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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향 Dec 11. 2023

어떻게 지내셨어요?

다음 진료예약은  안 해도 돼요. 

“안녕하세요. oo님.”

“안녕하세요.”

“어떻게 지내셨어요?” 

    

진료실을 들어서면 선생님의 첫마디는 늘 같다. 인사를 먼저 건네곤 어떻게 지냈냐고 물어보시는데 그 물음이 참 좋다. 그럼 나는 미리 생각해 두었던, 그간 있었던 일들 나의 상태에 대해서 얘기를 한다. 선생님의 첫 질문은 늘 마음의 긴장을 놓아버리게 하고 눈물샘을 건드린다. 3년 전 공황발작으로 처음 병원을 찾았을 때도 그랬다.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거예요?” 첫 질문에 아등바등 붙들고 있는 마음을 놓아버리곤 한참을 울었던 것 같다.      


6개월 만에 병원을 다시 찾았다. 처방받았던 상비약(불안시 약)이 몇 알 남지 않아 추가 처방을 받으러 왔다. 6개월 전에 2주 치를 받았으니 3,4주에 한번 꼴로 약을 먹은 셈이다. 언제 먹었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말이다. 

     



오늘은 병원 대기실에 아무도 없었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는 대기실은 가득 찼고 첫 진료도 한 달은 기다려야 가능했는데 오늘은 한산하다. 대기실에 사람들이 가득 찬 걸 보면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싶어 소소한 위로가 되었는데 괜히 아쉬웠다. 


진료를 기다리다 보니 3명이 차례차례 들어왔다. 예약 환자 인 듯하다.  


A는 겉옷을 입지 않고 왔다. 간호사 선생님이 춥지 않냐고 물어보았다. “더워요. 지금 땀났어요. 사람들을 보면 저는 땀이 나서요.” 아, 이분은 이런 문제구나.  


B는 진료실 바로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양손으로 휴대폰을 잡고서 허리를 굽힌 채로 양쪽 팔꿈치는 다리에 얹어두고 있는 자세였다. 그 자세로 다리를 떨고 있었다. 다리를 떨고 있으니 양 쪽 다리에 얹어놓은 팔도 떨리고 휴대폰도 손에서 덜덜덜 떨리는 중이었다. 그 상태로 휴대폰을 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내가 멀미가 날 것 같았다.      


몇 분 뒤, 엄마와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들이 들어왔다. 아들은 후드티에 있는 모자를 덮어쓰고는 벽에 붙어있고 엄마는 진료 문의를 했다. 처음 왔다고 했다. 현재는 예약이 가득 찬 상태라 다음 주 목요일 오전은 되어야 진료가 가능하다고 했다. 우선 그날로 예약을 잡긴 했지만 엄마는 당장이 급해 보였다. 간호사 선생님도 걱정이 되었나 보다. 응급실 얘기를 했고, 엄마는 이 병원에도 응급실이 있냐고 물어본 듯하다. 여기는 응급실이 없지만 큰 병원으로 가면 된다고 선생님이 답했다. 진료까지 앞으로 열흘, 그 학생이 응급실을 갈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oo님 들어오세요.”     


내 이름이 불렸다. 어떻게 지냈냐는 선생님의 물음에 답을 했다.      


“엄마는 잘 보내드렸어요. 6월 초에 가셨어요. 선생님이 이전에 얘기하셨던 ‘애도기간’을 잘 지내고 있는 거 같아요. 감정도 왔다 갔다 하고 여전히 힘들 때가 많은데 근데 익숙해지고 있어요. 언니랑도 얘기하면서 한 번씩 같이 울고 그래요.” 

     

“삶이나 직장, 주변 사람들 하고는 어때요?”     


“괜찮은 거 같아요. 처음엔 집안일을 하는 게 버거 울 때도 많았는데 지금은 점점 괜찮아지고 있어요. 일이 많을 때 마음이 좀 버겁기는 하지만 바쁘게 사니깐 조금 잊게 되고 그런 게 좋아요. 지인들도 잘 받아줘서 덕분에 잘 지나고 있는 거 같아요.”      


엄마 얘기를 하면서 또 한바탕 울 거 같았지만 이번에는 울고 싶지 않아 꾸역꾸역 참으며 두서없는 말을 했다. 


“6개월 동안 약을 먹게 되는 상황들은 어떤 거였어요?”     


“여름에 폭우가 내릴 때 혼자서 고속도로 운전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공황이 올 거 같았어요. 해는 졌고 비는 엄청 오고 도로는 안 보이고... 그러곤 다음 날 다시 집으로 가야 하는데 운전을 못하겠더라고요. 운전하다가 발이랑 팔을 그냥 놔버릴 거 같고 가슴이 답답하고 그랬어요. 그리곤 비행기 탈 때랑, 기차 탔을 때 힘들었어요. 고속도로도 옆에 누굴 태우고 하긴 했는데 긴장이 안 되지는 않고 터널이 길어지면 힘들어요. 영화관을 가서도 그렇고요. 폐쇄된 공간에 있으면 좀 힘든 거 같아요.”     


“일상에서는 어때요?”     


“나쁘지는 않아요.”     


“이전에 직장에서 힘들다고 했었는데 그건 좀 어때요?”      


“같이 일하는 동료 때문에 최근에 조금 스트레스를 받긴 해요. 예민하고 감정이 많이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라 말 한마디 편하게 건네기도 힘들고 스트레스를 좀 받아요.”      


“음...... 예전에 비해서 지금은 특정 환경에서만 반응이 크게 되는 거 보니......”     


여기까지만 듣고는 공황증상이 더 안 좋아졌다고 할까 봐 내심 걱정이 되었다. 이내 선생님은,     


“이전보다 많이 괜찮아진 거 같아요. 상비약은 2주 치만 처방해 드릴게요. 괜찮으면 당연히 안 오셔도 되고, 필요하면 언제든 다시 오세요.”     


이전보다 많이 괜찮아진 거 같다는 선생님의 말에 ‘나 진짜 괜찮은 건가? 내가 못한 말이 있지 않나?’ 싶었다. 처음 병원을 왔을 때보단 지금이 훨씬 훨씬 더 나은 상황이긴 하지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었나 보다. 아니면 자기 연민이거나... 매일 먹을 약을 처방받을 줄 알았는데 상비약만 처방해 주셨다.

      

‘이 정도면 나 괜찮은 거구나.’     


처방받은 약은 카드지갑에 하나, 화장품 파우치에 하나씩 자리를 잡는다. 나의 안정감이다. 마음 같아선 몇 개월이고 약을 꺼낼 일이 없었으면 하지만, 어쨌거나 약이 거기 있음으로 누리는 안정감, 안도감은 작지가 않다.      


이제 약을 받고는 기분이 좋아지는 말을 하고 가면 된다.      


“저 다음 예약은 안 해도 돼요.”     


당분간은 병원을 오지 않아도 된다. 그것만으로 됐다.  




뼈가 한번 부러지고 나면 이전의 상태로 100% 회복이 될 수 없다. 다른 장기들도 그렇다. 몸의 어느 곳도 한번 손상이 되면 원래의 상태로 완벽히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정신도 똑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한번 흔들려버린 어떤 신경체계가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욕심을 내지 않으려 한다. 


그저, 이전만큼의 힘듦이 지금 나에게 있지 않고 운전을 여전히 하고 다니고 약을 먹긴 하더라도 비행기와 기차를 타고 같이 여행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고 그런 나를 이해해 주고 걱정해 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말이다. 이전보다 많이 좋아졌다는 선생님의 말과 다음 진료 예약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만으로 오늘의 감사를 누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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