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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느리 Mar 24. 2022

온실 속 화초 인생

회사원이 꿈은 아니에요.

'온실 속 화초'. 나는 나를 그렇게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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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 후 인턴으로 입사한 회사를 지금 10년째 다니고 있다. 처음부터 목표로 한 회사는 아니었지만 운이 좋게도 그렇게 되었다. 우리 엄마는 내가 졸업하자마자 취직해 좋은 직장에 다닌다고 주변에 늘 자랑을 하곤 했었다. 하지만 정작 나는 회사에 다니는 매 순간 만족하지 못했다.


나는 이곳에 정말 필요한 사람일까?

나는 8시간 동안 무얼 위해 일하는 걸까?

앞으로 5년 뒤, 10년 뒤에도 지금 이 모습이면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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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부에 뜻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인지 학교 다닐 때부터 늘 옆 길로 새는 아이였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녔지만 방과 후 공부가 아닌 동아리 활동을 하느라 바빴고, 제빵기술을 배우겠다며 국영수 학원이 아닌 제빵학원엘 다녔었다. 빵과 쿠키를 만들어 친구들과 길거리에 나가 팔아보기도 하고, 자격증 시험을 치르고 대회에 나가기도 했다.


대학생 때는 빵집, 식당, 백화점, 쇼핑몰 등 경험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많은 아르바이트를 했다. 직장인이 되어서도 퇴근 후 보통 집이 아닌 학원으로 향했는데 캘리그라피, 꽃, 케이크 등 항상 무언가를 배우고 있었다.


내가 배운 많은 것들을 기록하기 위해 블로그를 운영하고, 최근에는 유튜브도 소소하게 시작했다. 맞다. 문어발. 안 하는 게 없을 만큼 나는 하고 싶은 것들이 참 많았다. 그리고 '하고 싶다'하는 건 '일단 해보는'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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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들 회사에 다니고 싶겠냐만은... 회사 안에서 나의 회의감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매일 8시간씩, 아니 회사를 다니기 위해 준비하고 이동하는 시간을 빼면 하루 중 내 시간은 몇 시간도 채 남지 않는다는 사실이 괴로워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보고를 위한 보고, 형식적인 행정절차가 가득한 회사, 무얼 위해 하는지도 모르는 일을 하면서 내내 불만이 많았다. 그러고 보면 누가 다녀 달라고 사정한 것도 아닌데? 진짜 그만 둘 용기도 없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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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차쯤 되었을까. 나는 더 이상 회사가 답이 아니란 생각을 했다. 그래서 오랜 고민 끝에 남편에게 퇴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처음 이야기를 꺼냈을 땐 농담 삼아 툭-, 두 번째는 진심을 다해 진지하게, 그리고 세 번째는 아마 엉엉 울면서 쏟아냈던 것 같다.


"모든 사람이 회사를 다니면서 살 필요는 없잖아."

"나는 이런 일도 하고 싶고, 저런 일도 하고 싶어."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 일을 유기적으로 하면 훨씬 시너지가 날 거야."

"만약 성공하지 못한다면 알바를 해서라도 어떻게든 돈은 벌게."

"회사 안에서 지금처럼 가만히 시간을 흘려보낼 수는 없다고...!"


가만히 있으면 안정적으로 살 수 있다. 정년이 보장되는 직장,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 아무런 실적 없이도 주어진 일만 적당히 하면 적당한 채로 살 수 있다. 누군가는 배부른 소리라고 욕해도 좋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지 않았다. 가만히 멈추어진 삶이 아닌, 내가 주도할 수 있는 삶을 바랐다. 그러한 안정을 깨고, 따스한 온실을 격하게 나가고 싶었다.


'퇴사'만을 유일한 돌파구라고 생각했을 때, 나는 회사 밖, 온실 밖이 '그러할 것이다'라고 상상했다. 푸르른 하늘과 반짝이는 햇살. 광활하고 비옥한 땅이 펼쳐져 있을 것만 같은 꿈. 그곳에 나가면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이란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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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그런 나를 여러 차례 설득했다.

"온실 밖은 당신이 상상하는 봄이 아닌, 폭풍우가 몰아치는 한 겨울일 수도 있어. 온실 밖으로 한 발짝  발을 내딛는 순간, 그 자리에 얼어버리고 생명을 다할 수도 있다고."


실은 나도 모르지 않았다. 단 한 번도 회사 밖에서 치열해본 적 없었고,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후회한다고 쉬이 돌이킬 수 없다는 것. 알고 있었지만 당시에는 외면하고 싶었다.


이후로도 한 1년은 당장 이 온실을 나가겠다며, 온실 속 화초로 살고 싶지 않다며 많은 날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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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회사를 나가지 않았다. 인정하기까지 오래 걸리긴 했지만 실제로 준비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회사가 주는 소속감, 월급이 주는 안정감, 사회생활을 통해 배우는 관계, 규칙적으로 살아가도록 해주는 원동력. 회사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힘을 가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만 그전처럼 온실 속에 가만히 살지는 않기로 했다. 언젠가 온실 밖을 나가기 위해 온실 안에서 힘을 키우기로 했다. 나라는 화초의 줄기가 굵어져 몰아치는 폭풍우에도 넘어지지 않고 잘 견딜 수 있도록. 그래서 온실이 아닌 드넓은 들판에서 화려한 계절을 맞이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래서 난 오늘도 퇴근 후에 글을 쓴다. 회사원 김느리가 아닌 작가 김느리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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