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이상하다. 자기 배 아파 낳은 내 생일은 까먹더니, 내 남편의 생일은 일주일 전부터 계획을 세우느라 난리다.
"이서방은 좋아하는 게 뭐니, 선물 뭐 사줄까"부터 시작해 미역국은 엄마가 끓일 테니 그냥 몸만 오라던 그녀.
"내 남편 내가 챙길 거야. 그냥 밖에서 밥이나 먹자"라는 말은 들리지도 않았는지 오늘 아침 컬리에서 수박과 소고기 온갖 야채가 가득 왔다.
분명 남편이 예쁜 짓을 하긴 하지만, 그래도 딸보다 귀한 취급을 받는 걸 보면 가끔씩 궁금해져 물었다.
"딸도 그렇게 안 챙기면서 왜 이렇게 사위는 예뻐한대?"
"이래야 다 너한테 돌아와"
아직 자식을 낳아본 적도, 사위나 며느리가 생겨본 적도 없지만 궁금하다. 이건 진짜 나를 위한 호의일까 아니면 딸만 있던 집에 갑자기 생긴 (남의) 아들에 대한 설렘일까. 이젠 언니가 아닌 남편에게 엄마를 빼앗긴 걸까.
어려서부터 언니와 나는 늘 부모의 사랑을 나눠 가졌다. 아빠는 나를 더 좋아하고, 엄마는 언니를 더 좋아하는 겉보기엔 공평한 관계. 하지만 어린 나는 바쁜 아빠보다는 엄마의 사랑이 고팠다. 언니와 싸우고 내 편들지 않던 엄마에게 악다구니 쓰며 '이럴 거면 하나만 낳았어야지' 소리치던 철부지는 서른이 되어서도 '나랑 남편이랑 싸우면 남편 편들 거지?' 묻는 어른이 되었다.
애를 낳은 친구에게 물어보면 "더 아픈/예쁜 손가락이 있다"거나, "자식을 향한 사랑은 그냥 무한정으로 생겨나 나눈다는 개념이 아니다"라고 했다. 뭐가 진짜인지, 진짜가 있기는 한 건지는 모르겠는 요즘은, 그냥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해서 좋다. 요샌 언니보다는 나를 칭찬하는 빈도가 많아져 제법 여유로워진 듯도 하고, 막상 더 많은 사랑을 받다 보니 이게 뭐라고 그렇게 기를 썼나 싶기도 하다.
어른이 되어 좋은 점이 몇 개 있는데, 하나는 몸이 커져서 그런가 마음도 커졌다는 것이다. 이제는 "뭐, 더 예쁜 자식 있을 수 있지"라거나, "나도 엄마가 미울 때가 있는데 엄마라고 나를 미워하지 말란 법 있나" 라며 이해해 버릴 수 있다. 또 엄마는 고등학생 때 엄마를 잃었으니 사랑을 주는 법을 잘 몰랐겠지. 나보다 어릴 때 나를 낳았을 텐데 진짜 힘들었겠다 등등 순간을 보기보다는 맥락을 보며 너그러워진다.
두 번째는 받는 사랑보다는 주는 사랑이 더 재밌다는 걸 안다는 것이다. 돈과 시간을 쓰고, 정성을 들여 사랑을 주는 건 상대를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나를 위한 행동이다. 나 좋자고, 나 편하자고 하는 일에 상대가 감동을 받으면 더 좋고 아니면 말고 식. 가끔 너무 정성을 쏟았는데 못 알아차리면 섭섭해지기도 하지만, 이는 더 성장할 여지가 있다는 거니 너무 마음 쓰지 않으려 한다. 아직! 고작! 서른둘밖에 안 됐으니.
6.14. 남편의 생일을 하루 앞두고, 현관을 가득 채운 엄마의 사랑을 보며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