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승리
똑깍똑깍. 열 시를 갓 넘긴 고요한 아침시간, 사무실 한 편에서 귓가에 거슬리는 소리가 반복해서 들려온다. 똑깍똑깍. 똑깍똑깍... A과장의 손톱을 깎는 소리다. 어쩌다 한 번이었으면 참으련만... 그의 손톱이 다 자랄 때쯤 주기적으로 듣는 소리이다. 도대체 손톱을 왜 회사에 와서 자르는 걸까?
나는 올해로 만 10년째 한 회사에서 근무 중이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인턴으로 입사하게 된 이 회사를 이렇게 오래 다니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학창 시절은 모두 비슷한 환경(초중고), 비슷한 관심사(대학)로 모인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사회에 나와 조금 더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되니 세상에는 정말 이상한 사람이 많다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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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금 무리했다 싶으면 입술에 물집이 잘 생긴다. '구순 구각염'이라는 염증. 특히 입술에 잘 나다 보니 상처가 나을 만하면 찢어지고 나을 만하면 찢어져서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힘든 게 있다.
"입술이 왜 그래? 집에서 남편이 때려?"
B과장은 늘 이렇게 얘기한다. 대꾸할 가치도 없으니 매번 무시하고 말았는데 '그러는 과장님은 집에서 와이프 때리시나요?'라고 말하지 못한 게 아직도 내 한이다. 자기 딴에는 웃자고 하는 농담일까? 도대체 그런 말은 뇌 어느 구석에서 튀어나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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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은 같이 일하는 C실장이 막걸리를 좋아하느냐 물었다. 누구한테 받았는데 본인은 술을 안 좋아해서 집에서 남편이랑 나눠 먹으라며 내게 막걸리 한 병을 건네주었다.
"아..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내가 받아놓고 며칠 그냥 뒀는데 괜찮겠죠?"
주려거든 그날 바로 주지... 막걸리는 실온에 두면 금세 변해버리는 걸 모르는 걸까? 아니면 내가 싫어 그런 걸까? 집에 고스란히 들고 가 하수구에 콸콸 쏟아부었다. 남편에게 C실장에 대해서도 한바탕 쏟아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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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이면 친한 회사 동료 몇 명이서 모여 앉아 뜨개질을 하던 때가 있었다. 뜨개질이 썩 재밌지는 않았지만 그저 수다 떨면서 무언가를 같이 한다는 재미로. 그 와중에도 뜨개질을 안 하는 분들도 계셨다. 하기 싫음 말고. 당연히 자유니까! 그런데 며칠 우리 모습을 지켜보던 D실장의 한 마디.
"점심시간에 개인적인 취미 활동을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점심시간도 엄연히 회사에서 소통을 하는 시간인데 누군 하고, 누군 안 하고. 그보단 다 함께 대화를 하는 게 좋겠어요."
우린 그 뒤로 뜨개질을 접었다. 적성에 안 맞기도 했는데 잘 됐다. 그나저나 '실장님은 소통을 잘하셔서 참 좋겠습니다.' 이것도 나의 마음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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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동안 나는 어땠을까?
회사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생각해 보면 나도 참 이상한 사람이었다. 팀장이든 누구든 일찍 출근해 앉아 계셔도 난 출근시간 9시를 딱 맞춰 출근했다(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대학생이나 입을 법한 짧은 핫팬츠를 입고 다녔고(인턴 극초반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한 대 쥐어박고 싶을 만큼 후회하는 모습), SNS는 활발하게 하면서도 회사 동료의 카톡 메시지는 다음 날이 되어서나 확인을 했다(모르는 사람 하고만 소통한다고 이상한 애라고 했다.).
이보다 더 이상한 적도 많았다. 서류를 들고서 바로 옆 팀장님 방에 노크하고 들어간다는 게, 나도 모르게 내가 있는 사무실 문을 똑똑똑 노크를 하며 나간 적이 있었다. 나와 같은 방에 계시던 분들이 내 노크소리에 얼마나 황당해했는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역사적으로 놀림받는 에피소드이다.
그래, 실은 나도 엄청 이상하다. 어쩌면 당신과 나, 우리 모두는 다르니까 이상한 게 당연하다. 언젠가부터 모두가 다 이상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또 그렇게 우기기로 마음먹으니 사는 게 편해졌다. 이상한 사람을 마주 하고 기분이 퍽 나빠질 때면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저 사람 왜 저래? 진짜 이상해... 아 근데 나도 이상하긴 하지ㅋㅋ 괜찮아'
* 이상(異常) [명사] 1. 정상적인 상태와 다름. 2. 지금까지의 경험이나 지식과는 달리 별나거나 색다름. 3. 의심스럽거나 알 수 없는 데가 있음. [유의어] 괴기, 괴상, 비정상
* 이상(異狀) [명사] 1. 평소와는 다른 상태. 2. 서로 다른 모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