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닥 Sep 15. 2020

의사에게 '촌지'를 주어야
진료를 잘 받을 수 있을까?

#김영란법 #촌지 #마음의 선물

올해로 팔순이 넘으신 장모님께서 정형외과 진료를 보러 오시는 날입니다. 장모님께서는 같은 병원에 근무하는 저에게 전화를 하셔서는, "우리 OOO 교수님, 술 잘 하시나?"하고 물어보십니다. "어머니, 그런 거 안 사 오셔도 진료 잘 봐 주실 거예요~"라고 아무리 말씀드려도 장모님께서는 요지부동이십니다. 그리고 며칠 뒤, 연구실 복도에서 그 교수님을 만났습니다. "김 교수, 장모님께 감사하다고 전해 드려요. 마음만 감사히 받을게~" 결국 장모님께서 주신 그 술은, 사위가 먹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 진료를 보시다 보면, 아마도 진료를 보아준 의사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으실 때가 가끔 있으실 것입니다. 다른 병원을 전전하며 낫지 않던 병이 여기 왔더니 신기하게도 확 좋아졌다든지, 수술을 받고 경과가 너무 좋아서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으시다든지... 물론 저희는 늘 하는 '일'로서 진료를 하고 수술을 합니다만, 그 진료와 수술을 받으신 분들이 만족감이 높으신 것은 저희에게도 감사한 일이지요.


그리고 특히 연세가 많으신 분들께서, '이렇게 진료를 잘해 주었으니 뭔가 마음이라도 표현을 해야겠다', 혹은 '뭐라도 갖다 드려야 좀 더 진료를 잘 봐주시지나 않을까'라고 생각하시면서 '촌지'를 생각하시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난처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결론부터 먼저 말씀드리자면, S대병원 같은 국공립대 병원은 물론, 저희 병원과 같은 사립대학 부속병원도 모두 흔히 '김영란법'이라고 부르는 청탁 금지법의 적용대상이 됩니다. 따라서 직무와 관련하여서는 대가성 여부를 불문하고 금품을 받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다만 '원활한 직무수행 또는 사교·의례·부조의 목적으로 제공되는 음식물·경조사비·선물은 가액 범위 내에서 수수 가능'하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법적인 측면을 떠나서, 의사인 제 입장에서 기억에 많이 남는 선물은 결코 가격이 비싸거나 고급스러운 물건이 아닙니다. 뻔한 이야기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오히려 주시는 환자 분의 마음이 담겨 있는 선물이 기억에 더 오래오래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 기억에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는, 몇 가지 사례를 들어 보겠습니다. 




60대 여성 환자분의 부비동염(축농증)에 대하여, 부비동 내시경 수술을 해 드렸습니다. 환자분은 수술 후 경과가 좋아서 다음 날 퇴원을 앞두고 계신 상태였습니다. 전공의들과 함께 회진을 가서 수술 후 주의사항에 대한 설명을 해 드리고 있는데, 갑자기 환자분께서 수세미 하나를 저에게 내미셨습니다.


"이거... 제가 직접 만든 건데 집에 가서 쓰세요."


난생처음 받아 보는 선물이기도 하고 환자분의 마음이 너무 감사해서, 저도 모르게 크게 웃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환자분께서는 약간 민망해하시면서, "너무 약소하지요~"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어머님. 이거 너무 마음에 들어요."라고 말씀드리면서 다시 한번 미소를 짓고, 그 수세미를 소중히 집에 들고 와서 오랫동안 설거지를 잘하였습니다. 아직도 수세미의 모양이 기억이 많이 남네요.


  이런 모양의 수세미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사진이라도 찍어놓을 것을 후회가 되네요.




역시나 70이 가까운 여성 환자분이셨습니다. 코 안에 진균(곰팡이균) 감염이 있어서 역시 내시경 수술로 깨끗하게 제거해 드렸습니다. 수술해 드릴 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환자분이 병원 근방에서 큰 고깃집을 운영하시는 사장님이셨습니다. 퇴원하시고 나서 외래 진료를 보러 오신 날, 환자분께서는 커다란 비닐봉지에 든 플라스틱 용기를 내밀며 말씀하셨습니다.


"늦게 퇴근해서 저녁 드시기도 힘드실 텐데 갈비탕 가져가서 집에서 끓여 먹어요~"


그날 마침 온 가족이 일도 늦게 끝나고, 학원도 늦게 끝나 저녁을 먹기가 애매했던 터에 사장님이 챙겨 주신 갈비탕은 큰 환영을 받았습니다. 사장님의 호의에 답할 겸 마침 예정되어 있던 모임의 회식을 그 사장님이 계신 고깃집에서 하였고, 사장님께서는 인심 좋게 맛 좋은 고기를 챙겨 주셨습니다. 요즘도 이따금씩 코가 불편하시면 찾아오시는데, 이제 많이 먹었으니 그만 가져오시라고 웃으며 말씀드리곤 합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자면, 진료를 보러 오시면서 선물 같은 것은 가져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봉투에 들어 있는 '촌지' 같은 것은 당연히 절대 안 되고, 선물의 경우에도 너무 비싼 것이라면 저희가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주시는 분의 감사를 느낄 수 있는 '정말 작은' 마음의 선물이라면, 오히려 저희가 더 따뜻한 마음을 느끼고, 그날 하루 피로를 잊고 보람차게 진료할 수 있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코질환 돋보기(5)] 아이가 코를 아빠처럼 골아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