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른일까
나는 빨리 30대가 되고 싶었다.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눈을 감았다 뜨면 내가 '짠'하고 서른이 되어 있는 상상. 그날을 손꼽아 기다려 왔다. 어쩌다 보니 지금은 서른 하고도 넷. 서른네 살 먹은 지금의 나를 소개하자면 이렇다. 딸 부잣집 셋째 딸, 결혼 5년 차 딩크 부부, 회사 일 빼고 다 재밌는 회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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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남 4녀 오 남매 중에 셋째로 태어났다. 당시에도 흔치 않은 대식구였지만, 지금은 오 남매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다 깜짝깜짝 놀란다. 예전에는 이렇게 딸 많은 집을 '딸 부잣집'이라 표현했었다. 입사 전 자기소개서 성장과정에 나를 '딸 부잣집 셋째 딸'이라고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한 면접관이 내게 자기 집 부자라고 자랑해 놓은 줄 알았다며 허무하게(?) 웃는 해프닝도 있었다.
아무튼 딸 부잣집의 셋째 딸. 나는 남매 중 키가 제일 작고 몸집도 제일 왜소하다. 바로 아래 넷째 여동생과는 한 살 터울인데 내가 눈에 띄게 더 작으니 둘이 다니면 사람들은 꼭 내가 동생인 줄 착각했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나의 가장 어린 시절, 아마도 유치원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줄곧 맨 앞자리 아니면 열에 한 번 정도 앞에서 두 번째 자리에 앉았다. 나 때는 운동장에서 조회를 한다거나 교실 자리를 배정할 때 꼭 키 순으로 줄을 세웠었다.
초등학교 1, 2학년쯤엔가. 학교에서 놀이공원으로 단체소풍을 간 적이 있었는데 친구들은 하나 둘 통과해 재미나고 스릴 넘치는 놀이기구를 타고 있었는데 나만 혼자 키를 재는 높다란 측정기 앞에서 번번이 가로막혔다. 친구들과 떨어져 홀로 회전목마나 범퍼카 정도만 탈 수 있었던, 어린 시절 나는 그렇게 자그마한 꼬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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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몸집만큼이나 마음도 연약하고 혼자 하지 못하는 일도 많았고 유난히 엄마에게도 많은 의지를 하며 지냈다. 방학이 되면 시골에 계신 할아버지 댁에 동생들과 셋만 맡겨 지곤 했는데(학원에 다니는 언니들을 빼고) 매일 밤 엄마가 보고 싶다고 막내도 아닌 내가 펑펑 울어대는 통에 할머니를 많이 당황케 하기도 했었다. 동생들은 이 일로 아직도 나를 놀려댄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키가 무려 '158cm'나 되는 서른네 살 어른이 되어 있다! 이제는 타지 못하는 놀이기구 따위 없고, 혼자 할 수 없는 일도 거의 없다. 마음이 약해 싫다는 말도 못 하고 끙끙 대던 과거와 달리 누구보다 앞장서서 내 할 말을 속시원히 다 하고 산다. 그리고 엄마와 몇 달을 떨어져 만나지 못해도 나는 더 이상 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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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얼른 30대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연약한 내가 싫어서기도 했고, 조용할 틈이 없었던 집에서 하루라도 빨리 독립하고 싶어서 이기도 했다. 그리고 가장 바란 것이 있다면 인생에 아무런 걱정 고민 없이 안정적인 삶을 살고 싶었던 것 같다. 어느 날은 가족 때문에, 또 어느 날에는 친구 때문에 울었던 어린 시절. 그리고 커서 뭐가 될지도 모르는 불투명하고 성숙하지 않았던 그 시절에는 '30대'란 더 이상 숙제가 남지 않은 마치 다 큰 어른이 되어 보였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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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직장도 있고 결혼도 했고 언뜻 굉장히 안정적인 30대가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날을 고민하고 많은 날을 울기도 한다. 내가 과연 잘하고 있는 걸까?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몸은 훌쩍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때 그 꼬마와 같이 번번이 새로운 장애물에 가로막힌다.
서른넷. 이제 눈을 감았다 떴을 때 '짠'하고 마흔 살이 된 나를 다시 상상해 본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큰 어른이 되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