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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S ELECTRIC May 07. 2024

글로벌 비즈니스 실전 외국어

회의, 입찰, 수출, 프레젠테이션


갓 입사하여 어느 먼 나라의 고객을 만나러 갔을 때다. 소개 인사를 나누자마자, 고객은 특유의 억양을 섞어가며, 지역 명이 포함된 프로젝트들을 설명하고, 시스템 기술 요구사항을 이야기하였다. 학교에서 또 취업 준비로 열심히 외국어 공부를 했으니 어떤 고객의 말이든,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예상과 달리, 무슨 말인지 당최 못 알아들었다. 


고객은 어느 나라 말로 이야기하는 걸까? 외국어를 전공한 나는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 이해한 척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못 알아들었다.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입력된 것이 없고, 당황하기까지 하니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었다. 출력할 것이 없었다. 이때 같이 출장 온 상사의 한마디.


“앨리스 매니저, 오늘 회의 내용 요약해서 메일 보내요.” 



출장에서 돌아온 뒤, 시장분석자료와 RFP(Request for Proposal 고객사양)를 원어로 읽기 시작하였다. 여기저기에 물어가면서. 기술 용어와 약어를 찾아가면서. 프로젝트 사이트의 고유명사를 익혀가면서. 원래 알았던 단어가 완전히 다른 뜻으로 해석되는 것을 경험하면서. 


어느 입찰에서 영업사원이 가장 잘 알아들어야 하는 것은 숫자라는 생각을 했다. 고객은 제안서를 제출한 회사 순서대로 입찰 주요 서류 : 입찰보증, 위임장 제출 여부를 확인하고, 입찰 금액을 큰 목소리로 읽었다. A사 **, B사 **, C사 **. 정신없이 경쟁사 회사명과 숫자를 받아 적고 있을 때, 맞은편에 앉은 경쟁사 담당자들이 우리를 보고 미소 지었다. 


“Congratulations” 


어느 날 사수는 은행과 네고하는데, 나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협상같이 중요한 일을 신입사원에 시킨다는 건가. 가만히 들어보니 LC (Letter of Credit 신용장) 네고. 사수에 따르자면 네고는, 선적서류를 준비하여 은행에 제출하는 것이다. 


다시 새로운 용어들과, 수많은 약어가 등장했다. 수출 업무와 관련된 담당자들은 약어로 서류를 지칭했다. CI(Commercial Invoice 상업송장), PL(Packing List 포장명세서), BL(Bill of Lading 선하증권), IP(Insurance Policy 적하보험증권), CO(Certificate of Origin 원산지증명서), SN(Shipping Notice 선적통지) 등등.


LC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견적 업무가 늘어나니 Incoterms(인코텀스)*가 눈에 들어왔다. FOB, CFR, CIF, DDP... 이는 단순한 의미에서 외국어가 아니다. 무역 거래의 조건과 준비할 선적서류, 책임과 비용의 분기점 등의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다. 단 며칠 만에 Incoterms를 깨칠 수 없다, 그 의미를 몇 번이고 보고 또 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무역 영어책을 사서, 맨 앞장에 썼다. 


“一日不讀Incoterms 口中生荊棘” 

(하루라도 Incoterms를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 Incoterms(인코텀스) : 국제상업회의소가 주관하여 작성. 무역거래에서 가장 바탕이 되는 무역조건에 관한 국제규칙. 



이제는 해외고객과의 미팅이 익숙하다.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 외국어로 발표할 때, 긴장감은 어쩔 수 없다. 대본을 쓰고, 소리 내어 읽고, 최대한 자연스러운 톤으로 녹음한다. 발표하는 순간까지 녹음을 반복해서 듣고 혼잣말로 중얼중얼 연습한다. 고객과 상담이 잘 되어 기분 좋게 미팅을 마친다. 


하지만 같은 노력이 다른 결과를 불러오는 날이 있다. 준비한 내용을 마치기도 전에, 난감한 질문을 받는다. 시간 관계상 빨리 마치라고 한다. 나는 열정을 다해 이야기하는데, 고객은 반응이 없다, 관심이 다른 곳에 가 있는 것 같다. 실수가 없어야지, 계약까지 성사되었으면 좋겠지. 생각이 많을수록 단어 선택이 어렵고, 말이 길어지고, 마무리가 되지 않는다. 생각처럼 풀리지 않은 날, 그날 일을 떠올리며 몇 번이나 이불 킥을 한다. 그리고 다짐한다.


“앞으로는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해보자.” 



글로벌 비즈니스 현장에서 무엇을 알아듣고, 무엇을 말해야 하나. 당신은 통번역과 다른 일을 하고 있다. 

당신은 외국어로 사업과 고객을 이해하고 다가간다. 당신의 외국어는 계약과 기술에 관련된 표준, 규칙을 따른다. 당신의 외국어는 잠 못 이룬 밤들과 끊임없이 설득한 날들을 기억한다. 당신의 외국어는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주어진 결과이다. 

당신의 외국어는 가치 있는 솔루션의 제공, 그 목표를 따라 움직인다. 해외영업사원인 당신에게 외국어는 당신의 커리어, 그리고 꿈을 향한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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