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갑자기 떨어지는 몫
영국에서 교환학기를 보내면서 학업적으로 힘들었던 것은 역량의 차이에 관해서였다. 교환학기에서 받을 성적에 크게 욕심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학업 자체에 욕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잘 해내고 싶었다. 잘 해낼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영국에서의 나는 곤혹스럽게도 버벅대며 따라가는 게 대부분이었다. 생각보다 빠른 교수님들의 강의 속도와 저마다 다른 악센트는 학기 초반 나를 당황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한국 강의실에서의 집중력보다 배는 힘을 쏟아야 했다. 게다가 중간에 다른 생각이라도 하면 낭패였다. 솔직히 한국 대학에서는 가끔씩 강의 중간에 딴생각을 해도(교수님 죄송합니다) 곧장 강의 내용에 돌아올 수 있었다. 아예 안 듣고 있던 것도 아니고 잠깐 샛길로 빠졌다가 집중하는 거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잠깐이라도 딴생각을 하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지 찾아오기 어려웠다. 그러니 짧으면 1시간 길면 그 이상의 시간 동안 내내 최고 강도의 집중을 해야 했다. 그래도 수업은 잘 따라가는 편이었다. 교수님들이 수업 자료도 나눠주고, 피피티에도 잘 정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진짜 보스는 과제였다.
과제를 하면서 생각했다. 영어로 된 과제와 자료를 읽어내고, 영어로 리서치를 하고, 영어로 리포트를 작성하는 이 모든 과정은 몇 배의 에너지가 드는 일이라고. 기분이 미묘해지는 건 이렇게 몇 배의 품을 들였음에도 한국에서 한국어로 할 수 있는 만큼의 역량이 나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속도는 말할 것도 없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영어로 된 텍스트의 범람은 나를 종종 지치게 했다. 이거 하려고 온 거 맞긴 하는데, 그렇긴 한데...
과제 러시 기간에는 조금 우울해질 때도 있었다. 진도가 잘 안 나가니 재미보다는 짜증이 일었으니 말이다.
그땐 누가 나를 위로해주지?
나는 다행히도 스스로를 다룰 줄 아는 상태였다. 커피와 디저트는 확실한 처방전이었다. 달달한 디저트와 쌉싸름한 커피, 혹은 단 커피만으로도 마음이 풀어진다. 위로를 얻는다. 그래서 과제 러시 기간에는 좀 오버해서 먹었다. 거의 카페인 반 슈가 반 상태였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저히 끝낼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해외 살이를 하면서 활동량이 많아지다 보니 체중이 감량되면 감량되었지 증량은 없었는데, 과제 러시 기간이 지나고 청바지가 꽉 맞아서 당황스러웠다. 그 정도로 그때는 카페인과 당에 의존했다. 그래도 어떻게 저떻게 힘을 내서 과제를 해냈다. 관성이라는 건 무섭다. 포기하고 도망치고 싶고, 스스로도 실망스러울 정도의 퀄리티의 과제라도 끝까지 작성했고 제출했다. 제출 당일 새벽에 과제를 시작해도 어떻게든 제출은 했던 한국의 나처럼 말이다(교수님 죄송합니다2). 펑크는 없다. 구려도 낸다.
팀플도 그렇다. 나는 한국에서 팀플을 하면 보통 주도하는 입장이었다. 성적에 욕심이 없는 편은 아니라서, 내가 나서야 하는 상황이면 나섰다. 내 몫 이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선 어림도 없었다. 조용히 입 닫고 내 몫을 해내기에도 너무 바빴다. '민폐가 되자말자'가 목표였을 정도다. 무조건 내 몫은 그래도 하려고 아등바등 이었다. 하지만 다른 팀원들의 마음에 찰 정도로 잘했을까? 는 아직 의문이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몫의 차이. 한국에서는 10의 몫을 감당하고 해낼 역량이 있었다면 여기선 한 4 정도였다. 잘하면 절반이었다. 온 힘을 내면 6이었다. 그건 꽤 지치는 일이다.
교환학기는 크게 보면 몫에 대해서 배워가는 시기다. 언어가 바뀌면 몫에 대한 역량도 달라진다. 그건 내 위치를 바꾸는 일이다. 내 몫 이상을 해서 큰 결실을 돌려받는 것에서, 열심히 해도 내 몫 해내기에 그치는 것은 큰 차이니까.
누가 나를 케어해주는 것이 당연한 일상에서 오랫동안 살았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스스로 돌보지 않으면 먼지 구덩이에서 살고 건강한 음식을 먹을 수 없다. 내 몫으로 떨어진 거다. 건강하게 먹고 깨끗한 환경에서 숨을 쉬는 것.
하다못해 방 안에 벌레가 들어와도 잡는 건 오로지 내 몫이었다. 한국에서 내 방에 벌레가 들어오면 하는 일은 엄마나 아빠를 부르는 일이었다. 그럼 부모님이 오셔서 해결해줬다. 하지만 영국에서 벌레가 내 방에 들어온 이상, 선택은 두 가지뿐이다. 내가 죽이거나, 우리 둘이 영원히 여기서 같이 살거나. 벌레가 싫어 잉잉대도 변하는 건 없었다. 내가 해결할 수밖에. 처음엔 힘들었는데 점차 나아졌다. 그 방에 같이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말이다.
이 모든 건 성장에 관한 이야기기도 하다. 내 책임이 아니었던 일들을 책임지고, 역량이 닿지 않는 일들을 어떻게든 해낸다. 과제 러시를 끝내고 친구와 한 잔 했을 때는 정말 시원했다. 모르겠고! 나는 제출했다! 의 감정들이 앞서기는 했지만 성취감도 있었다. 기어코 도망치지는 않았다는 안도. 포기하지 않았다는 뿌듯함.
앞으로 살면서 나에게는 또 어떤 몫들이 떨어질까? 어떤 책임들이 생기고, 또 어떤 일에 낯선 몫을 해내기 위해서 전전긍긍할까. 아무도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커피와 디저트와 함께 해낼 거다. 그리고 아마도.. 또 새벽에 끝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