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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집가 Jun 13. 2024

양보단 질vs양이 쌓여 질


에세이를 배우고 쓴 지 일 년이 지나간다. 처음엔 마르지 않는 샘처럼 쓸거리가 넘쳐났다. 메모장을 켜면 별 고민 없이 한 문장 한 문장 이어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얼마 쓰지도 않은 지금 곳간이 텅 비었다. 책과 영화, 사람을 만나가며 인풋을 넣고 있지만 좀처럼 아웃풋을 내지 못하는 요즘.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다 느꼈다.


360번이 넘게 목요일의 글쓰기를 하고 있다는 김규림 작가의 북토크를 갔다. 블로그에 매주 글 하나를 써낸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여겼는데 사실 비공개로 쓰는 글은 더 많다고 했다. 부지런히 혼자 작업을 하다가, 잘 익은 하나를 선보이는 것이라고 한다. 내막을 모르던 나는 그녀의 블로그를 보며 '어쩜 이렇게 매번 좋은 글을 쓰지? 왜 나는 이렇게 꾸준하지 못할까' 라며 자책하곤 했는데. 좀 더 스스로에게 관대해져야겠다고 느꼈다.


그녀가 일상에서 부지런히 영감을 얻을 수 있는 비결은 작은 노트에 꾸준히 기록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따라 샀다. a4용지의 절반의 절반의 절반. 손바닥 보다도 작은 노트와 괜히 글씨가 멋져 보이는 펜도 하나 샀다. 그리고 한 주 동안 부지런히 들고 다니며 기록하지 않으면 스쳐지나고 말 생각들을 하나씩 저금해 두었다.



그리고 오늘 곳간에서 문장을 꺼내 쓰려하는데 영 써지지 않는다. 주제로 삼을법한 것들은 있지만 문단까지 이어지지 않는 단편적인 생각들. 아직도 나는 글 쓰는 힘이 부족한가 보다. 그동안 너무 칭찬만 들었어서 (모임 친구들아 고마워) 나태해졌다. 주제만 있으면 전처럼 술술 써질 거라며 혼자만의 글을 쓰며 연습하지 않았다. 그저 한 달에 하나 글쓰기 모임용 글을 써내는데 급급했다. 부지런히 써야지.



그동안 양보단 질이라며 빠져나갈 핑계를 댔는데, 사실 나는 알고 있다. 양이 쌓여 질이 된다는 사실을. 1000자로 한 달 정도 연습하고, 2000자로 늘려보려 한다. 처음부터 높은 목표를 잡는 것도 물론 좋지만, 금세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빠져나갈 내 꾀를 알기에. 적당히 도전적인 목표를 세워야 한다.


어제 언니는 시나리오 공모전에도 떨어지고, 구독자 100만 명이 넘는 유튜버와 함께 일할 기회도 놓쳤다며 엉엉 울었다. 어쩌다 둘 다 글이나 영상이라는 어려운 길을 가고 싶어 하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마흔이 다 돼 가는 나이에 열심히 했는데 안 됐다며 꺼이꺼이 우는 모습을 보며, 나는 눈물을 흘릴 만큼 내 글에 애정을 쏟았나 되돌아보게 됐다. 회사를 다니며 건조하다 못해 바삭해진 마음에는 열정 같은 건 남아있지 않다. 그저 평일엔 일하고 주말엔 놀고의 반복뿐. 그런 하루도 충분하다며 자기 위로를 하다가도, 문득 이것만으론 부족해 메모장을 열던 나였다. 에세이 원고를 투고하고 좋은 답을 못 받았을 때에는 '그럼 그렇지', 예약판매 후 안 팔린 책을 인수하는 조건을 들었을 때에도 '이걸 이백 명이나 사 읽을까?'라며 주저했다. 뜨거움의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 과연 잘 살고 있는 걸까? 잘 모르겠다. 그냥 곳간이나 계속 채우고 봐야겠다.


#에세이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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