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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아 Feb 27. 2022

사실, 나는 다 알고 있었어.

오랜만에 끄적이는 상담자의 글

Photo by Jennifer Harris on Unsplash

아주 어렸을 적 또렷이 생각나는 기억 하나가 있다. 나는 항상 욕심이 많은 편이었고, 누군가는 하나만 원할 때 나는 두세 가지를 원하곤 했었다. 초등학교 (정확히 몇 학년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나는 어렸다) 담임 선생님은 발표를 하거나, 칭찬할 일이 있으면 교탁 앞으로 나오게 해서 사탕을 하나씩 가져가라고 사탕이 담긴 통을 내밀곤 하셨다. 나는 당연히 선생님이 모를 거라고 생각하며 종종 하나보다 더 많은 사탕을 집어가곤 했다. 



그렇게 약간은 불안했지만, 별다른 의식은 하지 않던 어느 날,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나는 발표를 하고 사탕 통에서 사탕을 두어 개 꺼내가고 있었다. 그때 선생님이 나를 조용히 부르시고는 귓속말을 하려는 듯한 손을 입 가까이에 붙이셨다. 그리곤 지금 생각해 보면 꽤나 다정한 어투로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 "윤아야. 선생님은 윤아가 사탕을 몇 개씩 더 가져가는 거 알고 있어. 다음부터는 사탕 먹고 싶으면 쌤한테 얘기해 줘." 



어린 나이에도 나는 벙쪘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로 사탕은 꼭 하나씩만 가져갔다. 무섭거나, 혼났다는 느낌보다는 오히려 누군가가 나를 챙겨주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서 사탕을 더 많이 먹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이 그때의 나이의 두 배 이상은 훌쩍 뛰어넘은 그런 날에, 나는 그 선생님과의 기억이 다시 떠오르는 사건을 마주했다. 상담 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나는 방문하는 사람들 혹은 내가 먹기 위해 센터에 간식을 구비해 두곤 한다. 누군가 내가 사놓은 간식을 먹을 때면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도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과자나 핫초코가 너무 한꺼번에 사라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상담하고 있는 청소년이 몇 명 있는데, 꼭 한 친구가 다녀가고 나면 과자를 담아놓은 상자가 텅 비어버리는 거였다. 의심하기는 싫었지만, 확인은 해야 했기에 cctv를 돌려봤다. 거기에는 간식을 쓸어가듯 담아서 가방에 넣어가는 친구가 있었다.



나는 이 친구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마음이 너무 심란했다. 식이장애 상담을 하는 나는, 다이어트 때문에 식욕이 고장 나버린, 그래서 식탐이 통제할 수없이 불어나버린 사람들을 많이 마주하곤 한다. 나 역시도 식이장애를 겪는 동안 먹지도 않을 거면서 온갖 과자나 먹을 것만 보이면 집어와서 나만 볼 수 있는 어딘가에 쌓아놓곤 했었다. 그리고, 언젠가 걷잡을 수 없이 식욕이 터질 때면 그게 뭔지도 모른 채로 입안에 우겨넣었다.



나의 경험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여전히 이 친구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고민이 된다. 그냥 묵묵히 묻고 넘어가자니, 나도 혼자 고민에 갇혀서 힘들고 외로웠던 기억이 있기에...





이렇게 글을 쓰다가 깨달았다. 내가 고민하는 건 사실 그 친구를 위한 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걸. 나는 용기 내기가 무서웠고, 이 친구가 나를 다시는 보러 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사실이 두려웠다는 것을. 이 순간에도 그 아이는 혼자 생각에 갇혀서 음식과 투쟁하느라 외로울 수도 있겠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이번 주에 말하고야 말았다. 사실 네가 과자를 잔뜩 집어가는 걸 봤다고. 너가 잘못했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고, 이해가 된다고 얘기해 주고 싶었다고. 네가 원하는 게 있다면 나한테 꼭 직접 얘기해 줬으면 좋겠다고. 그러면서 눈물이 왈칵 나왔는데 아직도 그 감정이 무엇이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역시나 그 친구는 내 예상대로 묵묵히 듣고는 별말을 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은 없어?"라는 질문에도 그저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나는 이 친구와 매주 한 번은 같이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것으로 상담을 대신하곤 한다. 우린 아마 다음 주에도 별일 없었다는 듯 다시 상담실에 앉아 같이 영화를 보고 있지 않을까? 그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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