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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의 위성 Jan 14. 2021

에펠은 실재하고 나는 파리에 있었다.

내가 어떤 에펠을 사랑하는지 알 수 있어서




안녕, 철탑아



생각보다 크고,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은



 처음 녀석과 마주한 건 숙소가 위치한 파리 시내로 가기 위해 탄 공항버스 안에서였다. 에펠탑을 생애 처음 본 순간 느꼈던 감정은 '와 씨, 이게 존재하긴 하는 거구나'였다. 에펠을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다고 한 친구가 있었는데 나는 그런 대단히 운명적인 느낌은 없었다. 매체에서나 보던 것이 실존한다는 감각이 더 다가왔다. 물론 에펠탑의 존재는 당연히 알고 있었으나 내가 나의 눈으로 보지는 않았으니 진정으로 느낄 방법은 없었던 것이다. 비록 버스 안에서지만 개선문과 에펠탑을 차창 너머로 직접 보니 내가 파리 한가운데에 떨어졌다는 것이 실감 났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정말로 특별한 감정은 없었다. 다음날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으러 갔을 때도 '철탑이네, 엄청 큰.' 정도의 감상이 끝이었다.


 그리고 파리에 머물렀던 일주일 동안 나는 매일 에펠탑을 보게 된다. 일부러 보러 갈 때도 있었고, 그냥 다른 관광지를 가려다 우연히 마주치기도 했다. 그럼 잠시 멈춰서서 녀석을 바라본다. 에펠은 한 가지의 모습만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아침의 에펠, 해질 무렵의 에펠, 밤의 에펠, 새벽 1시의 에펠. 시시각각의 에펠은 나에게 매번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름 저녁의 에펠과 화이트 에펠

                                                                


 그리고 난 여러 모습의 에펠을 보면서 녀석에게 점점 애정을 품게 된다. 그저 차가운 철탑인 줄 알았던 녀석은 시간에 맞게, 환경에 맞게 모습을 바꾸었다. 오전의 철탑은 여전히 매력 없었다. 하지만 한여름의 늦저녁을 배경으로 한 에펠은 나를 굴복시켰다. 선선한 바람, 낮의 더운 기승은 한 풀 꺾였고 사람들은 저마다 나와 에펠 앞에서 여가를 보낸다. 점점 파란빛과 주황빛으로 물드는 하늘 곁에서 에펠은 더 이상 차가운 철탑이 아니었다. 그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이 순간을 너무 기억하고 싶어서. 나도 녀석 앞에서 휴식과 위안을 취한다는 것을 남기고자.  에펠이 처음으로 내 마음으로 들어온 순간을 잘 간직하고 싶었다.


 반면에 화이트 에펠은 손이 많이 가는 친구였다. 무려 새벽 1시에 점등이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꽤 유명한 것 같았는데 나는 이 화이트 에펠의 존재를 같이 숙소에 묵는 언니들에 의해서 알게 되었다.


"우리 화이트 에펠 보러 갈 건데 같이 갈래?"

"화이트 에펠이요? 그게 뭔데요?"

"에펠탑에 점등되는 거!"

"... 그거 저 봤는데요?"

"혼자? 언제?"

"첫날에 숙소 오는 길에 버스 안에서 봤어요, 정각에 점등되는 거."

"아아. 그거 화이트 에펠 아냐. 화이트 에펠은 새벽 1시에 딱 하얀색으로 점등되는 거야.

 혼자 보러 갔다 온 줄 알고 놀랐네~"


 파리는 미술관 투어에 방점을 두고 계획하느라 화이트 에펠에 관한 어떤 사전 정보도 없는 상태였다. 그리고 에펠에 대해서 정말 관심이 없었다는 반증이기도 했고. 밤과 새벽의 파리는 절대 안전하다고 볼 수 없었고, 게다가 홀로 이동해서 아닌 밤중에 새벽까지 기다려 에펠을 보고 다시 숙소까지 오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었다. 운이 좋게도  그들은 흔쾌히 같이 가자 해주었고, 숙소에서 에펠은 걸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동행도 생긴 마당에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돗자리를 펴고 맥주와 과일을 씹으며 에펠을 감상했다. 화이트 에펠은 새벽 1시나 돼서야 시작되니 그 전의 시간은 저마다의 이야기와 여행의 회포로 채웠다. 1시가 다가오자 다들 핸드폰 동영상을 켜며 에펠의 모습을 기다렸다. 노란빛의 조명이 꺼지고  하얀색으로 송이송이 바뀌어 반짝였다.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아니면 다시 한 해가 시작되는 1월 1일이 된 것 같았다.


특별한 새벽이었고, 내가 진정 어디 있는지 헷갈렸다.


 정말 파리에 있구나 싶으면서도 이런 걸 내가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어두운 밤에, 시끄러운 사람들 소리, 그리고 시간에 맞춰 사람들에게 손짓하는 은빛 에펠.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일상이 아니었다.




8월의 마지막 날, 파리 늦은 9시의 에펠


 파리를 떠나기 전 날, 나는 마지막으로 에펠탑을 보기 위해 같은 숙소의 동행과 같이 나왔다. 그녀도 내일 파리를 떠난다고 했다. 나는 아침 일찍, 그녀는 그보다 좀 뒤에. 그래서 마음이 맞았다. 마지막 파리를 눈에 담자고 같이 나와선 몇 시간이고 에펠 앞에 있었던 것 같다. 이 순간에 어울리는 노래를 번갈아 틀었고, 다시 만나지 않을 인연끼리의 대화는 그래서인지 더 솔직해져 갔다. 파리의 여름은 9시가 다가와서야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따뜻하게 켜진 노란 불빛의 에펠은 나를 떠나기 싫게 만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처음 파리에 도착한 첫날과는 정반대의 감상을 내놓게 된다. 에펠은 정말 예쁘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일주일 동안 시시각각의 녀석을 보면서 나는 오늘의 에펠이 가장 아름답다고 결론을 내렸다. 땅끝부터 하늘 끝까지 따뜻한 노란색으로 그곳의 모든 이를 켜켜이 위로해주었다.  


 나는 저녁과 밤, 새벽의 에펠탑이 좋았다.
노을색 조명이 켜켜이 들어온 에펠을 사랑했다.
그리고 내가 어떤 에펠을 좋아하고 사랑하는지 알 수 있어서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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