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드에 대한 생각
* 이 글에 앞서 나는 '시가' 대신 '시댁'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시댁'이란 신랑의 집안을 높여 부르는 유교적 언어이기 때문에 쓰지 말자는 여론도 많지만 내게 '시가'라는 말이 아직 입에 잘 붙지도 않거니와 '시댁'이 그 자체로 언어일 뿐이지 내가 친정보다 높이고자 쓰는 의미는 아니니까. 물론 작은 말 하나부터 천천히 바꿔 나가야 하겠지만 당장에 '시댁'이라는 언어 자체를 불편하게 보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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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시댁에 방문하는 날. 좁다란 주택가 골목 끝 저 멀리에서 우리의 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오면 어머님, 아버님은 어김없이 버선발로 마중 나와 우릴 환하게 맞아 주신다. 먼 거리를 운전해 오느라 고되었으리라 십분 이해하시며 어머님께서는 따뜻하고 맛있는 식사를 준비해 주신다. 내가 이 집안에 들어와 한 식구가 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렇지만 나의 주방이 아닌 곳에 들어가 요리를 돕는 것이 어딘가 낯설고 어색한 건 지금도 여전하다. 때문에 요리를 준비하는 어머님 옆에서 나는 주로 상차림과 설거지를 돕는다.
"잘 먹었습니다! 어머니. 설거지는 제가 할게요."
오느라 고생했으니 놔두라고 몇 번의 손사래를 치며 나를 말리시지만 그래도 꿋꿋이 싱크대 앞을 비집고 들어가 고무장갑을 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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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친정에 갔을 때의 일이다. 우리 엄마 역시 사위가 왔다고 상다리가 부러져라 진수성찬을 내어 주셨다. 맛있게 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정리하는 엄마를 도와 나도 남편도 접시를 하나씩 정리하고 있었는데 이때 남편이 잡아든 접시를 말리며 아빠가 말했다.
"자네는 놔두게. 그건 여자들이 하라고 하고."
내가 세상에서 제일 제일 싫어하는 말이다. 아빠는 딸을 넷이나 낳고도 마인드는 여직 조선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이다(시대가 바뀌었다고 몇 번을 설명해도 뼛속 깊은 곳에 자리한 유교사상은 쉬이 바뀌지 않는다.). 아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는 쏘아붙였다.
"아빠는 이런 일 시키려고 딸들을 그렇게 많이 낳았어? 어? 아빠 딸만 시댁 가서 일하고 살면 좋겠냐고!"
나와 아빠 사이에 오가는 언쟁 속에 남편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진땀을 빼다 결국 그릇을 들고 나와 함께 부엌으로 향했다. 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씩씩거리는 나의 등을 토닥토닥 쓰다듬는 남편. 남편은 죄가 없는데 괜히 미운 마음이 들었다. '남자가 도대체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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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시댁에서 설거지를 하는 건 내가 결코 며느리라서가 아니다. 정성스레 차려주신 밥상에 대한 감사함이자, 어머님의 노동을 조금이나마 덜어 드리고 싶은 마음에서이다. 내가 우리 엄마가 차려준 밥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는 것도 똑같은 마음에서 이고. 내가 여자라서, 며느리라서, 나만 해야 하는 일이었다면 난 결코 지금처럼 먼저 나서서 일하지 않았을 것이다.
남편에게 미안하지만 나는 일부러 남편을 부려 먹을 때가 있다. 친정이든 시댁이든 내가 부모님을 돕는 일이 생긴다면 어김없이 남편의 옆구리를 쿡쿡 찔러 무엇이든 같이 한다. 다행히 눈치껏 먼저 일을 돕는 착한 남편이지만 나 스스로도 언제 어디서나 일하는 게 당연하거나 자연스러운 며느리가 되는 것은 늘 경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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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는 또 반대로 시댁에서 설거지를 하고 일을 돕는 며느리를 굉장히 구시대적이고, 못마땅하게 보는 사람들도 있다. 요즘이 어떤 시댄데 며느리한테 일을 시키느냐고. 그런데 며느리가 시댁에서 손 하나 까딱 안 하는 게 '요즘 방식'이라면 나는 꼭 요즘 애들처럼 굴어야만 좋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도 같은 며느리지만 '시'자 만 들어가면 공격태세를 갖는 것이 가끔은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결혼을 결심했을 때 시월드가 두렵지 않았다. 전생에 무슨 복을 그리 쌓았는지 좋은 남편과 좋은 시부모를 만났으니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나라고 두 분에게 서운한 감정이 안 생길까. 그런데 이건 우리 부모한테도 마찬가지이다. 삼십 평생을 같이 한 우리 엄마 아빠도 이해하지 못하겠는데 어찌 어머니 아버지를 다 이해할까.
결론은 꼭 '시'부모여서 나쁜 것도 아니고, '며느리'여서 일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