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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와 Mar 10. 2023

01. 꿈이 생기면 이루어질 줄 알았습니다 (광고 편)

아, 난 광고 기획자가 되어야겠어

첫 번째. 광고대행사 인턴 6개월

두 번째. 인디음악엔터테인먼트 9개월

현재. 공연행사대행사 7개월~


첫 선곡 ~ Tex Crick - Nothing Will Change My Mind

아직도 신입이야?


 그럴 의도는 전혀 없었다. 그럴 거라는 생각도 못했다. 놀라운 건 앞으로 또 몇 번의 신입을 자처할 것 같다는 직감이 든다는 것! 가끔씩 찾아오던 좌절은 여전하지만 타격은 미미하다. 여러 번 관심 분야와 업무를 조금씩, 동시에 깊게 걸쳐가 보며 나에게 최적인 길을 트고 있다. 참 울퉁불퉁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알아가며 변화의 묘미를 깨닫곤 한다. '이걸 하고야 말겠어!'라는 생각보다 '이거는 진짜 아닌 것 같다..'라는 깨달음이 대부분이지만.


그래서 무얼 깨달았냐 하면-

 결국, 음악이다. 돌고 돌아서라도 음악업을 하겠구나. 애증의 관계이듯 평생 함께이겠구나. 내 몸을 일으키고 정신을 울리던 음악이 드디어 무뎌질 그때에도, 그 나름의 이유로 음악을 찾겠구나. 이 깨달음은 내가 꿈에 그리던 음악업계에 입사했음에도 더 이상 음악을 듣고 싶지 않다는 결심을 한 이후에 내린 또 한 번의 소망이자 직감이다. 차차 과거의 기록을 남겨갈 테지만 끝까지 해보고 싶다는 일을 찾는 그날까지, 신입은 계속될 것이다. 그런 길을 가겠구나, 그냥 느낌이 그렇다. 그렇기에 이 명확하고도 애매한 길을 어떻게 지나왔는지, 나의 글은 이 헤맴의 역사를 현재로 남겨가는 일이 될 것이고, 드디어 천직을 찾은 음악업전문가가 어떤 시련과 행복을 맛봐왔는지에 대한 발자취로 길이 찍힐 것이다.




광고기획자가 될 거야!


돌아보면

 직업의 의미를 알기 전부터 되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여전히 기억나는 나의 첫 꿈은 마술사였다. 몇 살인지 모를 유치원 꼬꼬마 시절, 어디에선가 마술쇼를 보고 나선 마술사가 될 거라 말하고 다녔다. 당시 자녀 교육에 한창 불을 지피 우고 계셨던 엄마는 '마술사 되려면 책 200권은 읽어야 해.' 라며 마술사 행세를 하며 들떠있던 나에게 공포감을 한가득 불어넣어 주셨다. 그런 어마무시한 관문을 통과해야만 세계적인 마술사가 될 수 있구나 생각하며 그 즉시 '그럼 안 되겠다!' 선언했다. 그렇게 책을 읽기 싫어했던 장래 마술사는 한순간의 공포심과 귀찮음에 쿨하게도 꿈을 접었다. 어린 시절 나에게 직업은 그런 정도의 의미였다. '그럼 안 하면 되지!'


그럼 뭐가 되고 싶은데?

 그저 세상을 흘러가는 대로 즐기고 있었던 나에게 국가는 자꾸만 질문을 던졌다. 장래희망이 무엇이냐는 빈칸에 '아직 고민 중인데요.. 사실 지금은 고민하고 싶지도 않아요. 언젠가 정해지면 적을게요!'라고 남길 수는 없었다. 그렇게 부모님과의 논의로 탄생한 과학자, 초등교사라는 장래희망을 거쳐 진심으로 하고 싶은 궁금한 직업이 생겼다. 때는 고등학교 1학년, 친했던 친구를 따라 그 친구가 기장을 맡고 있던 광고기획동아리를 들어갔다. 지쳐가던 공부 속에 '광고천재 이제석'의 작업들을 마주하고, 감탄을 자아내던 카피라이팅을 수집하는 동아리 과제는 말 그대로 재미있었다. 그 재미는 점차 커져 호기심이 되었고, 그렇게 진심이 담긴 나의 첫 번째 장래희망이 결정되었다.


광고, 크리에이티브, 마케팅, 브랜딩. 좋긴 한데 왜 묘하게 안 끌리는 거지...?

