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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진 Oct 20. 2024

14. 청소

두서없음의 표본


살다 보면 어찌해도 내가 가진 재능값으로는 절대 도달할 수 없는, 한계치 같은 것을 느낀다.

청소가 내게는 그러한데 ‘오늘의 집’처럼 깔끔하고 정돈된 상태의 집으로 만들기란 영영 불가능해 보인다.

깨끗하게 정돈된 호텔에 가도 내가 묵으면 1박 만에 생활감이 생기는 수준이다.


주로 정리에 재능이 없는 편인데 신기하게도 말할 때나 글을 쓸 때에도 마찬가지다.

정돈되지 않게 두서없이 말하거나, 주제에서 벗어나 삼천포로 빠지거나 카테고리별로 묶여있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써 내려간 흐릿한 글에서 그런 면모가 드러난다.

서른다섯 해를 넘게 살아가면서 이 것을 인정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다 내가 할 수 있는데도 게을러서라고 자책했는데, 이렇게까지 되지 않는 걸 보니 세상엔 정리정돈이나 청소에 재능이 전혀 없는 사람도 있고, 그게 바로 나라는 것을 결국 인정했다.

엄마는 이 문제에 대해 스스로 해결 안 되는 걸 보니 그냥 청소 전문가분의 도움을 받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쿨하게 이야기했다. 이렇게까지 스스로 안 되는 것을 붙잡고 있지 말고 스트레스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또 한 번 탁트인 기분!


우리 엄마는 복잡한 문제를 심플하게 하는 데에 도가 텄다. 나는 엄마의 말로 인해 자책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실은 우리 엄마의 취미는 청소이다. 허구한 날 스뎅 냄비를 닦아대고, 흰 빨래를 푹푹 삶아대고, 20년이 넘은 우리 집 화장실은 내 방보다 깨끗해서 이불 깔고 누워도 될 정도이다. 배 아파 낳은 자식이지만 이렇게나 다른 딸내미를 보며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지.


10년 전쯤, 자취를 처음 시작하고 갈수록 심각해지는 방을 보며 스트레스를 받을 때 엄마가 자취방에 와서 잔소리를 하는 꿈을 꾼 적이 있다. 내가 이렇게 어지럽게 살지 않기를 가장 바라 마지 않을 사람, 엄마.

꿈 속에사 좁은 주방을 휘휘 둘러보며

“흐미~ 이것이 다 뭣이다냐. 또깨비 튀어나올라 한다.”

하는 엄마를 가만히 안고

“엄마, 내 꿈에 나와줘서 고마워.”라고 했다.

이 꿈 이야기를 엄마한테 해주자 얼른 청소나 하라고 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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