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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느리 Mar 25. 2022

저희는 낳지 않기로 했어요.

딩크부부 선언하기

우리는 스스로 '딩크 부부'라 말하지 않았었다. 아직까지는 아이를 낳지 않았지만 신체적 나이가 허락하는 한 우리의 생각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 달에 한 번은 일부러 남편에게 묻곤 했다.

"우리에게 아이가 있다면 어떨까?"

"정말로 아이가 없어도 괜찮을까?"

"혹시 생각이 바뀌면 언제라도 얘기해 줘."


내 고집만으로 일방적인 '딩크'가 되고 싶지는 않다. 결혼 전 이미 딩크로 살겠노라 약속했다면 모를까. 우리는 결혼 이후 조금씩 생각이 바뀐 케이스라, '합의'가 특히 더 중요했다. 그래서 나든 남편이든 어느 한 명이 생각이 바뀐다 해도 사실은 괜찮다. 이후 어떻게 할지는 또 같이 고민하면 되니까.




/

어느덧 결혼 3년 차가 되어 가도록 양가 부모님 어느 한 분도 우리에게 아이 소식을 직접 묻지 않으셨다. 우리가 부담스러울까 봐 그러셨겠지만 분명 많이 기다리고 계셨을 것이다. 곧 '좋은 소식'을 전해줄 것이란 기대. 어쩌면 부모님께는 약간의 희망고문 같은 게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이제 말씀을 드리기로 했다.


나 "만약에 부모님이 아이를 낳지 않는 것에 반대하면 어떻게 할 거야?"

남편 "부모님의 바람대로 우리의 인생을 정할 순 없잖아?"

나 "아무래도 서운해하실 수도 있고..."

남편 "우리 생각이 그렇다면, 서운하시더라도 그건 어쩔 수 없어."




/

"저희는 낳지 않기로 했어요."


우리의 공식적인 딩크 선언을 듣고 양가 부모님께서 보인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친정엄마 "그래. 잘 생각했다. 요즘에는 고생 안 하고 부부끼리 행복하게 사는 것도 좋겠더라."

친정아빠 "그래도 하나쯤은 있어야지..."

시어머니 "힘들어서 그런 거라면 우리가 돌봐주고 교육비도 도울 테니 걱정 말고 낳아라."

시아버지 "우린 상관없다. 너네만 행복하면 됐다!"


미묘하게 반반. 결론은 양가 모두 우리의 선택을 반대하지 않으셨다. 못내 서운하신 마음에 "너희 둘을 쏙~ 빼닮은 아이가 있으면 얼마나 예쁘겠니?"라고 유혹 아닌 유혹을 하실 때도 있지만 그래도 지금껏 우리 삶을 응원해주고 계신다(어쩌면 두 집안 모두 이미 손주를 보셨기 때문에 미련이 덜 할지도).




/

부모님과 가까운 친구들에게는 자녀계획이 없음을 밝혔다. 그렇게 우린 공식적인 '딩크 부부'가 되었다. 하지만 회사 동료들에게는 아직 선언하지 못했다. 굳이 선언까지 해야 하나 싶지만... 아직도 자녀계획에 대해 묻거나 '너도 이제 곧 낳으면~'이란 전제가 깔린 대화가 생각보다 많이 있다. 그럴 땐 애써 설명하기보단 이렇게 대답한다.

"그냥 조금 천천히 낳으려고요..."




/

아이를 낳는다는 게 정말 단호하게 싫은 일은 아니다. 낳지 않기로 한 이유가 있듯, 낳아야 하는 아니 낳으면 좋은 이유 또한 무수히 많기 때문에 언젠가 먼 미래에 지금의 선택을 후회할 수도 있다. 나도 안다. 결혼이란 것도 그렇다지만, 모든 선택이 '이래도 후회, 저래도 후회'라고 하지 않나. 나는 아주 조금, 정말 아주 조금 덜 후회하는 쪽으로 선택한 것이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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