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대학교에서 교환 학생의 신분으로 생활하면서 뜻밖의 열등감과 맞서기도 했다. 생각보다 내가 영어를 못했기 때문이다. 분명 오기 전에는 누구보다 자신만만했던 것 같은데 현실에 맞부딪혀보니 녹록지 않았다. 말이 바로바로 나오지 않았고 미묘한 뉘앙스는 이미 포기한 지 오래였다. 그곳에는 각국 출신의 교환학생들이 있었고, 매우 영어를 잘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 안에서 생활하면서 실력이 늘기는 했겠지만, 내가 원하는 만큼은 아니었다. 기본적인 무기가 장착되어야 춤도 추고 기술도 부리는 건데, 나의 영어 실력에 의문이 생기니 발표도 과제에도 고민이 많아졌다.
한 수업에서는 교수님이 내게 발표를 많이 시키려고 하기도 했다. 내가 워낙 나서서 말을 많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수업에서 조별 발표가 있었고, 각자 파트를 나누어서 발표를 해야 했다. 나 역시도 맡은 파트가 있었다. 고민이 많아졌다. 학기 막바지였고 발전된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스크립트를 미리 쓰고 열심히 연습했다. 발표 때, 자신감 넘치게 발표하자 끝나고 나서 교수님이 내게 따로 아주 많이 늘었다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전까지는 나를 계속 시키는 교수님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제발 신경 꺼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그 순간 그의 진심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진짜 이겨내기를 바랐구나. 잘하지 못해도 해냈으면 좋겠다고 응원하는 거였구나.
환경 자체가 다른 친구들도 많았다. 부유하거나 시작이 빨랐던 친구들. 그런 친구들을 보면서 이건 너무 이른 격차가 아닌가? 하고 생각이 많아지기도 했다. 부럽기도 했고, 내가 한참 미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나도 이 시점에 같은 곳에 와 있다는 생각 말이다. 나 역시도 특혜를 받은 사람이라고. 초등학교 때 영어학원을 보내주었던 엄마. 그때는 그저 꾸역꾸역 다녔었다. 딱히 열심히 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아예 내팽개치지도 않았다. 그래도 영어를 놓은 적은 없었다. 중고등학교 내내 영어학원을 다니지는 않았지만 인터넷 강의를 통해 영어를 공부했다. 이런저런 미련이라고 칭하고 싶었다. 아예 공부를 놓치는 못했던 용기 없었던 나와 미련으로 끌고 갔던 적당량의 공부량. 나는 내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엉엉 울던 고2 시절을 기억한다. 그럼에도 포기하지는 못했다. 미련인지 두려움인지 희망인지, 아니면 모든 것이 한 데 섞인 어떤 것 때문에 하긴 했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를 칭찬한다. 잘했어!
교환학생을 준비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방학 내내 해야지 해야지 하며 팽팽 놀다가 학기가 시작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알바와 수업, 영어 학원을 병행했다. 하루에 두 끼를 모두 바깥에서 사 먹기는 부담스러워 저녁을 과일 스무디 같은 걸로 때우는 날도 종종 있었다. 알바비가 아이엘츠 학원비로 다 빠졌기 때문이다. 밤에 집에 돌아와, 아이엘츠 시험까지 남은 날을 세며 도대체 이 벼락치기 인생은 언제 끝나는 거냐며 스스로를 한탄하기도 했다.(근데 지금까지도 벼락치기 인생..) 내 잘못이라 누굴 탓할 수도 없었다. 시험비는 왜 이렇게 비싸며, 실력은 느는 건지 아닌 건지 갸우뚱하기만 했다. 그럼에도 다행이라고 느낀 것은, 아예 놓지 않았던 영어의 흔적이었다. 어쨌든 수업을 알아먹고, 숙제를 해갔으며 의지가 생겼다. 벼락치기가 가능한 기반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 다행스러웠다.
이 모든 건 어쩌면 엄마의 긴 투자였을지도 모른다. 투자에 비해 저조한 성과를 거둘지 잭팟이 터질지 모르지만 엄마는 영어 학원을 보내주었고 인터넷 강의비를 내주었다. 엄마는 부모로서 당연히 해주는 일이라고, 별 생각이 없었을 수도 있었지만 말이다. 이런 일련의 생각들이 정리되자 그제야 감사함이 들었다. 아 이 모든 건 당신의 끊임없는 투자를 통한 결실이구나. 그러자 열등감도 사라졌다. 감사함이 더 크게 다가왔다. 그가 나보다 영어를 잘하든, 그가 나보다 더 좋은 성적을 거뒀든 어쨌든 나도 그들도 여기에 있다. 같이 공부하고 함께 생활한다. 침대에 가뿐히 누웠다. 나의 다행은 모두 당신의 투자에서 비롯되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내가 그 투자의 달콤함을 독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족과 함께 왔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당신의 투자가 영 쓸모없지는 않았다고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영어로 주문을 하고, 길을 찾고, 무언가를 사는 모습을 말이다. 이 모든 것을 함께 누리고 싶었다. 그러자 더 뭉클해지기도 했다. 이토록 바라는 것 없는 투자라니. 원하는 이익은 오로지 내가 더 수월하고 안온한 삶을 사는 것이라니. 내가 넓은 세상을 보게 만드는 것이라니. 당신의 투자는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래, 그건 투자보다는 사랑이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