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이 되면 외국으로 여행을 꼭 나가야지. 너무나 흔한 로망이 아닐까. 나 역시도 그랬다. 생각은 중학교 때부터 품었던 것 같은데 다짐은 아마도 고등학생 무렵이었다. 인터넷 강의 영어 강사가 강의 중에 유명 여행카페를 추천해줬었다. 강사는 종종 수업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대학생활을 기대하게 하는 황금빛 미래를 이야기하곤 했었는데 그 맥락 중에 나왔던 이야기였다. 나는 그 카페를 강의가 끝나자마자 무작정 가입부터 했었다. 까먹을 것 같아서. 그때가 고등학교 1학년 때니까 아주 빨라도 3년은 더 지나야 뭐라도 가능한 나이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가입만 해놓고 딱히 방문한 적은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흘러 대학생이 된지도 조금 더 흘러서, 카페에 방문하게 된다. 드디어 유럽여행을 가기 위한 조건들이 맞춰졌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에 묻어 두었던 타임캡슐을 여는 것 같아서 기분이 이상했다.
시작은 달짝지근한 로망이라는 단어에서 시작했지만 그 꿈을 이룰 수 있게 해 준 건 어쩌면 분노라는 감정이었다. 대학생활 동안 미학 수업을 제법 수강했었다. 예술에 늘 관심이 있었고 창작하는 일이 꿈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학 수업에서 다루는 작품들을 공부하면서는 계속 화가 났었다. 너무 어려워서. 도대체 이 작품이 뭐 얼마나 그렇게 대단하길래 몇백 년에 걸쳐서 분석되고 회자된단 말인가. 아우라란 무엇일까,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가? 이 작가들의 작품이 진정으로 대단한가? 특히 현대미술은 정말 내게 많은 의문을 가져다주었다. 너무 고평가 되는 것이 아닐까, 나의 소양의 문제인가? 이 모든 의문을 해결할 방법은 한 가지였다.
내가 직접 가서 봐야겠다.
활자로만 배우고 인쇄된 그림으로만 봐서는 작품을 이해하기 퍽 어려웠다. 그리고 이렇게 대단하다는 작품을 나는 보지 못했다는 게 억울하기도 했다. 특히 대학 3학년이 되면서부터는 우물 안에 갇힌 개구리 같다는 생각을 종종 했기에 더욱 그랬다. 너무나도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었다. 여기서만 이렇게 공부하고, 일하고, 생활하는 것이 영 갑갑하기만 했다. 그래서 더 매달렸던 것 같다. 돈도 더 열심히 모았고 동시에 교환학생에 합격하기 위해 영어공부에도 열정을 다했다. 그렇게 나는 영국 교환학생에 합격했고 넓은 세상에서 여행-공부-생활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모두 엮어 실행할 수 있게 되었다.
교환학기 시작 한 달 전에 출국하여 한 달 동안 홀로 유럽여행을 하고 영국에서 교환 생활을 한 학기 한 후, 또 2주가량의 유럽여행을 한 후 귀국이라는 계획이 세워졌다. 비행기 티켓은 출국 두 달 전에 파리 IN으로 끊었으며, 이 모든 이야기는 2019년 8월, 파리에 도착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