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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아 May 29. 2022

상담만 받으면 모든 게 좋아질 줄 알았다고요?

상담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분들에게 전하는 글

요즘 저는 수면시간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잠을 청하려 누워도 1,2시간씩 잠이 들지 않아 책도 읽어보고 수능 비문학 문제집도 사서 풀어보고 유투브에 나오는 수면 영상도 틀어보고 별 쑈를 다 해봤지만,. 이렇게는 안되겠다 싶어 정신건강의학과에 방문했습니다.


이 정도면 수면유도제(약국에서 파는)가 아니라 수면제를 처방받아야 한다는 의사쌤에 말에 따라 1달 전부터 순순히 수면제를 처방받아서 매일 밤마다 먹기 시작했답니다. 그런데, 수면제를 먹으니 밤에 잠은 잘 오는데 또 금방 깨더군요. (이걸 수면 유지시간이라고 부르던데.. 대학원 때 아무리 열심히 공부했어도 뭔 말인지 잘 와닿지 않았는데 막상 경험해 보니 뭔지 알게 되었죠) 그래서 지금은 자고 나서 4시간 반이면 깨고, 어떤 날은 7시간 푹 자고 일어나기도 하고 한답니다.


덕분에 아침 시간이 매우 많이 늘어났지 뭐예요. 저는 이렇게 아침 시간을 길게? 알차게? 살아본 적이 성인 되고 나서는 없었던 거 같은데.. 오히려 시간이 많이 주어지니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가 되어버렸답니다ㅇ.ㅇ. 그래서 헬스장에 가서 런닝을 자주 하게 되어서 요새만큼 신체적으로 건강해 본 적이 또 없네요ㅎㅎ. 아무튼 저는 이렇게 잠과의 투쟁을 벌이고 있답니다.


제가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혹시나 상담을 받고 나서 여러분들이 모든 문제가 짜-잔하고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으며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답니다'라는 환상을 가지고 계실까 봐서요. 저도 그럴 줄 알았지 뭐예요?! 식이장애만 없어지면 인생에서 모든 고통이 없어질 줄 알았죠.



요즘은 '나는 원래 이렇게 타고 태어나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답니다. 새로운 자극만 주어지면 무조건 반응해야 하고, 그게 일이든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일단 고! 해버리는 사람. 어떻게 하면 안 참을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게 더 힘들 정도로 그냥 냅다 참고 견디는 게 익숙한 사람. 혼자 참고 참다가 몸이 아플 지경이 되어야 확 하고 터져버리는 사람.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나 혼자 불안하고 긴장돼서 자꾸 확인하고, 미리 걱정하는 사람.


제가 혹시 너무 침착해 보이고, 차분해 보였나요? 그것 역시 사람들의 눈치를 많이 보고, 참는 게 너무 익숙한 제 모습 때문이랍니다 :)


상담을 하다 보면 오히려 이렇게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꾹꾹 눌러왔던 자신의 모습이 발현되면서 오히려 더 힘들어지는 경우도 있답니다. "저는 분명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거 같은데, 상담을 받고 나니 오히려 더 힘들어진 것 같아요." "관심받고 싶어 하고, 꾸미는 걸 좋아하고, 모든 것에 불안해하는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나니 주변 사람들이 너무 당황스러워하던데요..?"


사실, 상담은 여기서부터 시작이랍니다. 제가 상담을 하고 받으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제1원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하는 것'이랍니다. 그래서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를 말릴 때에는 무조건 그만하고, 고집부리지 않는다'라는 원칙이 있어요. 이건 물론, 개개인마다 내용은 달라져야 할 거예요. 저 같은 경우는 가만히 냅둬도 뭘 하려고 하고, 누가 말리지 않으면 끝장을 보고, 죽기 직전까지 참으려고 하니까요. 누군가의 경우는 '내가 사회적인 스킬이 없다는 걸 받아들이고 그래도 상담자나 같이 집단상담을 하는 집단원들이 하라는 대로 해본다'가 제1원칙이 될 거고, 누군가의 경우는 '모든 것에 불안하더라도 계속 사람들에게 얘기하고, 사람들이 괜찮다고 하면 믿어보려고 한다.' 이런 선택지가 있을 수 있겠지요.


제가 여태껏 상담을 해오면서 얻은 교훈이 있다면, 사람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비관적인 말로 들릴 수 있겠지만, 사실이에요 :) 제가 이걸 받아들이지 못했다면, 벌써 상담은 그만뒀을 거예요..^^


그래서, 저는 이런 제 모습을 드러낸 채로 여러분과 함께 있을 뿐이랍니다. 여러분도 혹시나 상담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면, 조금은 접어두시고, 생긴 대로 그러나 함께 살아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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