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심리상담소 사연
아래의 사연은 <또, 먹어버렸습니다> 책 출간 이벤트로 진행한 '비대면 심리상담'에 신청해 주신 내용입니다. 익명으로 공개가 가능하다는 당첨자분들의 동의를 얻어 남겨주신 사연(일부분 요약)과 제가 답글로 보내드린 '마음 처방전'을 공개합니다.
현재 다이어트를 하고 있나요? 어떤 식의 다이어트를 하고 있나요?
요즘에는 아침에 두유 한잔, 점심 닭가슴살 식단, 저녁 계란 야채 이렇게 먹습니다ㅠ
다이어트를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사실 어렸을 때부터 다이어트 강박증이 있었던 것 같아요. 19살에 갑자기 찐 살을 20살 때 다 빼려고 굶기도 해보고 그때는 그냥 날씬해 보이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은데 이렇게 심한 정도는 아니였어요.
본격적으로 식이장애가 온건 2020년 27살 바디프로필을 찍고 난 이후입니다. 3월쯔음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에게 이유 없이 차였어요. 상처를 많이 받았고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졌었는데, 그걸 스스로 높여보고자 7월에 바디프로필 예약을 하고 이별의 아픔을 운동과 식단을 하며 이겨냈어요.
바디프로필을 준비하는 기간 동안 받았던 스트레스는 그 후에 식이장애를 겪으며 받은 스트레스에 비하면 훨씬 견딜만했어요. 스트레스는 받지만 그 날씬한 몸이 주는 만족감이 다 해결해 줬거든요. 원래부터 운동을 좋아하기도 했구요.
근데 제가 힘들고 외로운 걸 잊기 위해 세워뒀던 바디프로필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고 나니까 약간 허무? 하다고 해야하나 상실감이 컸던 것 같아요. 저한테 상처 줬던 사람들은 다 저보다 너무 행복해 보이고 잘 사는데 저만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것 같았고, '진심을 다했을 뿐인데 나한테 왜 그러는 거지? 나는 왜 그런 사람들만 만나는 거지? 내가 그 사람들을 그렇게 만든 걸까?'
낮아질 대로 낮아졌던 자존감은 저한테서 이별의 이유를 찾고 있더라구요.
과식/폭식을 하고 있다면 주로 어떨 때, 일주일에 평균 몇 번 정도로 하나요?
바디프로필을 찍고나서 처음엔 운동강박증이 왔어요. 먹은 만큼 빼야 한다는 생각에 잠도 안 자고 운동을 했어요. 집에 사이클이 있어서 새벽까지 사이클을 탔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별로 찌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항상 몸무게를 쟀고 눈으로 봤을 때 조금이라도 쪄있으면 스트레스를 계속 받았고 먹는 걸로 풀었던 것 같아요.
프로필 준비하면서 미뤘던 약속들도 많았고 살이 점점 쪄가고 몸도 무거워지니 좋아하던 운동도 하기가 싫어지더라구요. 찔 대로 쪄버린 몸을 보니 사람 만나는 것도 피하게 되고, 퇴근 후에 혼자 집에 와서 4~5인분을 먹었어요. 배가 고픈것도 아니고 먹고 싶은 음식이 있던 것도 아닌데 집에 있는 음식을 종류 구분 없이 그냥 다 넣었어요. 없으면 시켜서 먹거나 사와서 먹거나 정말 목구멍까지 차오르다 못해 넘어올 만큼 음식을 먹고 소화 안되니까 더부룩하고 살찔 거 같으니까 자연스럽게 먹은 음식들을 다 토하게 됐어요.
문제적 식사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도해본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결과는 어땠나요?
(다이어트) 식단을 안해서 먹토를 하는 건가? 싶어서 다시 식단을 해봤는데, 아침 점심 다이어트 식단 잘 지키고 나서 저녁에 혼자 집 와서 식단을 하는데 조금 배부르다 싶으면 또 토하고 싶은 욕구가 들더라구요. 그럼 또 다이어트 식단으로 배를 꽉꽉 채운 후에 토를 하고...
음식을 계속 채우는 이유는 토할 때 더 수월하기 때문이었던 거 같아요 토를 너무 많이 해서 조금만 먹으면 잘 안 넘어오고 차라리 음식이 많아야 토할 때 덜 힘들었거든요.
그래서 다이어트 식단이든 일반식이든 먹토를 못 멈추니까 단식을 해봤어요 한 3일 정도 단식을 하니 먹토는 안 했는데 4일째에 빠질 수 없는 회식자리가 있어서 음식을 조금만 먹자 해서 조금만 먹었는데 또 그냥 음식을 먹었다는 생각에 토하고 싶어져서 집에 가서 토하고.. 먹토를 안 하면 불면증 때문에 항상 3시 4시 사이에 잠들었고, 그게 아니면 먹고 토하고 지쳐서 일찍 잠들었어요.
식이장애를 겪었던 저자에게 궁금한 점이나 상담을 통해 꼭 알고 싶은 것이 있다면 말해주세요.
