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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집가 Jun 07. 2024

나를 찾지 마

아휴 지겨워. 오늘도 뱉어버린 이 문장. 회사를 다닌 10년 동안 가장 많이 반복한 말이다. 다닌 지 벌써 십 년째, 익숙해질 법도한 출퇴근길은 여전히 힘들고 하루하루 내 일이 아닌 남의 일을 하는 기분에도 진절머리가 난다. 평소에는 별생각 없이 살다가도 문득 사무치게 지겨워지는 날에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시시포스도 아니면서 매일 형벌을 받고 있나라는 생각을 한다. 


원치 않는 일을 한다는 핑계로 회사에서는 최소한의 노력만 기울이던 날들. 일은 얼른 끝내버리고 남은 시간에 회사 밖에서 할 일을 찾느라 바빴다. 취미를 찾아보겠다고 등산화를, 오리발을, 클라이밍화를, 요가매트를, 스쿼시 라켓을 샀다.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다며 글쓰기, 사진 찍기, 피아노, 책방 창업, 공방에서 하는 수업을 찾아들었다. 수업을 듣고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나면 회사에서 헛되이 보낸 9시간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은 듯 뿌듯했고, 퇴근 후 바로 잠들어버리면 하루를 전부 낭비했다는 찝찝한 생각이 뒤이어 왔다. 


나와의 숨바꼭질에서 늘 술래였고 패자였던 나. 돈과 시간을 쓰고 남은 건 결국 창고 문을 열면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한때 나를 즐겁게 했던 것들이다. 돌이켜보면 번아웃이었던 시기에 퇴사를 하고, 올레길을 걷고, 재입사를 하고, 순례길을 걷고, 주말엔 성당이나 절에 다녀보았다. 그러다 문득  ‘잠깐, 나는 여기 있는데? 나는 왜 계속 나를 찾아야만 한다고 생각했지?’라는 생각이 스쳤다. 드디어 형벌에서 벗어날 길이 보였다. 나는 찾아야 하는 무언가가 아니다.


매번 못 찾는다 생각했던 나는 사실 늘 내 옆에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할 만한 곳에 나를 데려다 놓고, 시작하기 전엔 무척이나 괴롭고 귀찮은 무언가를 하게 뜸하느라 바빴을 뿐이다. 뭔가를 두고 온 사람처럼 늘 헤매던 나는 이제 조금 더 단단히 뿌리내릴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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