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을에는 만석꾼 천석꾼 같은 큰 부자가 있었고 마을에는 문전에 논 밭뙈기 여러 마지기를 가진 삼시세끼 배곯지 않은 밥상 부자가 있었다
이나저나 먹고사는데 몸에 붙어 다니는 고생의 크기가 빈부의 척도였다
그런데 지리산 사람들은 가난을 몸에 달고 살지 않았다
살림살이가 어찌 되었건 간에 지리산이 사시사철 내어준 산물이 풍요로웠으니 그렇다
산나물, 버섯, 열매, 약초, 꿀, 감 같은 산물이 그랬고 산골짝 각시 배미 논밭 다랑지에서 한 줌의 식량이라도 해 거르지 않고 얻어냈으니 그렇다
그런데 빈부가 생겨난 것이 하나 있었다
집이었다 대궐 같은 좋은 기와집과 초가삼간의 집이 가지는 빈부가 아니라 집이 위치한 환경의 빈부가 생겨난 것이다
지리산에 살던 사람들의 부자와 가난한 자의 기준은 소유물의 많고 적음이 아니었다는 구전 조사 때 만났던 할머니의 이야기는 이랬다
자기가 사는 집 주변의 생명체들이 30개 이상이면 부자요, 8개 이하이면 가난하다는 것이 지리산 사람들의 부의 척도였다고 한다
즉 자기 집 주위에 소. 개. 돼지 같은 짐승을 비롯하여 감나무. 꽃. 채소. 거미. 곤충... 같은 것들을 합하여 30개 이상이 모여 어울려 사는 자연생태적인 삶이 부자의 기준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집 주변에 생명체가 8개 이하면 집안에서 화초도 가꾸고 웅덩이를 파서 고기도 넣고 개구리 같은 것이 와서 살게 한다는 것이다
사람살이가 자연의 선한 조각이어야 한다는 생태적 삶의 철학이 지리산 사람들의 일상에 들었던 것이다
집 마당에 들어온 뱀도 죽이지 않고 돌려보내던 할머니들의 유전자를 상속받은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너도나도 부자가 답 이라며 달려가는 세상에 할머니 같은 가난은 어떤 답 속에 드는 것일지 그 마저 부자 같은 생각 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