아직도 살찔 거 같은 음식을 먹으면 토하고 싶은 마음이 계속 생기는데 그럴 때마다 엄마가 속상해하실 거 생각하며 꾹꾹 참고 지냅니다. 책에서든 어디서든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선 자신을 사랑하라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항상 저보다 남이 어떻게 생각할지, 내가 이렇게 하면 남이 불편하진 않을지, 상처받진 않을지 먼저 생각하며 살아와서 제 마음의 소리가 들리지 않아요 뭘 좋아하는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처음엔 제 마음이 안정적이지 않고 건강하지 않으니까 연애를 미뤘는데 이제는 전에 만나던 사람들한테 받은 상처들 때문에 다가오는 사람들한테 마음을 열기가 너무 무섭고 두려워요. 먹토를 참는 것도 언젠가 다시 터질 것 같고, 몸도 마음도 빨리 건강해졌으면 좋겠는데 마음대로 잘 안돼요ㅠㅠ
제가 다이어트를 다시 해야 하는 게 맞는 건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다시 바디프로필 준비하던 때로 돌아가고 싶어요 먹고 싶은 거 못 먹어도 바디프로필 찍고 나서도 그냥 그 몸 계속 유지하며 지내고 싶어요ㅠ
윤아쌤의 답변:
안녕하세요 사연 길게 써주느라 고생 많았어요. 반갑습니다 :) 심리상담을 받아본 적은 없다고 하니 정말 상담을 받는 것처럼 글을 써보도록 할게요. 글을 쭈욱 읽으면서 반가웠던 점은 C님이 문제의 원인이나 스스로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본 게 느껴졌다는 거예요. 변화하려는 용기와 마음이 충분히 전달됐답니다. 이제, 방향만 잘 잡으면 꼭 바뀔 수 있을 거예요!
C님도 알겠지만, 바디 프로필을 다시 준비하고 아니고는 문제의 핵심이 아니랍니다. ‘힘들고 외로운 걸 잊기 위해’ 이별의 아픔을 ‘식단과 운동, 날씬한 몸이 주는 만족감’으로 채웠을 뿐이죠. 다시 바디 프로필을 찍는다고 해도 목표가 달성되는 그날까지는 이런 감정들을 잊을 수 있겠지만, 오히려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그동안 미뤄두었던 상실감과 허망함이 막아놓았던 댐이 터지는 것처럼 와르르 쏟아지겠죠. 그러니, 이제는 우리 회피하지 말고 마주해보아요. 잠깐은 피할 수 있겠지만, 언젠가는 터질 문제였으니까요.
그러나 우선 마음을 되돌아보기 전에, 증상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들은 재정비하고 갈 필요가 있어요. 식사량이 너무 적어 자꾸만 폭식이 터지고, 폭식하고 나면 게워내고 싶고, 연이은 폭토로 지치다 보면 내 마음을 돌아볼 여유는 나지 않는답니다. 증상에만 초점이 맞춰지기 쉽죠. 이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꼭 식사량을 지금보다 훨씬 늘려주어야 해요. 그리고, 꼭 먹고 싶은 음식은 참지 말고 먹어주고요. 우리의 몸은 너무나도 정직하기에 참으면 더 먹고 싶답니다. 그리고, 처음의 다이어트는 쉬었을지 몰라도, 계속해서 식사량을 줄이기를 반복하다 보면 기초대사량도 줄어들고 우리 몸도 지방을 더 축적하려고 해서 점점 살을 빼기는 어려워진답니다. 계속되는 다이어트가 우리에게 좌절감과 죄책감만 선사해주는 이유죠. 절대, 절대 ‘다이어트 방법이 잘못되었나 보다. 다른 거로 시도해보자. 왜 나는 의지가 이렇게 약하지.’라고 생각하지 말아 주셔요!
그래도 ‘엄마가 속상해하실 거 생각하며 토하고 싶은 건 참고 지낸다’고 하니 다행이고, 엄마뿐 아니라 C님 자신의 몸을 위해서라도 꼭 규칙적인 식사를 해주세요. 폭식증에서 벗어나기 위한 규칙적인 식사를 ‘정상식’이라고 편의상 부르고 있는데, 이 글에서 정상식을 모두 설명해드리긴 어려우니 자세한 내용은 이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이렇게 식사가 좀 잡혔다면, 이제 C님의 마음을 좀 돌아볼 차례에요. 글을 읽으면서 가장 속상했던 말이 이거였어요. “낮아질 대로 낮아졌던 자존감은, 저한테서 이별의 이유를 찾고 있더라구요.”
C님도 왜 내가 이렇게 살을 빼는 것에 집착하고 있는지 어렴풋이 알고 있는 거겠죠..?
저는 C님이 차라리 이별의 이유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헤어지자고 한 연인에게 (직접적으로는 못하더라도) 화를 내고, 속상해하고, 욕하고 주변 사람들한테는 공감받고 지지받고 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화를 낼 대상이 없다 보니 자신에게 화를 내는 것처럼 보여서 안타까워요.. ‘내가 무언가를 더 했더라면 얘가 나에게 헤어지자고 안 하지 않았을까?’ 이런 마음으로 자신을 더 몰아붙이고 있는 거죠. 글쎄요. 이런 생각은 마치 스스로가 모든 상황과 마음을 통제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게 아닐까요? C님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C님이 어떤 모습이든지 간에 관계를 저버리지 않았을 거예요. 그러니 부디 C님에게 원인을 찾으며 자책하지 말아 주세요!
정말 오지랖 조금 보태서 언니처럼 말해보자면, 그런 시키 때문에 C님 자신을 탓하고, 자책하지 말라고 해주고 싶네요. 바디 프로필도 당장 그만두라고 하고 싶고요.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고,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는 마음은 너무나도 이해가 되지만… 많이 속상하고 안타까워요. 우리 그냥, 화를 냅시다!
마지막으로, C님이 어떤 모습이어도 버텨줄 상대가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C님이 더는 스스로를 검열하고, 탓하고, 상대방에게 맞추려고는 안 하지 않을까요? 그게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이라면 방법일 거예요. C님에게 부디 그런 상대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가족이든, 친구든, 상담자이든 간에요.
예전에 제 모습과 겹쳐 보여서 감정이 많이 담겨버렸네요;; 이 글에서 어떤 내용보다, 저의 속상한 마음이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