 내신 파였던 나는 6개의 수시 모두 광고홍보학과를 입력했고, 그중 운이 좋게도 날 아껴주셨던 담임선생님이 추천해 주신 학교에 합격했다. 세상을 감동시킬 광고를 만들고자 한껏 들뜬 마음으로 수강했던 전공 수업에서 처음으로 '이런 게 광고 기획인가..?'라는 생각을 했던 때를 기억한다. 눈과 머리가 즐거운 크리에이티브한 아이디어를 꿈꿨던 새내기에게 잔뜩 쌓여있는 마케팅 이론과 PR 보고서 과제는 마치 '광고는 사실 이런 세계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밤을 새우며 했던 조모임 과제들 속에는 '그래도 잘 해내고 싶다'라는 열정이 있었다. 그래도 나의 첫 꿈, 잘 나가는 광고회사에 입사하여 AE 타이틀을 달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광고를 만드는 기획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여전히 살아있었다. 그렇게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건 무엇일까 고민하던 어느 날, 어쩌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건 광고 디자인일 수 있겠다 생각했다. 나의 감각을 눈으로 드러내는 일이 궁금했고 고민하는 일이 즐거웠다. 하여 디자인 관련 복수 전공을 고민하기도 했지만 용기가 부족했던 나는 '광고홍보학 전공으로 만족하기'를 선택했다.




스물두 살, 광고대행사에서의 첫 번째 사회생활

 생각해 보면 참 어린 나이였다. 현재가 불안했던 아이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고, 그 당시의 나는 회사에 들어가 일을 하는 모습이 그것의 증명이 아닐까 생각했다. 광고 기획이라는 업무에 많은 회의감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실무는 다를 수 있겠다며 또 한 번의 기대를 걸었다. 그렇게 스물두 살, 대학교 3학년 2학기 겨울 즈음 교내 광고홍보학부 커리큘럼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장기현장실습에 지원해 낮지 않은 경쟁률을 뚫고 1순위로 지원한 회사에 인턴으로 입사했다. 무척이나 떨렸고, 그 떨림 속엔 무수히 많은 기대가 들어있었다. 운이 좋게도 첫 번째 사회생활을 함께 하게 된 팀원들은 정말 좋은 분들이었고, 그분들께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많은 것들을 배웠다. 강남 전경이 보이는 통유리 사무실의 벽면을 가득 이루고 있던 화이트보드에 아이디어를 잔뜩 채워 넣으며, 내가 꿈꿔왔던 광고기획자의 한 장면이라 느꼈던 순간도 있었지만 전공과 실무는 또 다른 의미로 정말 다르다는 것을 매일의 업무 속에 깨달았다. 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일들을 찾으려 했다. 어떤 회사든 이십 대 초반의 인턴들에겐 업무와 관련해 많은 기대를 하지 않는다. 난 그 관념을 당당히 뛰어넘고 싶었으나 시키는 업무를 잘 해내는 인턴, 딱 그 정도였다. 6개월의 근무 끝에 정규 제의를 받았지만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 말하며 후련한 마음으로 퇴사했다.


두 번째 가슴 뛰는 꿈, 그 결심의 처음은 언제나 순수했다.

 신입, 특히 인턴에게는 흔치 않은 행운이 입사 후 며칠이 채 지나지 않아 내게 찾아왔다. 바로 비딩, 즉 2020년도 첫 경쟁피티에 참여하는 것. 외국계 제약 브랜드의 비딩에 들어간다는 팀장님의 말씀을 듣고 '잘 해내야 될 텐데..'라는 걱정이 또다시 앞섰다. 어떤 일이든 걱정이 앞서는 내가 걱정이 앞서는 일들과 힘을 겨루던 어느 날, 팀원들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약을 바르면서 들을 수 있는 유튜브 플레이리스트를 짜야한대요.' 플레이리스트라니. M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플레이리스트 만드는 게 취미였던 DJ는 '저건 내가 할 것 같다' 직감했다. 아니, '저건 내가 하고 싶다' 생각했다. 나의 바람대로 대리님께서는 약을 바르는 상황과 그에 잘 어울리는 음악 분위기를 세분화하는 업무를 내리셨고, 걱정 대신 설렘을 안고 근무 중 합법적 음악 디깅을 시작했다. 이런 게 덕업일치 그런 것과 비슷한 마음이겠구나 생각하며 처음으로 팀원들의 피드백 걱정이 없는, 과정이 즐거운 경험을 했다.


그 순간부터, 음악을 업으로 삼아야겠다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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