느낌이었다. 영업종료라고 쓰인 가게 앞에 서있는 듯한 이상한 기분이다.
맛깔나게 생긴 요리를 봐도 감흥이 없고, 맛있는 빵냄새를 맡아도, 고소한 커피냄새를 맡아도 먹고 싶지 않았다. 배가 곯지도 않고 딱히 기운이 달리는 느낌도 없었다. '식사'의 필요도, 즐거움도 잊은 나날들이었다.
따라서 새해를 맞아 잘 챙겨 먹자는 생각이 번뜩 들어 점심에는 아껴둔 소고기를 굽고, 오이로 츠케모노를 만들어 먹었다.
얼마 전 기운이 없을 때 먹으려고 보험처럼 사두었던 차돌박이를 잘 달군 프라이팬에 올리자 맛있는 소리가 들린다. 얇은 고기가 익으면서 기름이 나와 지글거리는 소리가 더해졌다. 거의 다 익을 때쯤 소금을 솔솔 뿌리고 불을 꺼서 접시에 담았다. 육향 가득하고 고소한 차돌박이가 운 좋게도 소금간이 알맞게 잘 베어 들었고, 오이 츠케모노도 아삭거리고 새콤해서 감칠맛이 돌았다.
저녁에는 시금치를 버터와 소금만으로 강한 불에 빠르게 볶아 고소하고 식감이 좋은 시금치 소테를 만들었다. 해풍을 맞은 겨울 시금치는 싱싱해서 볶아도 아삭하고 달큰한 맛이 살아있었다. 이래서 제철음식을 먹어야 하는 거구나! 하고 다시금 깨달았다. 그리고 미소가지구이를 해서 함께 먹었다. 미소와 타래간장, 물을 조금 섞어 만든 짭짤한 소스를 살짝 노릇하게 익은 가지 위에 붓고, 졸여가며 가지를 마저 익힌다. 야매로 만든 미소가지구이지만 좋아하는 메뉴다.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하고 커피를 내려마시며 마무리했다. 하루동안 주방에서 분주하게 요리하고, 열심히 먹는 것에 집중하고, 더 맛있게 먹는 방법을 생각하니 무언가 충족된 기분이었다. 몸도 마음도 건강함이 차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