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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느리 Mar 21. 2022

제발 혼자 있고 싶어요.

독립과 결혼

내 또래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일곱 식구, 나는 오 남매 가운데 셋째이다. 남매간 터울이 크지 않은 데다 딸이 많아 유독 더 치열하게 싸우며 시끄러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주 어릴 적에는 한 공간에서 바글바글 다 함께 생활했었고, 조금씩 크면서 첫째 언니와 둘째 언니, 나와 넷째 동생, 남자인 막내 동생 이렇게 세 방을 나누어 생활했었다.


나의 오랜 룸메이트, 넷째 동생과는 정말 안 맞았다. 나는 정리하길 좋아하는데 동생은 늘 어질러 놓기 일쑤였고, 나는 반듯하게 누워 가만히 자는 걸 좋아하는데 동생은 꼭 나에게 무거운 발 하나를 툭 걸치고 자기를 좋아했다. 우리 오 남매는 늘 먹는 걸로 치고받고, 새로 산 옷을 먼저 입겠다고 치고받고, 컴퓨터 얼른 나오라고 치고받고... 무엇이든 쟁취하기 위해 다투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래서인지 오래전부터 나의 소원은 오로지 '독립'이었다. 나의 방, 나의 옷, 나의 음식, 나의 컴퓨터... 지금 생각하면 웃긴 얘기지만 그때는 정말 소원이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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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집을 나와 산 것은 스무 살이었다. 원하던 대학에 떨어지고 차선으로 선택한 대학교는 하필 내가 나고 자란 곳에서 장장 4시간이 걸리는 지역이었다. 먼 친척 한 명도 찾아볼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지역. 난생처음 가족의 품을 떠나 독립을 했다.


1학년 때는 기숙사에서 친구들과 함께 보냈고, 2학년부터 원룸에서 자취하며 본격적인 '혼자' 라이프를 시작했다. 이마저도 엄마가 챙겨준 꽃무늬 침구, 언니 동생들과 같이 입었던 옷, 집에서 쓰던 헌 그릇들과 함께 온 이사였지만 그래도 진짜 독립을 맞이한 기쁨에 행복했었다.


앞으로 나의 물건으로만 채워질 공간,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잠자리, 빼앗길까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가득한 냉장고. 그리고 이보다 가장 행복했던 건 더 이상 원치 않은 것들에 노출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었다. 엄마 아빠 싸우는 소리, 늦은 밤 아빠의 술주정 소리, 심부름 안 한다고 혼내는 엄마의 잔소리, 남매끼리 치고받고 싸우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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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나는 혼자 사는 게 정말 잘 맞는 사람이었다. 사교적이지 않은 성격이라 사람 만나는 일이 없어도 외로움을 타지 않았고, 무언가 배우고 만드는 일을 좋아해서 사부작사부작 혼자 하는 취미생활도 많이 즐겼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취업해 결혼하기까지 그렇게 난 10여 년을 혼자 살았다. 원룸과 오피스텔, 소형 아파트까지 다양한 곳에서 보낸 나의 20대. 그곳은 내가 원하는 만큼 꾸밀 수 있고, 내가 원하는 만큼 웃으며 또 슬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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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를 코 앞에 둔 20대 후반, 소개팅으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흔히 말하는 결혼 적령기에 만났으니 타이밍까지 기가 막혔던 걸까. '내가 결혼을 하게 된다면 이 사람과 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날. 남편의 멘트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너는 무엇이든 너무 혼자 하는 걸 좋아해. 혼자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이제는 둘이 같이 했으면 좋겠어."


혼자가 편했고 철저하게 혼자가 되고 싶었던 나인데, 무엇이든 둘이 같이 하고 싶다는 말에 이상하게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결혼을 약속하고, 나는 청첩장에 이런 문구를 적었다.

'혼자 하는 것이 익숙했던 두 사람이 만나 이제는 모든 것을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너와 내가 아닌, '우리'가 되는 날, 많은 분들 앞에서 약속합니다.

귀중한 시간 내시어 함께 축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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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해서 둘이 되니 행복하다. 정말로! 하지만 분명한 건 결혼 이후에도 여전히 혼자 있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아무런 이유 없이 마음이 울적할 때, 너무 피곤해서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을 때, 남편과 다투어 집 안 공기마저 답답하고 건조할 때, 넷째 동생이 그랬던 것처럼 내 몸에 남편의 팔다리가 뒤엉킨 채로 잠드는 순간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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