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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돌 Nov 25. 2020

언택트

담뱃갑을 열자 단내가 훅 끼쳤다. 술을 마신 다음 담배를 피우면 유독 빨리 취하는 것 같지만, 그런 건 중요치 않다. 중요한 건 내가 이들과 섞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누구 한 명이 담배를 꺼내 입에 물면 서로 불도 붙여주고 그런단 거다. 진즉 담배 한 대를 다 피운 일행들은 나를 좀 기다리는 듯 하더니 덥다며 술집으로 들어갔다. 며칠 만에 여름이 찾아온 건지, 가게 입구에 노가리 따위를 굽는 석쇠 탓인지, 과연 날은 더웠다. 아직 태울 담배가 남은 나는 석쇠 열기를 피해 가게를 등지고 쪼그려 앉았다. 건너편 건물 전광판이 눈에 들어왔다. 붉고 노랗고 푸른빛이 요란하게 켜졌다 꺼졌다. 물결인가, 바람인가. 한참을 보다가 쉼 없이 찰랑대는 그게, 춤추는 여자 실루엣이라는 걸 알았다. 담배를 비벼 껐다.


이 회사 다닐 때부터니까, 담배를 배운 지 3년 정도 됐다. 술, 담배 강요하는 그런 회사가 아직도 있냐고? 건설회사가 보수적이라고들 하지만 그 정돈 아니다. 가끔 부장은 “나 때는”으로 시작하는 일장연설을 늘어놓다가도 늘 강요 직전 어딘가에서 그만두곤 했다. 보고 들은 일이 많아서인지 눈치 없는 부장조차 입조심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담배를 배운 건 선택이라면 선택이었다. 이전 직장에서 나는 ‘담타’ 때마다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근무시간엔 사무실을, 회식 땐 일행의 짐을 지켰다. 처음엔 그뿐인 줄 알았다. 그런데 매캐한 냄새를 풍기며 들어온 이들은 전보다 더 친해보였다. 중요한 정보는 회의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오고간다는 걸 한참 후에나 알게 됐다. 동기들은 이미 나보다 앞서나간 상태였다. 지금 회사로 이직할 때 가장 먼저 담배를 배운 이유다. 비슷한 일을 먼저 겪은 친구는 내게 요거트 맛이 나는 담배를 추천해줬다.


택시를 잡으려다 속이 좋지 않아 좀 걷기로 했다. 마스크 속에서 담배 냄새와 안주 냄새가 섞여 숨쉬기가 곤혹스러웠다. 나는 잠깐이라도 마스크를 벗기 위해 인적 드문 골목을 찾았다. 한 십분 쯤 지났을까.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한 건물 지하에서 사람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부장부터 신입 민호 씨까지. 술집 앞에서 헤어졌던 사람들이 모두 거기 있었다. 늘 오던 덴데 왜 오늘은 문을 닫은 거냐고, 부장은 술이 거나하게 취해 고함쳤다. 차장은 그의 겨드랑이에 어깨를 끼우며 코로나 때문인가 보다고 달랬다. 동기 한 명이 나를 보고 당황한 듯하더니 이내 입을 뗐다.


수연 씨가 불편할까봐 배려한 거예요.


그들의 머리 위로 '비즈니스 클럽'이라는 글자가 여자 실루엣과 함께 번쩍였다. 내가 사무실에서 업무를 볼 때, 비즈니스는 흡연실에서 도모됐다. 흡연실로 어렵사리 나오자 이제는 또다른 곳에서 '비즈니스'가 행해지고 있었다. 그곳은 내가 절대로 닿을 수 없는 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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