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뒤 맥락은 없는 날
1. 아빠가 일요일 2시부터 11시까지 입시학원 차량 운행을 누가 부탁하더라며 할지 말지 고민이라고 했다. 이미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유치원과 학생들 등하교 버스운행을 하고 있고, 일요일에도 운행 일정이 있는데 거기에 또 일을 추가하겠다는 거다. 돈 때문인지 무료해서 그런 건지 아빠에게 물어봤더니 둘 다 란다. 돈은 그냥 덤이고 무료함이 가장 큰 이유라는 걸 알고 있다. 애당초 가만히 있는 걸 못하는 아빠이기도 하지만, 몸을 바삐 움직여 잡생각을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이다.
1-2. 엄마가 돌아가시고 얼마동안 내 몸을 너무 혹시시키나 싶을 정도로 일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는 일에서 얻는 성취감이 좋기도 했고, 일 자체가 좋아서 열심히 하기도 했지만 내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싶은 마음에 바삐 움직인 것도 분명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일들이 끝나고 나면 거기서 오는 공허함도 적지 않았다. 그러면 또다시 다른 바쁨으로 채워가는 것이 반복이었다. 오히려 주변에서 '그럼 언제 쉬어요?'라는 말을 하고 그럼 나는 '늘어지는걸 안 좋아해서요.'라고 대답은 하지만 어쩌면 나는 무언가를 회피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2. 동네에 사는 후배 부부가 본가에 다녀오면서 해산물을 잔뜩 얻어왔다. 좋은 먹거리 덕에 오랜만에 지인 몇 명이 후배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꽃게탕, 해삼, 조개, 문어, 버터에 구운 관자가 저녁 메뉴였다. 메뉴가 딱 안주다. 때마침 맛있는 일본산 매실주가 후배 집에 있어 두세 모금 얻어먹었는데 도수가 높다. 거기다 약하게 하이볼까지 한 잔 마셨더니, 태생이 알쓰인 몸이 금방 약간의 취기가 올라오는 듯했다. 오늘은 알딸딸한 상태를 좀 더 누려보고 싶은 날이긴 했지만 적당한 선에서 잘 참았다.
3. 매일은 아니더라도 글을 규칙적으로 무슨 내용이라도 써보자 싶고 기록을 남겨놓자 싶어서 끄적거리고는 있는데, 사실 오늘의 나는 조금 별로였던 것 같아 마음이 싱숭생숭 거리기도 하고, 내일은 쉬는 날인데 고작 12시도 안돼서 졸리니 괜히 억울하기도 한 대충 그런 날이니 앞 뒤 맥락은 없지만 '폭싹 속았수다'나 마저 보고 자야겠다.