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anksgiving Day
작년부터 미국이 뜨면서 생긴 들썩거림에 LS일렉트릭도 발맞추어 움직였고 나 역시도 그 트렌드에 맞추어 미국 생산기지를 차리기 위해 이곳 텍사스로 왔다. 애초에 미국으로 오면서 정답 같은 건 없었다. 그냥 10년 넘게 LS 일렉트릭의 공장에서 근무하며 쌓여진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걸음씩 전진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텍사스에 온 지도 이제 8개월이 되어 간다. 아직 한해를 넘기진 못했지만 타지 주재원 생활을 하며 많은 감사함을 느끼게 해준 사람들이 많이 있다. 미국의 추수감사절인 땡쓰기빙데이를 맞이하여 내가 움직일 수 있게 해준 이분들에게 감사 편지를 적어보고자 한다.
미국에서 공장을 차리기 위해 처음부터 가장 필요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바로 지게차를 운전해 줄 사람이었다. 끊임없이 들어오는 제품, 부품, 생산 설비들을 끊임없이 받기 위해서는 지게차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지게차를 운전하려면 이곳 텍사스 법에 맞추어서 지게차를 관리하고 트레이닝 시켜줄 수 있는 인원을 육성했다. OSHA라고 불리는 미국의 산업안전보건공단 같은 곳의 컨설팅을 받고 지게차 인원의 운전을 허가받아야 비로소 미국 공장에서 지게차 운전이 가능해진다. 나의 배스트럽 동료이자 제조팀장인 Joshua를 영입하여 쏟아지는 물건들을 마구마구 받게 되니 마음이 한시름 놓인다. 이 친구를 영입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물건이 들어올 때마다 독(Dock)으로 가거나 지게차 운전사를 별도로 고용해서 본연의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 것이다. 온전히 나의 일에 집중해도 알아서 물건을 받아주고 관리해 주는 이 친구에게 고맙다.
물건을 받는 게 끝나고 나서 필요했던 것은 바로 품질이었다. 품질을 관리해 주기 위해서는 적절한 작업자 트레이닝이 필요했으며 작업자들의 트레이닝을 위해 계속해서 한국 엔지니어들을 초빙해 특강을 벌였다. 비단 작업자뿐만이 아니고 나 또한 이 트레이닝은 계속해서 받았다. 단순 지식을 넣는 것보다는 실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제품 앞에서 직접 대면 업무를 할 때 비로소 이 제품은 나에게 더욱더 가까워진다. 이런 실습들이 더해져서 이제는 작업자들의 제품 조립이 더 수월해지는 것 같다.
배스트럽은 오스틴에서 보통 40~50분 차로 소요된다. 거기에다가 오스틴에서 한국은 직항이 없어서 천상 경유를 해서 도착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 이동에만 거의 하루를 쏟아부어야 올 수 있는 이런 곳으로 직접 와서 작업자들을 훈련해 주는 이 훌륭한 분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보내고 싶다. 이런 교육들이 토대가 되어 내가 이끄는 이 사업장에 인재들이 가득 차 주길 바란다.
현재의 Bastrop 사업장은 계속해서 영입되는 직원들의 숫자를 커버하기 위해 확장 공사를 진행하는 중이다. 사업장 관리를 하는 주인으로서 직원들에게 더욱더 좋은 근무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었는데 점점 커져서 내년에 확장공사가 완료될 이곳을 보고 있으니 그저 꿈이 부풀어 오른다. 이곳이 더 넓어진 만큼 공장장인 나도 보다 폭넓은 시야가 요구될 것이다. 공장 초기 구축으로 급급하여 순간순간의 업무에 초점이 맞춰졌던 것이 24년이었다면, 25년은 보다 넓고 깊은 생각으로 안정적인 사업장 운영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미국 텍사스 주재원으로서 가장 감사를 표현하고 싶은 대상은 나 하나만을 믿고 여기까지 따라와 준 아내와 딸이다. 내가 텍사스 주재원을 결정하는데 가족은 나의 꿈과 도전을 지지해 주기 위해 만 하루도 안 되어서 흔쾌히 동의를 해주었다. 가족이 없다면 미국에서 이런 나의 도전도 그 빛을 잃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가장 바빠도 가족을 항상 챙겨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퇴근길이 멀어도 운전이 고되지 않았던 것, 아무리 야근해도 집에서 더 기운이 났었던 것, 편도 10시간 넘는 곳까지 로드 트립을 해도 항상 즐거웠던 것이 바로 가족이었다.
기존 주재원 선배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힘든 타지 생활에서 유일하게 남길 수 있는 것이 바로 가족과 여행이라고 한다. 그 말을 토대로 내 가족에게 조금이나마 보답하고자 주말, 휴일에는 웬만해선 가족 여행을 떠나곤 한다. 이번 여행지는 한반도의 3배 크기인 드넓은 텍사스에서 별을 가장 잘 볼 수 있다는 빅 벤드 국립공원이다.
역시나 별 관측의 명소답게 하늘이 뚫린 것처럼 쏟아질 듯한 별이 가히 압권이다. 수많은 별 중에 큰 별도 있고 작은 별도 있으며, 화려하게 빛나는 별도 보이고 희미한 별도 보인다. 큰 별과 환한 별만 덩그러니 있다면 그 모습은 지금과 같은 장관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작은 별도 있고 희미한 별도 있어서 이 모든 광경이 어우러져야만 지금과 같은 마스터피스가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별이 화려하든 희미하든, 더 크기가 크든 작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지구에서 보이는 시선과 상관없이 각자 자기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해주며 중요한 순간에 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그 별은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 아닐까?
나 역시도 이 하늘 위의 별처럼 빛나고 싶다. 지금은 한국에서 떨어져 이곳 텍사스라는 곳에서 일하고 있지만 내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해주는 게 이 별들과 비슷해 보인다. 한국의 반대편 텍사스에서 누군가 가 나를 봐주지 않는다고 해도 저 별들처럼 정해진 일을 착실히 수행하다 보면 누군가가 또 나를 봐주기 위해 이곳까지 와주지 않을까 싶다. 내가, 이 별을 보기 위해 빅벤드 국립공원을 찾았듯이 말이다. 이렇게 나의 텍사스 생활을 안팎으로 도와준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미국이라는 밤하늘 캔버스를 멋지게 빛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